8월 도쿄, 퍼포먼스 워크숍 참여기
8월 한 달간 도쿄 시모키타자와에서 '퍼포먼스 워크숍'에 참여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춤을 췄다. 물론 훈련된 신체로 고도의 테크닉을 보이는 그런 춤을 추었다는 말은 아니다. 움직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했다(나는 그저 버둥댔다). 워크숍을 이끄는 예술가 카오루코 이가라시는 여러 편의 일본 드라마와 영화의 안무를 짰고, 20년 전부터는 '베리어 프리 워크숍'을 열어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나는 베리어프리 워크숍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오랜 기간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춘 경험이 있는 댄서들과 함께 워크숍에 참여하고 작은 공연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주 다양했다. 인디밴드의 보컬이나 연극배우, 현대무용가 등 자신의 주요한 삶의 업으로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웹디자이너처럼 무용이나 행위예술과 직접 관련되는 분야가 아닌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워크숍에 와서 자기 몸에 집중하고 몸을 이용해 자신이 지각하는 세계와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전공자인 유코 나가노 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10여 년간 워크숍에 정기적으로 나왔고 종종 공연도 했다. 그는 도쿄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연구자였다. 인지과학과 춤이라는 두 가지 길에 관심을 두던 그는 아예 자신의 연구주제를 '춤과 인지의 관계'로 잡고 연구를 시작했다. 워크숍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실제 워크숍 당시의 소리와 움직임을 데이터로 수집했다. 이것으로 즉흥적이고 창조적인 춤에 따르는 인지심리학적 과정을 다룬 연구논문을 썼다. 이후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무대 위에서 직접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발표했다. 아래 TEDxTokyoSalon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삶에서 이질적인 두 영역을 유기적으로 통합해가고 있었다. 나 역시 나의 몸 자체인 장애, 예술, 그리고 법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묶어내는 일이 언제나 큰 과제이다. 아직은 유코 씨처럼 명확한 길을 찾지 못했지만 규범적 논증(법), 창조적 표현(예술), 다름과 소수성(장애)이라는 세 가지 고리 안에서 훌륭한 아이디어, 삶의 방식, 새로운 직업, 유의미한 정치 도덕이 생산될 수 있다는 어떤 믿음이 있다. 아직은 이도 저도 아닌 흐물흐물한 인간이다.
굳이 일본에까지 가서 워크숍에 참여하냐는 질문이 있었다. 서울에 적절한 시간, 장소가 맞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곳에서 밝히고 싶은 이유 하나는 언어와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곳에서 오로지 나의 신체를 마주하고 싶었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대학시절 연극 등에 참여했다. 그때마다 나는 늘 말이 많았다. 나의 불균형하고 비대칭적인 신체를 드러내는 일에 잔뜩 주눅이 든 후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많은 해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럴 방법이 없었다. 내 일본어 실력은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직업, 학위, 지식, '말빨(?)' 따위를 내세워 내 신체를 보완할 도리가 없었다. 단순한 수준의 언어만 구사하는 초등학생의 상태로 이 몸을 가지고 살았다. 휠체어에서 내려 바닥에서 구르고 춤췄다. 몸을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 이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