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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꾸준히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함께 쓰기의 힘

by 김슬기

Diary.

나는 때때로 ‘왕’이 된다.


왕이 된 나에게 사람들은 대화창에 엄지를 치켜세운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 중 가장 슬퍼 보이는 표정을 한 것을 골라 답장을 한다. 왕이 되는 동안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을 다시 한번 점검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는 일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구나.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대화창 스크린 너머, 왕 중의 왕 ‘벌금왕’이 된 나는 찔끔 눈물을 흘린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사람들 셋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 속해있다. 글쓰기란 대부분 혼자, 내면에 깊이 들어가 헤매는 일이기에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과 떠들 수 있는 단체 대화방은 무척이나 의지가 되는 일이다. 실은 ‘벌금왕’이란 타이틀도 이 대화방에서 얻었다.


“꾸준히 쓰는 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어차피 우리 이 대화방에서 매일 이야기를 나누니, 매일 최소 3천 자를 쓰고 인증해 보면 어때요? 만약 3천 자를 채우지 못한 경우엔 벌금도 3천 원! 모인 벌금으론 회식을 하는 거예요.”


3천 자쯤이야,라고 생각했다. 1만 4천 글자수 정도의 단편소설을 이틀 동안 후루룩 쓴 적도 있고, 장편소설 마감이 급할 때엔 하루에도 몇 천자씩 뚝딱 쓰곤 했으니까. 그동안 꾸준히 작업을 못했으니, 이 기회로 습관도 만들고 회식 때 ‘공짜 밥’을 먹을 기대감에 설렜다.


그렇게 두 달, 60일이 지나갔다. 주말은 인증을 하지 않기로 했으니, 대략 40일 동안의 글쓰기 인증이 이어졌다. 나는 정확히 스물세 번의 벌금, 6만 9천 원을 이체했다. 6만 9천 원을 내고 산 ‘벌금왕’ 타이틀. 세 작가의 게으름이 모여 쌓인 벌금이 총 14만 1천 원이니, 그중 절반은 내가 채운 셈이었다. 오는 10월, 세 작가는 그동안 ‘돈 많이 벌면 먹어야지’하고 미뤄두었던 식당에서 맛 좋은 음식을 먹을 예정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작가님은 하루 작업 루틴이 어떻게 되나요? 꾸준히 쓰는 비결을 알려주세요.”


나는 여유로운 척 미소를 머금고 잠시 내적 갈등을 겪는다. 나의 게으름을 있는 그대로 고백할 것인가. 그렇다면 ‘저는 마감까지 있는 대로 미뤄뒀다가, 왕창 쏟아냅니다.’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멋없는 대답이 만들어낸 머쓱한 분위기에 나는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이며 깔깔, 웃어야겠지. 소설을 쓰고 싶어서, 언젠간 자신의 작품 한 편을 완성하고 싶어 나를 찾아온 사람에게 이런 힘 빠지는 대답을 하는 건 영 아닌 것 같다. 나는 유용함과 솔직함 사이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 대답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다섯 시간 동안 원고를 쓴다고 해요.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딱 채우고, 더 쓸 수 있어도 분량을 채우면 손을 떼고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성실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죠. 아침 여덟 시에 책상에 앉아서 정오까지 소설을 쓰고… 대단하죠. 이렇게 꾸준히, 성실히 쓰면 분명 훌륭한 작가에 가까워지는 건 시간문제일 듯합니다. 저는….”


수강생은 눈을 반짝이며 내 대답을 기다린다. 어떤 멋진 루틴이 있을지,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소설을 써 내려가고 있는지 기대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입꼬리를 광대까지 끌어올릴 듯 억지로 올리곤 대답한다.


“저는... 음… 꾸준히 쓰고 싶어서 노력 중이랄까요. (진심이다. 노력과 각오는 매일 하고 있으니까.) 마감이 있으면 조금 더 성실해지기도 하지만, 음… 실은… 죄송해요. 저는 루틴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앉기는 하는데, 하루 한 줄도 못 쓰는 날도 많고….”


의지가 박약하다. 게으름을 피우다 늘 후회한다. 소설 쓰는 일에 완전히 빠져들어 몰입의 순간을 즐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소설 쓰세요’ 말하고 다니지만, ‘소설 쓰러 책상에 앉는 일’ 자체가 어렵다. 지름길을 내버려 두고 빙빙 먼 길을 돌고 돌아, 온갖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을 다 기울인 뒤에야 간신히 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어렵게 앉은자리를 벗어나는 일은 쉽게 해낸다. 아! 소설을 꾸준히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침대에 벌렁 드러누운 나는 생각한다.


물론 장점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아니어서,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얻을 수 있는 장점! 워크숍, 수업, 소설 쓰기 모임의 선생님, 동료 작가, 진행자로의 막강한 장점이 있는 거다. 그 누구보다 미루는 마음을 잘 안다는 것. 하지만 그게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의 어떤 것이라는 걸 잘 아는 것. 과제 피드백 준비와 이론 수업도 정성껏 준비하지만, 무엇보다 힘을 주어 강조하는 건 과제 마감 시간이다.


“O요일 23시 59분 59초까지. 마감 시간을 꼭 지켜주세요. 쓰는 일이 망설여진다면, 딱 한 시간만 써서 ‘아무렇게나’ 제출한다는 마음으로 쓴 뒤, 뒤돌아보지 말고 과제를 제출하세요. 저는 여러분들이 아주 별로인 글을 쓸 것이고, 그 걱정에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마음을 잘 알아요. 헤밍웨이도 초고는 ‘shit’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뭐라고 대단한 글을 쓸 비장한 마음으로 소설의 초고를 써야 할까요. 즐겁게 쓰자고요! 마감만은 꼭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마감 규칙과 마감을 이용한 마음을 강조한 뒤 워크숍 수강생들의 과제 제출률이 높아졌다. 워크숍 출석과 참여도도 높아졌고!


최근엔 ‘소설 쓰는 온라인 자습실’ 콘셉트의 모임 하나를 더 열었다. <굿나잇 소설 쓰기 클럽>. 일주일 중 하루, 밤 10시에 모여 카메라를 켠 상태로 1시간 동안 글을 쓴 뒤 15분 정도 짧게 소설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하루 종일 소설을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오늘도 못 썼어’라며 잠 못 드는 이들을 위한 모임. 그러니까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맞춤형 온라인 모임인 셈이다. 2년 전 같은 형식의 온라인 모임을 3개월가량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참여 작가님들의 후기가 좋았다. 이번에 새로이 시작한 <굿나잇 소설 쓰기 클럽>에도 온/오프라인에서 알고 지낸 혹은 새로 알게 된 6명의 작가님과 함께 하게 됐다. 첫 모임일, 적게는 7백 자, 많게는 2천5백 자에 이르는 소설을 썼다. 나도 아주 오랜만에 써야지, 하고 생각만 하던 소설의 개요를 끄적일 수 있었다.


꾸준히 쓰는 일은 어렵다. 괴롭다. 기분이 내켜서 후루룩 폭발적으로 써내려 갈 때는 즐겁기만 하던 글 쓰기가, ‘꾸준히’ 쓰려 들면 상상만으로도 벌써 지겹다. 이런 때만 영리해지는 뇌는 글 쓰지 않을 핑계를 잘도 만들어낸다. 그 덕에 평소엔 관심도 없던 청소, 빨래 심지어 꽤 시간이 걸리는 요리까지 도전하고야 만다. 꾸준히 써야지, 한국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어야지. 다짐만 했을 뿐인데, 글은 쌓이지 않고 살림살이가 반질반질 윤이 난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나는 다짐만으로 꾸준해질 수 없는 작가. 그 참혹한 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머니가 텅 비어야만 될 수 있다는 ‘벌금왕’만 되지 말아야지, 그 정도의 다짐을 하고 동료 작가님들과 또다시 하루 3천 자 프로젝트를 또 이어야겠지. 온라인 모임을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 꾀죄죄한 몰골로 카메라 앞에 앉아 서로를 감시하며 소설을 잇겠지. 소설은 혼자, 1인용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 쓰는 일이라지만, 어쩐지 내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그 어딘가에는 함께 쓴 흔적들이 남아 있는 건 꾸준함을 위한 몸부림 때문이겠지.




Q&A

Q. 소설을 꾸준히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혼자서 꾸준히, 집중해서 소설을 쓰는 일이란 무척 어려운 일이라 생각해요. 그럴 땐 소설 쓰는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가 보면 어떨까요. 때때로 서로의 소설을 읽어주고, 응원도 해주는 그런 모임이 꽤 많이 있거든요.

또 다른 방법이라면, ‘하루에 딱 한 줄만 쓴다’ 생각을 하고 자리에 앉는 거예요. 정말 한 줄만 써도 충분히 좋지만, 한 줄을 쓰기 위해 ‘글쓰기 모드’로 들어가게 되면 그다음 문장, 또 그다음 문장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타이머’도 추천드려요. 구글 뽀모도로 타이머로도 잘 알려진 1시간짜리 타이머가 있는데요. 집중력을 높이는데 이 타이머가 도움이 되더라고요. 1만 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 무료 앱도 있으니 이용해보시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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