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암사자 Apr 19. 2023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하루

초단편 소설 #6. 수요일

출근 시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길이었다. 현지는 바닥에 있던 사과껍질을 밟고 미끄러졌다. 쿵, 하는 큰소리와 함께였다. 너무 아파 일어나지 못하고, 넘어진 자세 그대로 누워 있는 현지 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지나갔다. 그 발 중 누구 하나 멈춰서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현지는 넘어진 충격 때문인지 그점이 낯설게 느껴졌다. 허리통증은 버틸만 했지만, 현지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현지는 누운 자세 그대로 119에 전화를 걸어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진료를 받고, 간단한 처치를 받은 뒤 현지는 잠깐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왠지 모를 조급함이 들었다. 아까의 눈물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조급함이었다. 부재중 전화나 메시지 한 통 없는 깨끗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휴대폰엔 회사 동료들의 개인 연락처는 단 하나도 없었다. 현지는 포털 검색창에 회사 이름을 검색해, 전화 번호를 찾아 눌렀다. 달칵, 수화기 드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명광기업입니다."

"저 기획팀 김현지입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제가 출근길에 사고를 당해서요. 회사에 좀 늦게 되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다른 용건은 없으시고요? 이런 연락은 처음이라, 어떻게 처리를 해드려야 할지 난감하네요."

"저도 이런 일로 전화를 드린 건 처음이라. 아무튼 감사합니다."


현지는 진통제와 소염제 따위가 든 약봉투를 들고,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에 회사에 도착했다. 3년 동안 매일 오갔던 회사지만, 오늘따라 낯설게 보였다. 책상과 책상을 가르는 파티션은 유독 높아보였고,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어두워보였다.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전에는 들지 않았던 걱정들이 현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현지는 자신의 자리로 이동하는 동안 빽빽하게 뒤통수를 보이며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목구멍이 조금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기침이 나오려다가 만 것처럼 울컥거렸다. 현지는 그것이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의 부작용이거나, 오늘 넘어진 충격의 후유증 정도라 생각했다. 


"지현씨, 이 서류 정리 부탁하고. 명절 기획은 완료되는 대로 메일로 보내주세요. 영지 씨 기획안 거의 그대로 쓸 거니까 조금 더 신경 써주시고요. 알겠죠? 지혜씨?"


현지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총 세 번이었다. 팀장이 업무 지시를 하는 잠깐 사이에 현지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 것이. 지현, 영지, 지혜. 이렇게 세 이름이 현지를 향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전혀 신경쓰이지 않던 부분인데, 현지는 그 점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현지는 다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게워낼 것 없는 빈속이라 헛구역질만 계속했다.


현지는 화장실 세면대 거울 앞에 멈춰 자신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봤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바지는 넘어진 자국 그대로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어 있었다. 현지는 갑자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몰골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열망이 들었다. 얼굴도 화끈 달아올랐다. 현지는 죽을 병이라도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 늦겠다고 충동적으로 회사에 전화를 한 것은 왜 그런 것인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목이 간질거리고, 이유를 알 수 없게 숨고 싶은 감정이 드는지... 단 한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현지는 넘어진 이후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었다.


머리도 다시 단정히 묶고, 옷에 묻은 것들도 열심히 털어내느라 한참을 씨름하던 현지가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 입구에서 팀장을 마주쳤는데, 목구멍에서 의도치 않은 말이 툭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현지를 바라봤다. 현지도 당황스러웠다. 죄송하다는 말을 회사에서 쓴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쓰는 것도 들어본 적 없었다. 


"죄송하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팀장님. 아니, 죄송하다고 해서 죄송하다고 말한 것이 죄송합니다. 왜 이러지?"

"현미씨, 그만하시고 볼 일 보세요. 저는 제 개인적인 볼일이 급해서 이만."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장실로 사라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사무실로 돌아온 현지는, 이번엔 파티션 사이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와 냄새들을 견디지 못하고 비상 계단 쪽으로 도망치듯 가야만 했다. 고함을 치듯 개인적인 통화를 하는 사람, 냄새 섞인 큰 소리 나는 방귀를 대놓고 뀌는 사람, 아침을 거르고 왔는지 자리에서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는 사람, 탁탁 소리나게 손톱을 깎아 아무곳에나 튕기는 사람... 분명 매일 마주한 상황이지만 현지는 오늘따라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날이 서 있는 기분이었다. 출근을 하고서 퇴근을 간절히 기다린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비상계단 한 쪽에 웅크리고 있는데 현지의 머리 위로 긴 그림자가 늘어뜨려졌다. 


"김현지 선배님."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현지는 깜짝 놀랐다. 현지를 부른 목소리는 깡마른 체구를 가진 남자였다. 아마도 회사 사람인 것 같은데, 현지는 그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 현지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회사란, 함께 업무를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고서야 결코 마주칠 일도 말을 섞을 일도 없는 곳이었다. 업무를 같이 하더라도 직급을 제외하곤 그 어떤 개인정보도 공유하지 않는 그런 세상. 김현지가 '김현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서, 그 이름을 부르는 일은 단연코 한 번도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팀에 소속된 직원이 그랬다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무 말 못하고 있는 현지에게 남자는 다정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더 현지의 이름을 불렀다. 


"김현지 선배님, 괜찮으세요?"


현지를 명확히 '김현지'라고 콕 집어 부른 것은 이제 더이상 우연이 아니었다. 남자는 현지의 상태를 한참이고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도 '그렇게' 되신 게 분명해보이네요. 잠시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회사 건물 옥상에 '그렇게' 된 사람들이 모여서 편히 얘기 할 수 있는 창고가 있어요. 아, 아마도 목구멍 쪽이 간질간질하면서 울컥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어요. 업무 시간이라 그렇거든요. 익숙하지 않으시겠지만 그건 '양해' 라는 것을 구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보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은 '눈치'라는 것을 보기 위해서고요. 천천히 설명해드릴게요."


현지는 남자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남자의 말처럼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고, 마음이 따끔거리는 것만 같았다. 자꾸 곁눈질로 계단 아래 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따라 올라올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넘어진 충격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현지는 불안한 마음이었다. 3년의 회사 생활 동안 처음으로 올라온 옥상이었다. 사실 옥상 뿐만이 아니라, 지정된 업무 공간과 휴게 공간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채색의 사무실과 달리, 옥상은 온갖 색깔들로 가득했다. 텃밭에는 상추, 치커리 같은 작물들을 비롯해, 토마토, 가지, 고추 같은 열매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가득했다. 남자는 이 풍경이 자연스럽다는 듯 앞장섰다. 창고 문을 열자,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말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사무실에서 현지를 일순간 혼란스럽게 했던 고함 같은 혼잣말들과는 달랐다. 따뜻했다. 소리는 일방향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사이를 다정히 오갔다. 회사에서도 이런 게 가능했다니. 현지의 턱이 밑으로 뚝 떨어져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창고 안에 모인 사람들 몇몇에게 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지와 눈을 마주치고 손짓을 했다. 현지는 그들 옆으로 다가갔다. 무릎 높이의 면적이 넓은 테이블엔 식사를 할만한 것들이 차려져 있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군침이 돌았다. 구내식당에서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증상이었다. 현지는 앞에 놓인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차려진 것들 중 가장 노랗게 빛나는 음식을 집으려는데, 오른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여자가 현지의 손목을 잡았다.


"함께, 먹는 거예요. 그걸 완전히 잊고 살아서 어색하시겠지만. 내장칩이 완전히 고장난 게 아니라면, 옥상도 회사 반경 안에 들어 있으니 영향이 커서 극복하게 꽤 힘들겠지만요.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을 거예요. 사실 이젠 회사가 아닌 밖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


내장칩이니, 반경이니 하는 단어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현지는 자신의 눈동자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영 신경쓰여 물어볼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현지는 손으로 제멋대로 움직이는 눈동자를 어찌 해보려 눈두덩 위를 더듬거렸다.


"현지 씨는 곧 완전히 깨어날 수 있겠네요. 본능에 남아 있는 부끄러움이 눈동자에 반영이 된거예요. 옛날엔 시선을 잘 맞추지 못하는 걸로 다른 사람이 부끄럽거나 멋쩍어 하는 걸 알아차렸으니까요."


현지는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제야 테이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 상상도 못했던 현지였다.


"지난번 민철씨도 내장칩 부분 고장 상태로 오랜 시간 고생 했거든요. 업무 중간중간 창고 모임을 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분명. 이제 점심 식사 하시죠.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회사가 창고 모임을 의심할 수도 있으니까요."


현지도 처음으로 사람들이 먹는 것을 의식하며 앞에 놓인 것을 먹기 시작했다. 혀 전체에 고소한 밥 맛이 느껴졌다. 신선하면서 달큰한 토마토의 맛도 입안 가득 퍼졌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스르르 감게 되는 그런 황홀한 감각이었다. 


"이제 현지씨도 구내식당 밥 맛이 까끌한 모래처럼 느껴질거예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왜 이런지, 이상한 감정들과 감각들에 휩싸이는지 모르겠어요."

"현지씨 입사를 언제했죠?"

"3년 전이요."

"3년 전이면... 신규 버전의 내장칩이겠네. 회사 밖에서도 작동하는."

"뭐가 작동하고, 내장칩은 또 무슨..."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이 대신 입을 열었다.


"현지씨라고 그랬죠? 명광기업이 처음 입사한 회사일거고... 그래 요즘 시대에 이직을 할 리도 없고 말이야."

"이직이 뭐죠?"

"회사에 불만족해서, 다른 회사로 옮기는 걸 말해요."

"회사에서 그런 걸 느낄리가 없지 않나요?"

"그게 다 내장칩 때문이지. 지나치게 높아진 퇴사율, 이직률 어떻게 해보겠다고 사람들 허리에 심어댄 거 말이야. 현지씨 입사 전에 허리 검사 받은 거 기억나요?"

"네. 현대인의 고질병인 디스크를 예방해준다고, 처치까지 동반한."

"기억하네. 그 때 회사에서 그놈의 칩을 심어 놓은 거지. 업무 외에는 웬만한 감각들을 다 둔화시키는 장치예요. 가장 큰 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 업무를 제외하고 모든 것에 대해 철저히 개인 위주로만 생각하게 만들죠. 예전 한국 사회에선 '눈치'나, '수치' 그로 인해 생긴 갈등 같은 게 큰 문제였거든요. 지나치게 눈치를 보고, 눈치를 주는 문화가 문제라고 떠들어대더니 결국 기업에서 이 괴물 같은 걸 만들어낸 거야."

"설마... 그런 걸 사람 몸에다 심었을거라고... 그냥 시대가 좀 바뀐 것 아닐까요."

"현지씨 오늘 몸에 큰 충격이 있거나 그러지 않았어?"

"오늘 심하게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치긴 했어요. 병원에도 가고."

"거봐."


현지는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창고에서 초면처럼 만난 그들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설탕이 잔뜩 뿌려진 달콤한 토마토 조각 하나를 입에 넣었을 땐 확실히 자신에게 분명히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감각할 수는 있었다. 


"기업이 내장칩을 강제로 심었다고 쳐요. 왜 그걸 아무도 고발하지 않은 거예요?"

"현지씨도 조심해야해. 단 한 번도 이직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지 않았을테니 모르겠지. 요즘 같은 세상에 일자리를 잃으면, 다음은 없어. 이직 없는 사회에서 경력직들이 어디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기업은 신입 공개채용을 제외하곤 빗장을 걸어 잠근지 오래야."

"그래도 부당한 건 알려야죠."

"결국 피해 입는 건 개인뿐이야. 내장칩 고장으로 각성 상태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사람이 한 명 있었거든. 허리에 있는 내장칩을 얼른 부숴야 한다고 난리를 쳤지. 결국 회사에서 맨몸으로 쫓겨났어."

"아무리 그래도..."

"월급이 없으면 얼마 버티지 못해. 그 친구도 결국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지."


현지는 토마토에서 흘러 나온 즙과 설탕이 섞인 물을 들이켰다. 온 몸이 짜릿해질 정도로 단 맛이었다. 이런 감각들이 음모론 같은 내장칩 하나로 사라졌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현지는 더 현실적으로 납득이 갈만한 이유를 떠올렸다. 단조롭고 팍팍한 회사 생활을 해내는 성실한 어른이 되려면, 모든 감각들을 잊고 사는 수 밖에 없다고. 내장칩 같은 말도 안되는 존엄성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장치가 심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우울이 만연해 있을 뿐이라고. 현지는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떠올린 이유가 지금의 상황들을 설명하기에 더 적합해보였다. 옥상 창고에 모여 땡땡이를 피우는 사람들이 지어낸 헛소리보다는 훨씬 더.


현지는 시계를 확인했다. 점심 시간을 훌적 넘긴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세로 줄무늬 셔츠를 입은 사람이 현지를 불러세웠다.


"과일도 마저 먹고 가요. 다음엔 눈치껏 과일 깎는 것도 좀 돕고. 본인 앞에 놓인 것만 먹고 그러면 안되는거야, 사람이."


현지는 자신의 눈동자가 또 방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옥상 창고 모임에선 눈치, 라는 모호한 기술을 익혀야만 하는 모양이었다. 눈치껏 돕는다는 말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고 있던 때 자신을 옥상으로 이끌었던 깡마른 남자가 현지 가까이로 다가왔다. 손가락만한 이쑤시개에 사과 한 조각을 꽂아 건넸다. 현지는 그것을 낯설게 받아들었다.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졌지만, 침을 꿀꺽 삼키며 튀어나오려던 말도 함께 삼켰다. 


"오늘은 첫 날이니까, 사과만 챙겨서 얼른 사무실로 돌아가요. 이제부터 회사 생활이 꽤 힘들게 느껴질 거예요.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지, 다른 사람들의 무례한 태도들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셀 수 없이 많죠. 많이 힘들 땐 옥상에 올라와요. 각성한 사람들 말고는 그 괴로움을 이해해줄 사람이 없을테니까. 그리고 이거..."


현지의 손에 축축하고 끈적한 무언가가 건네졌다. 뱀처럼 둥글게 또아리를 튼 것처럼 깎은 사과 껍질이었다. 깡마른 남자가 말했다.


"이건 다른 사람의 각성을 위해 챙겨두시고, 현지 선배님이 눈치껏 사용해주세요."


진통제를 먹을 시간이 다 되었는지, 넘어지면서 다친 허리 부근이 찌릿 하는 통증과 함께 아파오기 시작했다. 현지는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또 한 손으로는 갈변하기 시작한 사과껍질을 꼭 쥔 채 비상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내장칩 따위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허리를 짚은 손으론 더듬더듬 무언가의 흔적을 찾으면서.


<끝>





'출근길에 읽는 초단편'은 출근하는 마음으로 쓰고, 공개하는 짧은 시리즈 소설입니다.

돈 벌고, 먹고 사는 일에 관한 모든 수고들을 소재 삼아 써나가려 합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래서 나의 삶과 닮은 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인스타그램 @hit_seul

이메일 kslgi06@naver.com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월화수목금 쓰고, 토일 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분한 업무가 사라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