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7. 목요일
"넌 마음만 먹으면 되는 놈이..."
"너는 얼마나 마음을 잘 잡수셨기에 그 따위로 사냐?"
생선구이 집에서 진철은 근식의 말에 발끈해 언성을 높였다. 진철에게 '연애'란 발작을 일으키는 버튼 같은 단어였다.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려던 손톱만한 가자미살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가 테이블 위에 툭, 떨어졌다.
"그래도 임마, 얼굴 본 지 10년 다 되어가는 친구 사는 걸 보고 그 따위라니."
"집에 늘어져 있으면서 월급타령 하는 와이프 꼴 보기도 싫고, 애들 엉겨 붙는 것도 싫다고 불평한 게 누군데. 차라리 퇴근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직장인이라 수당이라도 있으면 야근 실컷 하고 싶다고 틈 날 때마다 말했잖아."
"그거랑 네 연애랑 뭔 상관인데."
"너는 뭐 네 와이프랑 결혼식날 처음 안면 텄어? 연애했잖아. 3년이나 만나놓고. 너 분명히 나한테 그랬어. 이제 연애를 끝내고 싶다. 결혼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내가 이 따위로 먼저 살아본 자격으로, 나의 소중하고 절친하신 친구님께 말씀드리는데, 결혼은 하지 말고 연애만 해라. 결혼해서 힘들게 사는 내 핑계 대지 말고, 연애라도 하라고 쫌. 회사까지 와서 나한테 히스테리 부리지 말고."
진철은 스텐 그릇에 남아 있는 밥을 한입에 욱여넣고, 의자에 걸려 있던 자켓을 집어들고 일어섰다. 입 안 가득 음식물이 든 상태로 진철은 아직 테이블에 앉아 남은 밥을 먹고 있는 근식에게 외쳤다. 진철이 말을 이어 나갈 때마다, 입에서 튀어나온 밥풀이 테이블 위로 비온 뒤 벚꽃 잎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아니 왜 사람들은 나만 보면 연애하라고 난리들이야. 난 혼자서도 잘 놀고, 잘 지내는데. 누가 우리집에 CCTV라도 설치 해놓고 지켜보는 것도 아니면서 어디서 아는 척들인지. 그리고 근식이 너같은 사람들이 제일 나쁜거야. 꼭 연애, 결혼, 육아... 남들이 하는 거 다 해놓고, 피곤하다는 둥, 죽겠다는 둥 하면서 나같은 사람들 깔보듯이 연애만 하라고 하는 거. 되게 재수없어."
근식은 진철의 입에서 튀어 나온 밥풀이 반찬 그릇 이곳저곳에 떨어져 하얗게 빛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를 이어나갔다. 진철과 대학시절 친구로 만나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은 스타트업을 함께 운영하게 되며 보낸 세월만 10년이었다. 절대적인 시간만 놓고 봐도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눈빛 하나, 말의 오묘한 뉘앙스 하나에 상대의 마음에 깔린 의도를 알 수 있을법 했다. 물론 진철의 거친 말이 심기를 거스르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미운 다섯살을 지나는 딸, 민서가 어떻게 배워서 쓰는지 알 수 없는 거짓말을 섞어가며 땡깡을 피우는 일을 매일 겪다보니, 이 정도는 허허 웃으며 지나갈 수 있을 지경이었다. 아무튼 근식은 지금 이순간 진철과 달리 굉장히 이성적이다. 그래서 안다. 지금이 진철을 더 몰아붙일 중요한 타이밍이다.
"그래. 기왕 이리된 거 나도 솔직히 말해보자. 너 마음만 먹으면 된다 그런 거 다 빈말이야. 너 같은 놈은 마음 먹어도 안돼."
"뭐라고?"
"넌 마음이라도 단단히 먹어야 연애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1퍼센트 라도 생기는 거야. 사람들이 너보고 연애하라고만 했지 누구 소개 한 번 시켜준 적 있냐고. 거울을 봐봐. 네가 잘생겼어? 우리 회사가 잘나가서 돈을 왕창 벌어? 패션 센스는 어떻고. 저번에 미팅 왔던 사람들이 나한테 조용히 묻더라. 공동대표인데 나이 차이많이 나는 형님이랑 운영하는거냐고. 너는 애 아빠보다 더 나이 들어보이는 게 자존심 상하지도 않아?"
진철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 입안에 남은 음식들을 과장된 동작으로 삼키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을 집어들었다. 물컵에 물을 따르려 물병을 기울이는데, 잘 잠기지 않았는지 뚜껑이 왈칵 열렸다. 쏟아져 나온 물은 진철의 베이지색 면바지를 적셨다. 적셔진 부분은 진한 갈색으로 젖어들어갔는데, 마치 바지를 그대로 입은 상태로 실수를 한 것처럼 보기 흉해졌다. 진철은 테이블 위에 물병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생선구이집 사장님이 달려와 마른 걸레를 건네주어 닦아보았지만, 물이 번진 면적만 넓어질 뿐 나아지진 않았다. 진철은 씩씩댔다. 근식은 마지막 젓가락질을 하며, 진철을 향해 마지막 도발을 했다.
"네가 연애 안한다고 우리 회사에 문제 생길 것도 아니고. 뭐, 그냥 이따위로 사시던가."
물컵을 입에 가져다 댄 근식의 눈이 진철의 볼품없어진 아랫도리를 향하고 있었다. 비웃는 것 같은 표정으로 근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까지 마쳤다. 진철은 걸레를 쥔 손을 꽉 쥐었다. 부들부들 떨려왔다. 근식의 뒤통수를 향해 외쳤다.
"시발. 마음 먹는 게 어떤 건지 내가 보여준다. 근식이 너 이 새끼 재수없게 구는 거 꼴같잖아서 내가..."
근식이 진철을 향해 뒤돌아보며 한 쪽 입꼬리만 올리며 대답했다.
"네네, 그러세요. 공동대표님. 오늘 저희 HNQ 업무도 없으니 이만 퇴근하시고 마음 먹은 일 다 이루시옵소서. 근데 사람 마음이 회사 운영하는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을텐데. 진짜 성공하면, 보자. 줄 건 없고 내 차 너 가져라. 못할 게 뻔하지만."
식당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진철의 말을 분명히 들었다. 자신들의 테이블에 놓인 그릇과 접시에만 눈을 두는 것 같지만, 귀는 둘의 대화에 열려 있었다. 주방에 있던 생선구이 집 사장도 그랬다. 그는 손님들이 볼 수 없는 주방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오늘 날짜를 크게 쓰고 메모를 남겼다.
- 두명짜리 단골 중 못난놈, 오늘 중 연애 성공시 다른 단골의 차 획득. 실패하면? 그냥 쪽팔릴듯. 내일 오면 계란찜 서비스.
근식은 손까지 흔들며 여유롭게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진철은 큰 소리를 쳤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 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근식과 처음 HNQ를 만들고,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엔 2년 안에 호기롭게 20명의 직원을 뽑겠다는 목표까지 세웠었다. 물론 여전히 회사의 인원은 진철과 근식 단 둘 뿐이다. 공동대표이자 직원이자 청소담당자이자, 사무실 경비까지 하는 진철과 근식. 하지만 고작 두 명일지라도 이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꽤 힘이 드는 일이었다. 진철은 자신이 가진 모든 돈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근식이 신혼을 보내러, 아이의 출산 준비를 위해, 신생아를 혼자 돌보고 있는 와이프 곁으로 가기 위해, 아이의 등하원을 위해 등등 여러 이유로 집으로 간 뒤에도 그는 사무실에 남았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새벽까지 자리를 지켰다. 근식이 부탁한 것도 아닌데, 부분적으론 근식과 근식의 가족을 위해 그렇게 했다. 진철은 근식의 가정이 잘 유지되는 데엔 분명 자신의 몫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식의 말들이 서운하게 느껴진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철은 바지를 말리기 위해서라도 햇볕 아래에서 조금 걸어야할 것 같았다. 몇 걸음을 떼자 물에 젖은 바지가 불쾌하게 달라 붙었다. 그는 손으로 허벅지에 질척하게 달라붙은 바지를 손으로 떼어냈다. 한걸음을 다시 내딛자 다시 찰싹 달라붙어 그는 이번엔 양손으로 적극적으로 떼기 시작했다. 양쪽 다리를 좌우로 쫙 펼치고 손으로 안쪽 허벅지 부근에 손을 대었다 떼는 그의 모습은 경망스러워보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그 작업에 심취한 상태였다. 붙었다 떼어지는 과정에서 바지에 바람이 통해 젖은 부분이 더 빨리 마르는 기분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인기척이 느껴져 그는 고개를 들었다. 목줄을 멘 작은 개 한 마리를 산책 시키던 여자였다. 진철은 벌렸던 다리를 오므려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그러자 여자는 개와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진철은 순간 이런 타이밍에 나타난 여자가 드라마 같은 자신의 운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철이 한 걸음 더 여자 쪽으로 다가갔다. 여자는 두 걸음 물러섰다. 함께 있던 개는 여자가 물러서기 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있어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진철은 또 한 걸음 다가갔다. 개는 진철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만큼 긴장으로 점점 몸이 굳어갔다. 진철은 자신이 무해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해야 할 말을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고른 뒤 외치듯 말했다.
"강아지 털이 하얀 거 보니 노견인가봐요. 견주분이 관리를 잘해줘서 그런가, 아직 아기 강아지 같네. 얘는 푸들이죠?"
진철이 입을 떼자마자 개가 맹렬하게 짖어댄 탓에, 여자는 진철이 하는 말 대부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노견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들었고 이는 그녀의 심기를 확실히 건드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바지에 소변을 본 자국이 남아 있는, 남자가 평화로운 자신의 산책을 완전히 망쳐버리는 중이었다는 사실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여자는 짖으며 몸부림 치는 개를 끌어 안았다. 진철의 물음엔 대답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았다. 여자는 진철이 듣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얘가 어딜 봐서 노견이야. 아직 한 살 밖에 안 된 애기인데. 그치, 또또야."
진철은 어정쩡하게 서서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이 여자가 만약 내 진짜 운명이라면.'
그는 조바심이 났다. 한 손으로 달라붙는 바지를 손으로 잡아 당기며 여자가 간 쪽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먼 곳에서 앙칼지게 짖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진철은 본격적으로 인연을 찾아 나서기 전에, 걸어서 5분 거리인 집에 가서 바지부터 갈아입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순간엔 인지하지 못했지만, 여자가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마음 먹은 오늘 안에 인연을 찾겠다고 혈안이 되었던 그 순간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진철은 평소와 달리 길을 걸으며 두리번거렸다. 길은 여전히 한산했다. 그러다 유모차에 가지런히 쌓은 폐지를 담아 끌고 가던 할머니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진철을 한 번 훑더니 혀를 끌끌 찼다. 그러더니 라면 박스 하나를 아무말 없이 건넸다.
"숭해. 숭해서 못 봐주겠어. 아저씨가 대낮부터 술을 정신 못차릴 정도로 마신겨?"
"아, 아뇨. 이건 물인데... 물을 엎었어요."
"하도 두리번거리고 하니, 정신을 좀 놨다 싶어서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 바지에 오줌도 잔뜩이고. 이러다 무슨 일 나는 거 아닌가 해서."
"저 술 안마셨고, 이건 소변 아니고요. 두리번거린 건 오늘 찾아야 될 사람이 있어서."
"뭐가 그리 급해서 그 꼴로 사람을 찾아다녀."
"마음을 먹은 김에 해치워야 될 일인데..."
"뭐 집사람이라도 도망 나갔어?"
"아뇨. 저 아직 총각이고..."
"숭하니까 바지부터 이걸로 가려."
진철은 접힌 박스를 펼쳤다. 아래 위 뚫린 사이로 발을 집어 넣고, 훌라후프를 걸치고 있듯 박스를 허리쯤에 걸치고 섰다.
"좀 낫네. 이제 그러고 집으로 곧장 들어가. 사람들 놀래키지 말고."
"네."
"박스값은 다음에 줘."
"아... 그냥 주시는 게 아니었구나. 얼만데요? 지금 드릴게요."
"3만 원."
"라면 박스 하나에요?"
"바지값은 받아야지. 돈 없으면 다음에 줘."
돈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받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지 않고 할머니는 유유히 유모차를 밀며 떠났다. 진철은 손으로 박스를 꽉 쥐었다. 좀전까지는 분명 부끄럽지 않았는데, 박스로 가리고 있는 잠깐 동안 엉망이 된 바지가 혹여 밖으로 드러날까봐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진철은 이번엔 박스로 자신의 하체를 사방으로 가린채 어기적어기적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악! 또또야! 도와주세요!"
진철은 다급한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봤던 개가 차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었다. 진철과 가까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평소 운동과는 거리를 둔 진철이 개를 잡아낼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경적 소리를 요란하게 울린 차들이 개 근처를 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진철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진철 외에는 길을 걷는 사람은 없었다. 먼 곳에서 여자가 우는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진철은 허리에 끼고 있던 박스를 빠르게 빼내어 들고 차도 한 가운데로 뒤어들었다. 개가 진철과 가장 가까워진 순간, 진철은 온 몸을 날려 박스를 울타리 삼아 개를 가두었다. 날개처럼 펄럭이던 박스 윗부분이 자연스럽게 덮이며 개는 꼼짝 않고 그 안에 앉아 있게 되었다.
"무슨 노견이 이렇게 쌩쌩해."
진철은 박스 윗부분을 손으로 누른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스팔트에 쓸린 베이지색 바지가 군데군데 찢겼고, 더러 상처가나 피가 흐르기도 했다. 쓸린 자리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여자가 숨을 헐떡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어머, 또또야. 우리 아기."
여자는 상자 윗부분을 열었다. 또또라는 개는 제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는지 연신 으르렁대고 있었다. 여자는 제 개를 잡느라 온 몸이 찢긴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진철은 자신을 경멸할지도 모를 여자에게 감사 인사나 사과 인사를 구태여 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얼른 집으로 돌아가 바지를 갈아입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래야 근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진철은 근식의 차 키를 뺏어들고, 낄낄대며 웃고 있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 나왔는데, 여자가 또 진철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진철을 노려보듯 바라본 뒤, 발버둥치는 개를 상자 밖으로 꺼내 안았다. 상자는 그대로 도로에 둔 채 뒤를 돌아 총총 걸어나갔다. 진철은 덩그러나 도로에 남아 있는 상자를 집어 들었다. 이래봬도 3만원이나 하는, 진철의 상자 바지이자 개를 구한 생명의 은인 상자인데. 진철은 속으로 생각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왜 따라 오세요?"
여자가 제 개처럼 앙칼지게 물어왔다.
"도로에 계속 서 있으면, 아줌마 강아지가 겪었던 죽음의 위기를 저도 겪는 거예요."
여자는 눈을 흘기며 개를 꽉 끌어안았다. 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여자의 손 언저리를 사정없이 물어대고 있었다. 진철은 근식으로 인해 마음을 먹은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벌써 지치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가 씻고, 쉬어야할 것만 같다. 사과를 듣고 싶은 마음으로 도운 건 아니었기에 진철은 여자를 한 번 노려보고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등 뒤에서 으르렁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집 바로 앞 골목에 이르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진철은 빌라 대문 앞에 이르러서야 뒤를 돌아봤다. 그 여자였다.
"생각해보니 사과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던가요?"
여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여기까지 따라오셨으면 마음 먹은 것 같은데, 사과하실거면 얼른 하세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철은 무릎에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다. 모든 게 지긋지긋해질 지경이었다. 사과를 모르는 여자 대신, 근식이에게라도 사과를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하는데, 지독한 성질머리를 가진 강아지가 또 짖기 시작했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짖는 소리 사이로 여자가 우물거리며 뱉는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가... 미안..."
"뭐라고요?"
"또또가 미안하대요, 그리고..."
"저 지금 굉장히 피곤하거든요."
"저도 이 건물 살아서, 좀 비켜주세요. 저도 또또 발 씻겨야해서."
여자는 진철을 밀치다시피하며 빌라 입구로 먼저 들어가버렸다. 빌라의 반투명한 문이 진철 앞에서 닫혔다. 진철은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한참 마주했다. 만신창이가 된 남자, 마음을 먹은 남자가 봄 한복판에 서있었다.
<끝>
'출근길에 읽는 초단편'은 출근하는 마음으로 쓰고, 공개하는 짧은 시리즈 소설입니다.
돈 벌고, 먹고 사는 일에 관한 모든 수고들을 소재 삼아 써나가려 합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래서 나의 삶과 닮은 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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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월화수목금 쓰고, 토일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