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개던 오후..
몇 해 전 한국 친정에 머물 때 다.
엄마가 아빠 사무실 일로 바쁜 오후, 나는 방에서 작업을 하다 말고 거실에 나갔는데 그날따라 빨래 건조대에 빨래가 버거워 보일 정도로 많이 걸려 있었다.
나도 일이 많이 밀려 있었지만, 엄마도 나와 아이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동안 평소 아빠와 두 식구가 아닌 우리를 챙기느라 여유가 없음이 느껴졌다.
나는 티브이부터 켜고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개어내기 까다로운 속옷부터 차곡차곡 모아 하나, 둘 개었다.
엄마 속옷, 아빠 속옷, 나와 아이의 속옷... 이렇게 분류하여 안방 옷장 문을 열었는데..
아빠 속옷 서랍은 열자마자 차곡차곡 가지런히 정돈되어 누가 봐도 살림 잘하는 아내가 사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엄마의 속옷 서랍은 열고 보니 속옷들이 곧 세탁을 해야 할 것만 같이 빨래 바구니에 막 던져둔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순간 목구멍이 따가워져 내가 차곡차곡 갠 엄마의 속옷들을 서랍에 있던 것들 마냥 흐트러서 쑤셔 넣고 얼른 서랍을 닫아버렸다.
밴쿠버로 돌아와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빨래를 개던 어느 날 오후,
드라이어에서 바로 꺼내지 않아 꼬깃해진 옷들을 궁시렁대며 꺼내면서 바쁜 요즘을 돌아봤다.
소파에 앉아 빨래 개어 둘 여유도 없이 뭐가 그렇게 바빴나 생각하며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남편 옷, 아이 옷을 먼저 꺼내어 차곡차곡 쌓아내고는 각 서랍장에 가지런히
정리해 주고, 막상 내 옷은 대충 접어 서랍장도 아닌 그 위에 척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설거지를 하러 가다가 문득 몇 해 전 그날, '엄마의 속옷 서랍'이 떠올랐다.
'엄마'라는 자리는 게을러질 수가 없다.
그 게으름이 허락된다면 최소한 본인 자신에게만 해당될 것이다.
그 누구보다 여러 역할로 기본기는 다져져 있지만, 여자로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오는 몸의 변화를
혼자 묵묵히 감내하며 바깥일로 바쁠 가족들의 일상을 뒤에서 조용히 책임져 주다 보니,
내 한 몸, 내 옷장 안 챙길 여유 따위는 진작에 피곤해 파묻혀 버렸을 수도...
내년에 한국에 가면 친정집에 최신식 드라이어를 한대 놔드려 빨래를 너는 수고 정도는 줄여드리고 싶은데..
또 마다 하시겠지…?
우리가 떠나 온 후, 엄마의 속옷 서랍은 가지런히 정리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