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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nnjoy Apr 25. 2023

기억하고, 마주하고, 되살리다

신카이 마코토 作 <스즈메의 문단속> 리뷰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 마지막 시리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해당작 이전에도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를 통해 꾸준히 재난을 마주하는 방식에 대한 심도 있는 내러티브를 선보여 왔다. <너의 이름은>을 통해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억하자'며 재난이라는 과거를 상기했다면,  <날씨의 아이>를 통해서는 희생자의 존재를 잊어가는 우리의 현재를 마주했다. <날씨의 아이> 속 호다카는 유일하게 히나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녀를 되살리고자 고군분투한다. 이는 재난으로 표방되는 여러 사회구조적 병폐이자 현실 앞에서 우리가 '어쩔 수 없다'며 묵과해 온 희생들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만든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보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인간이 재난이라는 역경을 딛고서 삶을 재건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이전 작들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마주했다면, 이번 작을 통해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재난 이후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복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해나가는 '미래' 관해 얘기했다. 그러한 미래를 영위하기 위해서 피해자들의 자기 의지에 더해, 타인의 관심과 애정이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한다.


스즈메의 의자는 아직 재난이라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스즈메의 자의식을 상징한다. 스즈메는 '본능적으로' 의자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소타를 구해내고자 하는데, 이는 아직 회복하지 못한 트라우마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해내고자 하는 움직임과 같다. 그러니 죽음을 감내하고서라도 소타를 구하고자 하는 스즈메의 사랑은 꽤나 필사적이고, 절실할 수밖에. 스즈메가 대략 10년이라는 세월 이후 잊었던 과거를 마주하기 위해 죽음의 세계로 직접 걸어들어간 것처럼,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제대로 마주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과 죽음에 견주는 고통이 따른다.


피해자가 삶을 재건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과거를 직접 기억하고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스즈메는 재난이 드나드는 문을 닫으며 과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까맣게 잊고 있던 자신의 어릴 적 일기장을 뒤적이고, 끝내 죽음의 세계로 건너가 자신의 어릴 적 모습과 조우한다. 관객들도, 그리고 스즈메 본인조차 어릴 적 여읜 어머니의 환영일 것이라 생각했던 문 너머의 여자는, 다름 아닌 스즈메 자신이었다. 재난으로 잃은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과거의 스즈메를 현재의 스즈메가 기억하고 마주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침으로써 스즈메는 재난의 문을 닫고, 소타를 살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과거로부터 구해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스즈메의 이 모든 과정에 소타가 있었다는 점. 소타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타인'의 존재는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한다. 소타는 재난을 목격할 수 있는 몇 없는 존재들 중 하나이며, 재난의 문을 잠글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인물이다. 소타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스즈메가 재난의 문을 닫을 수 있게 되었듯이,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는 피해자 자신의 의지 뿐만 아니라 재난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타인의 존재 또한 필요하다. '세상은 원래 이렇다' 묵과하지 않고 여전히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미래를 함께 재건해주자는 것,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3부작에 걸쳐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가 아닐까.


'스즈메의 작은 의자'가 '스즈메의 문단속'이 되기까지, 잊혀진 이름을 기억하고 마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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