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아일리쉬의 i
당신은 내가 원하던 모든 것이었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이 되고 싶지 않아요
영어권 국가에서는 문장을 쓸 때 어느 위치에서든 ‘I’를 대문자로 높여 쓴다. 이는 타인중심적인 우리나라 문화와 달리 개인중심적인 영어권 국가의 문화가 반영된 산물이다. 영어권 국민들의 ‘나’에 대한 개념은 생각보다 원대하다. 문장 한가운데서도 ‘나’라는 말 만큼은 대문자로 높여쓸 정도로, 그들에겐 ‘나’라는 존재가 특별하고 중요하다.
반면 빌리아일리쉬의 ‘나’는 작디 작다.
빌리의 트랙 리스트 속에 ‘나’를 대문자로 높여쓴 경우는 하나도 없다. 늘 ‘i’라는 소문자만큼 작은 자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음악 속 ‘나’는 늘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다 소멸해간다. 내가 곧 너가 돼버리는 그런 맹목적인 사랑 속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나를 더이상 행복하게 만드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섬짓하게 마음이 울렁거리는 순간을, ‘아, 이제 더이상 나는 너 없이는 안되겠구나’하는 위기감을, 비좁은 마음을 가진 우리는 한번쯤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2022년 8월 19일의 Re-View,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