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빠르게 달린 우버의 독불장군 경영
2008년 파리의 눈 내리는 어느 밤, 가렛 캠프와 트래비스 칼라닉은 길가에서 얼어붙은 채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택시를 보며 극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이 사소한 불편함이 "버튼 하나로 차를 부를 수 없을까?"라는 상상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시가총액 수십조 원의 거물 '우버(Uber)'의 탄생 신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혁신의 시작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이 이면에는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공격적이고 위험한 '독불장군'의 야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칼라닉에게 세상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무너뜨려야 할 구체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칼라닉의 호전적인 경영 스타일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의 20대는 처절한 실패와 분노로 점철되어 있었다. UCLA 재학 시절 창업한 파일 공유 서비스 '스코어(Scour)'는 당시 미디어 업계 거물들로부터 무려 2,500억 달러라는 비현실적인 액수의 저작권 소송을 당하며 파산했다.
갓 대학을 중퇴한 청년에게 이 천문학적인 소송은 기성 권력이 혁신을 어떻게 짓밟는지 보여주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이후 그는 '레드 스우시(Red Swoosh)'를 창업하며 재기를 노렸는데, 그는 이 회사를 대놓고 '복수 비즈니스'라 불렀다. 자신을 파멸시키려 했던 미디어 업계에 대한 반격의 의미였다. 자금난이 극심했던 시절, 칼라닉은 직원들의 급여 세금 약 11만 달러를 회사 운영비로 전용하는 결단을 내린다.
명백한 법적 위반이었으나, 그는 이를 기업 생존을 위한 '협상 가능한 돌파구'로 여겼다. 이때부터 칼라닉의 뇌리에는 "법은 지켜야 할 원칙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돌파하거나 우회해야 할 장애물"이라는 인식이 박혔다.
2010년 샌프란시스코 교통국이 우버에 영업 중단 명령을 내렸을 때, 칼라닉의 반응은 전형적이었다. 그는 명령을 비웃듯 무시했다. 오히려 회사 이름에서 '택시'를 연상시키는 '캡(Cab)'이라는 글자만 쓱 지워 '우버(Uber)'로 바꾸고는 영업을 강행했다.
그의 철학은 명확했다. "허가받지 않는 혁신(Permissionless Innovation)"이다. 그는 기득권이 장악한 규제 기관에 미리 허락을 구하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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