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Coach Journal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잠시 고민했다.
[컴퓨터 끄고 갈까? 켜놓고 갈까?]
비슷한 고민을 비슷할 때 하게 된다.
[그렇게 오래 잠을 잘 것 같지 않은데]하면서,
[그럼 금방 와서 또 컴퓨터 켜고, 프로그램 띄우고 해야 하잖아. 귀찮아.].
귀찮은 거다. 그리고 효율성을 따지려고 하는 것이다. 효율성을 따지면서 나의 귀찮음과 게으름을 합리화한다.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쉬웠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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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속으로 들어가서 폰을 확인한다. 배터리가 거의 없다. 10% 정도 남았다.
[충전시켜놓고 자야 할까?]
잠시지만 또 고민한다. 선이 머리맡에 있어서 폰에 연결을 하면 선 정리를 하고 누워야 잘 때 신경이 안 쓰인다.
[10% 정도면 잠깐 자는 동안에는 괜찮을 거야. 일어나 컴퓨터 앞에 가서 다시 충전해도 괜찮을 거야.]
몸은 잠을 열렬히 부르고 있고 그렇게 온 잠이 순식간에 달아날까 싶어 정말 짧은 동선이지만 폰을 옆에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따뜻하니 빠르게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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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깼다. 저녁 수업을 하러 나서야 하기에 컴퓨터 앞에서 일할 시간이 많지 않다. 문제는 눈이 잘 뜨이지 않는다.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 고민한다.
[지금 일어나면 저녁 수업 때 괜찮을까? 집중을 잘할 수 있을까?]
결국 저녁 수업에 좋은 컨디션으로 가야겠다는 선택과 그에 따른 합리화를 하고 다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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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더 오래 깊게 잤다. 저녁 수업 준비도 해야 하는데 오늘 마무리하려고 했던 글도 있다. 일어나면서 고민한다.
[저녁 수업 준비부터 해야 할까? 마무리하려고 했던 글을 조금이라도 더 쓰고 저녁 수업 준비를 할까?]
그렇게 컴퓨터 앞으로 갔는데, 고민했던 두 가지 말고 전혀 다른 일이 생각난다. 결국 그 다른 일부터 하고, 저녁 수업 준비를 겨우 마치고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정도 여유만 가지고 집을 나선다. 오늘 마무리하려고 했던 글은 돌아와서 마무리하겠다 생각한다.
종일 효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까?]
[무엇이 내 마음을 더 편하게 해 줄까?]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고, 나를 위하지 않는 것인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뭘 해야 할까?]
[어떤 옷을 입지?]
[뭘 먹을까?]
[웃을까? 웃지 말까?]
[무엇을 노력하고, 무엇을 노력하지 말까?]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심지어 내가 기억도 못 할 질문들이다. 그리고 그 많은 질문에 대한 판단 기준은 내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효율성이다.
캐릭터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캐릭터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알아야 한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후회를 할지언정 그 순간에는 거짓말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라기보다 믿는 행위가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자살하려는 캐릭터는 자살이 그나마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더 나은 것이라 판단되는 것을 선택하고, 선택한 것이 더 나은 것이었다고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이 속에서 [정말 무엇이 더 좋은 것이었냐?]라는 사회적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캐릭터는 무엇이 더 나은 것이라 판단하였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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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낮에 낮잠을 길게 자지 않았으면 지금쯤 편하게 쉴 텐데. 글을 마무리하느라 이렇게 컴퓨터 앞에 피곤한 눈을 뜨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 않았을 텐데. 아니다. 그래도 낮잠을 좀 잤으니 이 정도라도 집중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낮잠을 자고 글을 썼다고 한들 마무리가 됐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