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고향은, 히가시 오노미치 니시신뎅 어디쯤이었고, 영화 속 노부부의 고향도 오노미치였기 때문이었다.
오노미치는 아름다운 세토내해에 있는 작은 도시로, 히로시마에서 버스로 약 1시간 넘는 거리에 있으며 전 세계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자전거 길로 유명한 시마나미 해도의 시작점이었다. 이곳이 그의 고향 오노미치다.
출처: 오노미치시
출처: 싸이클라이프
아이러니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던 그 해에 아버지와 약속했던 여행을 다녀왔었다.
아버지가 열일곱의 나이로 고향을 떠난 지 64년이 돼 던 해였다.
과거 4천만 동포 모두가 제국주의 열강들의 야만의 횡포 속에 식민지 시대를 살아내고, 바로 이어 동족상잔의 전쟁 비극을 겪었던 것 우리 민족의 삶의 질곡처럼, 그의 생애도 야만의 시대가 할퀴고 간 상흔들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거기에 그의 천성이 더해져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말이 거의 없었다. 마치 동안거 중 묵언수행하는 수도승처럼.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삼천리 자전거에 막내아들을 태우고, 중학교 3년 동안 내내 아침마다 등교를 시켜 주던 너무나 따듯한 아버지였다. 나는 그 시절, 그의 등을 기억한다.
대학을 군장학생으로 다니고, 6년간의 군장교 생활을 마친 후 바로 대학원에서 학위과정을 진행했던 나는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었지만, 64년 동안 고향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한 나의 아버지를 위해 작은 선물, 고향방문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아무리 우리 민족에게 야만의 횡포를 휘둘렀던 일본이지만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 애증의 상대인 큰 형이 여전히 오사카에서 살고 있었고, 동경에서 병원을 할 정도로 부유한 자식들을 두고 있었지만 일본으로 귀화한 그 자식들에게 결국은 버려져 동경 근처 어딘가 정신병원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고만 알고 있는 그의 누나가 잠들어 있던 나라 일본.
누군가 그곳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일본에 남은 형과 누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그는 싫어했다. 특히 애증의 상대인 자신을 타국에서 버렸던 큰형에 대한 이야기는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몇 년 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큰 아버지가 되는 그분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병간호를 받으며 임종을 맞았다. 그것도 우리나라, 우리 집에서.
64년 만에 찾은 고향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고향집에 내려갈 때마다 나는 여러 번 오노미치 방문을 말씀드렸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군인으로 살다가 이제야 학위를 마치고 취업이라는 것에 성공해 첫 사회생활, 첫 발을 내 디딘, 경제 사정이 뻔한 막내아들에게 미안해서이기도 했겠지만, 그의 가슴 한편에는 그때의 기억을 굳이 추억하기 싫어하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미안함과 주저함을 알고 있었지만, 인생 황혼기의 끝자락에 다다른 그에게, 그가 태어난 고향을 다시 눈으로 담고, 회한을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끝까지 반대할 것이기에, 아버지에게 일정을 통보하고, 여권 준비부터 숙소예약까지 빠르게 끝내고 방문 준비를 마치자마자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를 모시고 일본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향하던그의 발걸음은 마치 십 몇 년 전 자신을 타국에 버리고 도망가버린 그의 형을 수십 년 만에 처음 만나러 가던 1986년의 그날 밤처럼 내가 따라잡기에 너무도 빨랐다. 그리고, 난생처음 고향행 비행기에 오른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고향까지는 1시간 남짓.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다. 비행기에 오른 지 얼마 안돼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오노미치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세토내해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 오노미치, 그곳으로 향하는 시외버스는 구불구불한 지방도를 따라 나있는 아름다운 이름 모를 강변을 옆으로 하고 한참을 달렸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작은 항구도시 오노미치는, 언덕배기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오래된 골목길이 많아서 충무나 여수를 여행했을 때 느꼈던 풍경과 감흥처럼 크게 이질감 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호적에 기록된 일본 출생지를 근거로,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 지금의 오노미치시 어디쯤이 아버지의 출생지인지 찾아냈고, 오노미치시에 메일을 보내 대략적인 주소를 미리 확인했었다. 그곳은 오노미치역에서 전철을 타고 몇 정거장 가면 있는 오노미치시 니시신뎅 어디쯤.
그곳에 내렸을 때, 17살 나이에 떠났던 고향에 다시 돌아간 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히, 사람들도 건물들도 모든 것이 더 이상 아버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그 고향이 아니었다.
동경이야기 속 영상, 오노미치
동경이야기 속 영상, 오노미치
할아버지의 일본 지인이 간척지 개발에 투자를 했고 이런 인연으로 일본으로 건너와 정미소를 운영하며그 사람의 도미 양식장를 관리하셨던 할아버지.
근처 일본인들도 봄이되어 먹을게 부족해지면 양식을 빌리러 오거나 근처 오노미치항 옆에 있던 미츠비시 조선소에 징용 당해 온 조선동포들이 도망쳐 나오면 할아버지 집에 숨겨 주었다가 양식과 돈을 주고 도피를 도와주시곤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그가 오노미치 농림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방탕했던 큰 형의 꼬임에 넘어가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 무작정 형을 따라 중국 려순 조선소로 떠나는 일생이 파도로 변하는 선택을 했다.
해방 이후 큰아들과 둘째 아들인 아버지가 몇달 째 돌아오지 않자 일본에 더 머물 이유가 없었던 할아버지는 재산을 제대로 정리도 못한 채 출가한 큰 딸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과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셨다.
하지만, 큰 아버지는 아버지의 돈만 몰래 챙기고 동생은 중국에 버려둔 채 일본으로 홀로 돌아가 살다가 1986년 아시안게임으로 조총련을 포함한 재일교포와 본격 왕래가 있기까지 서로 생사도 모른 체 살았었다.
17살 철부지에 고향을 떠나, 형에게 버려졌던 사연을 지닌 아버지는, 인생의 황혼 끝자락에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음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가슴속으로 셀 수 없이 떠올렸을 그의 고향, 친구들. 학교, 동네의 오래된 길들. 그래도 많이 변했겠지라고 생각했겠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음에 당황하던 그의 모습과 골목 어귀에서 연신 담배만 피워대던 그날의 아버지의 옆모습. 내 머릿속에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의 깊은 한 숨.
다시 돌아왔지만, 추억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
예전 기억 속 간척지는 주택 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섰고,
고향집과 정미소와 양식장 자리에는 오래된 낡은 수문만 녹이 슨 채로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래도 그 수문을 발견했을 때 아버지는 꽤나 흥분된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었다.
"할아버지가 매일 물 때에 맞추어 이 수문을 열고 닫았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다니!"
할아버지가 관리했었던 그 낡고 작은 수문과 콘크리트로 변한 제방만 남아 있었다. 그가 다니던 학교들 마저도 기억 속에는 간척지 내에 있었는데, 모두 동네의 언덕 위로 이전되어 올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던 우리들이 가여웠는지 아니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보고 다니던 우리가 이상해
보여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역 경찰관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고 아버지의 고향이 이곳이라
64년 만에 방문했다는 사연을 알고 친절하게 우리를 도와주려 했었다.
다행히, 친절한 경찰관들이 나서서 아버지 친구분들의 이름을 지역 경찰 전산망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돌아가셨거나 다른 도시로 이주한 지 오래된 후였다.
그리고, 경찰들은 우리보다 더 아쉬워하며 오래전 오노미치 사진이 많이 들어 있는 지역상공회의소에서 발간한 오노미치 소개 책자를 선물로 주었고,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끔씩 그 책을 꺼내보시는 것으로 고향을 추억하곤 했었다.
그에게 추억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의 고향을 눈에 다시 담을 수 있게 해 준 것에 다행이라 싶었다.
나는 그 뒤부터 오노미치의 오래전 사진이나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동경이야기라는 오래된 영화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생각날 때, 가끔 이 영화와 그때 함께 방문한 오노미치와 그때의 추억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날 골목길에서 봤던 아버지의 깊은 한숨이 생각나 마음 아프지만 한편으로 나는 그와의 여행으로 추억할 것이 많이 남아 있음에 행복했다.
오늘도, 그를 추억할 수 있어 행복하다
오늘밤은, 변해버린 고향 골목길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추억할 것이 남아 있음에 행복한 하루에 위안을 삼는다.
오노미치역 우측에 있는 오래된 마을.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으로 자주 나온다. 일본의 전형적 골목길로 관광객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