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밭, 모네, 바람?

by 뭐라카노 하루끼
청보리밭 풍경과 소리. 꼭! 한 번 느껴보세요






1980년 5월 초 광주 변두리 어느 동네.


어른들은 불안해했던 것 같았지만,

그나마 나에겐 아직까지 평화롭던 봄 날이었다.


보리가 아직은 파란색을 많이 유지하던 였으니

막 4월 말을 지난 5월의 첫날부터 어느 즈음 어느 늦은 오후쯤들의 기억들이

에겐 깊이 남아있다.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방을 마루에 팽개치듯 내 던져놓고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으로 달려 나섰다.


자랄 대로 자란 멋진 청보리밭.

그 밭두렁 사이를 가로질러 종종 거리며 달려가다 숨이 차면 멈춰 서서

멍 때리며 가만히 서 있기를 반복했다.



더 이상 달려가기 힘들어지면

밭두렁에 그냥 서서 청보리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청보리로 가득 찬 들판과 그 너머를 바라보곤 했던 기억.


그 보리밭에 바람이 불면

경주하듯 달려가는 바람의 길들이 보였다.


늦은 햇살을 즐기던 보리들은

불어오는 바람에 을 기댄 채 손을 잡고 군무를 추듯

부드럽게 사삭 사삭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들판과 산들을 쏘다니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석양이 지기 시작할 때 바라봤던 청보리밭은

조금씩 갈색이 섞여 빛바래져 가는

청색과 옅은 오렌지색 노을빛이 섞여 아름답기도,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했던 묘한 느낌의 풍경으로 변해 있곤 했다.


이 날들이 지나 몇 주 후 광주 변두리의 우리 동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죽었다.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묘한 느낌의 그림



Madame Monet and Her Son, 1875, Claude Monet, 프랑스, 100x81cm, 내셔널 갤러리 , 워싱턴 D.C.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클로드 모네다.


오랑주리 미술관 입구 쪽에 있는

그의 너무나 아름답고 거대한 수련 연작들.

그 그림들을 랑주리 홀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 숨이 멈출 것만 같은 아름다움에 원형 벤치에 앉아 한참을 하나하나 돌아가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수련 연작들보다

양산을 든 여인을 더 좋아한다.


오래전, 미국에 장기 출장을 갔을 때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봤던 추억의 그림.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의

평일 오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까미유와 장을 그린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 앞에 서서, 다리가 아프면 다시 멀찍이 떨어져서,

한 시간 동안 이 그림만 멍 때리듯 바라보았다.

( 하지만, 지금 글을 적으며 생각해 보니 아들에게는 너무 지루한 시간이었을지도...)



다른 멋진 그림도 많았지만,

유독 이 그림을 좋아했던 이유는,

어릴 적 그날 보리밭에서의 느낌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공존했던 80년 5월 청보리밭의 기억.

그때 청보리밭에 불던 바람의 길들, 소리들, 색감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베일 속 까미유의 머리칼과 옷자락, 흔들거리는 꽃들,

그리고 흩어져 흘러가는 구름들이 오버랩되곤 했었다.




모델과 화가로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모네 집안의 반대로 힘겨운 생활을 했던 두 사람.


하지만, 시간이 흘러 모네와 알리스의 바람 사이에서 힘들어했던 까미유.

자신을 향했던 사랑은 이미 추억이 돼버렸음을 알았을 때

쓸쓸한 까미유의 표정이 이 그림에 오롯이 남아있었다면 나의 착각일까.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트리거들이 있다.

5월 광주의 청보리밭. 모네 그리고 까미유.

그들의 작품 양산을 든 여인.





여러분들도 좋은 기억을 소환하는 트리거들이 있지요?







( 모네는 여러 버전의 양산을 든 여인을 그렸었다. 위 그림은 까미유가 아닌 쉬잔을 모델로 한 것이다.

쉬잔은 까미유가 병으로 죽은 후 재혼한 두 번째 부인인 알리스의 딸이다. 모네는 그립고 미안한 까미유의 얼굴을 거기에 그려 넣을 수 없었기에 얼굴 또한 매우 흐릿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진다고 꽃이 아닌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