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NPR>, <시카고 트리뷴>, <스미소니언> 선정 2020년 최고의 책
중학교 2학년때 국사 과목을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은 수업을 하다 말고 가만 멈춰서서 자주 이렇게 얘기하시곤 했습니다. "너희는 내 인생의 점에 불과해." 끝없이 이어지는 역사처럼 계속해서 바뀔 학생들 속에 너희는 내게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겠지요. 그때 그 말을 하던 선생님의 무표정 만큼이나 담임 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특별한 추억 없이 무채색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자의 아버지도 딸에게 그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일곱살 딸이 던진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라는 질문에 "의미는 없어!" 하고 단언했다고 해요. 저자의 아버지는 원기왕성한 과학자로, 본인의 직업과 일상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해가며 활기 넘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그런 아버지와는 달리, 소녀는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평생을 세상의 혼돈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야만 했습니다.
힘겨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성장한 그는 인생의 큰 상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암울한 시기, 너무나 매혹적인 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어요. 130여 년 전 미 서부 명문인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자, 물고기 분류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이었지요.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이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한 것이었을 정도로 그의 업적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저자가 그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던 건 이 혼돈의 세상 속 벼락 같이 찾아오는 인생의 실패들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던 모습에서였어요. 지진과 화재로 평생 모아온 물고기 표본 통들이 무참히 부서지고, 아내와 아이의 가슴 아픈 죽음을 겪었음에도, 포기를 모르고 한 인물을 나아가게 하는 힘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한 것이죠.
저자는 그에 대한 모든 자료를 섭렵했습니다. 생물 분류학의 계보와 그에 관련된 여러 과학 이론들을 따라가야 하는 작업 속에 과학 전문 기자였던 저자의 직업적 소양이 십분 발휘되었지요. 그리하여 그는 자연세계를 수집하는 것을 즐기던 소심한 소년이 어떻게 물고기의 세상에 발을 들였는지, 외아들을 잃고서 학교를 세웠던 스탠포드 부부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막대한 후원에 힘입어 얼마나 화려한 연구 생활을 이어가고, 명예와 권력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쫓아갑니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던 무렵, 데이비드는 서로를 마음에 들지 않아했던 제인 스탠포드(스탠포드 부인)와 점차 대립각을 세워가기 시작했어요. 제인은 학교의 중진 이사들에게 데이비드의 도덕적 결함들을 폭로하는 편지를 보내 그의 전횡을 저지하고자 합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데이비드에게 제인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을테고, 어느날 그녀가 여행 중 예기치 않게 사망하자 이제 데이비드에게 가릴 것은 하나도 없는 듯 했어요.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미심쩍음을 버릴 수 없었던 저자는 온갖 기록을 뒤져 진실을 쫓기 시작하지요. 현재 스탠포드 대학의 웹페이지에도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나와있는 제인의 사인에 대해서요. 이 부분에서 책의 장르는 돌연 추리물로 바뀝니다.
제인의 죽음 이후 데이비드는 우생학이라는 학문에 빠져듭니다. 이 개념은 가난, 범죄, 문맹, 정신박약 등의 특징들이 혈통과 관련된 것이라고 믿고, 이 특징들을 인위적으로 교배함으로써 열등한 유전자를 배제하여 강한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개념이었지요. 처음 이 개념이 등장했을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고 넘겼다고 해요. 당연히 그도 그럴 것이 위 특징들은 유전 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발현되고 강화될 수 있는 특징들이니까요. 더구나 '열등한' 사람들을 말살시켜 버리겠다는 생각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얼토당토 않은 생각인가요? 하지만 당시 미국은 그 개념을 적극 채택하여 그런 사람들에 대한 강제 불임화를 합법화 하고, 대학에 강의들을 개설하며, 사회 곳곳에 문화를 퍼뜨렸단 말입니다. 처음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공상적 개념이, 자신의 과학적 권위로 이를 적극 옹호하는데 열정을 불태웠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같은 사람에 의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죠!
데이비드의 추악한 실체를 마주한 저자는 이 질문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자가 처음 그에게 매혹된 강력한 이유였던, 이 세상의 혼돈과 불시에 주어지는 실패들 속에도 앞을 향해 나아갔던 그의 불굴의 의지의 실체란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이었죠. 모든 증거들이 틀리다고 말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의 자기 확신은 어디에 기인한 것이었을까요. 사회적 도덕적 철학적 증거들은 차치하고라도, 평생을 몸 담아온 과학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과학자인 그가 절대 모르지 않았을텐데 말예요. 이 지점에서 저자는 데이비드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어쩌면 자신의 그것과 닮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린 시절 아빠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느꼈던 황량한 혼돈이 어린 데이비드에게도 똑같이 있었을 거라고요. 데이비드는 세상의 생물들을 분류하고 위계를 세우는 질서 안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이 일평생 그의 필사적인 믿음이 되었던 것이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짓밟고,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까지요.
저자는 이제 한때 자신의 인생에 답을 줄 사람으로 여겼던 인물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나섰지요. 바로 데이비드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현실로 바뀐'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십 수년을 지내다가 강제 불임화 수술을 당하고, 수용소를 나온 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두 여인을요. 당시 사회는 소녀에게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다는 '부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수용소에 수용된 다른 아이들을 돌보고, 불임화 수술을 피한 다른 여인의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봐준 그의 평생이 그가 훌륭한 어머니가 되기에 얼마나 모자람이 없었는지를 말해주는 듯 했어요. 지금 그들은 끔찍한 경험을 공유했던 이들로서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더 넓은 공동체의 사람들과 서로를 비추며 삶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어가고 있었지요. 그들이 서로에게 단지 점과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내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마침내 저자는 아버지에게 반박할 말을 찾아냅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구요!"
책을 덮고난 후 많은 생각들이 피어오릅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지요. 이 세계에 대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믿음과 회의에 대해, 없는 듯 했지만 저 너머 엄연히 존재하는 우주적 정의에 대해, 또한 그 속의 소우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내면과, 그 내면과 내면이 이어진 인간의 연대에 대하여. 이 거대한 세계에 대하여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주변의 사람들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몸짓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 아닐지요.
p.s. 책의 진짜 결론을 이 글에 담지 않았습니다. 책의 제목과도 관련된, 저자의 마지막 여정을 책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