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이에게
쏘서가 처음 우리집에 오던 날 아빠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셨단다. 우리집 생필품이며 네 용품 쇼핑은 쇼핑의 귀재인 아빠가 다 전담하지 않니? 그날도 엄마는 네게 새 장난감을 사줄 때가 된 것 같아 쏘서와 점퍼루를 비교하는 블로그 링크를 아빠에게 보냈었지. 그냥 그것뿐이었는데 아빠가 바로 중고 직거래 약속을 잡으신거야. 그날 바로 사자는 말은 아니었는데.. 아마 아빠도 네게 새 장난감을(헌 장난감이지만) 빨리 사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지. 그날 저녁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운전을 하고 왕복 세시간 거리를 다녀오셨어. 네 쏘서를 가져온 집은 목동 어느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자리한 집이더래. 너무 낡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더라면서 우리집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감사를 잊지 않으셨지. 언제나처럼 말이야.
새 장난감을 구석구석 닦고 야심차게 너를 앉혀봤는데, 처음 보는 장난감들에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제대로 앉지도 못한채로 손을 뻗던 너를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목은 의자에 걸쳐놓고 한쪽 어깨는 밑으로 꺼졌는데도 네 눈은 별천지를 만난듯 반짝였고 손은 장난감을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어.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그게 돌리면 돌아간다는 걸 어떻게 알았니? 엄마가 이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야 아직 안되겠다. 좀이따 태워줘."라고 했잖아. 그래서 쏘서는 냉큼 업어온 아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 한달을 창고 속에 처박혀 있게 되었어.
네가 다리 힘이 생기고 이젠 쏘서에 앉을 수 있겠다 싶을 때쯤 너를 보러 오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제 네가 쏘서를 타도 되겠다고 하시더라고. 다시 쏘서에 앉은 너는 전보다 한결 여유로운 자세로 쏘서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지. 어떤 주말엔가엔 엄마아빠와 함께 있는게 신이 났는지 한 시간을 내리 뛴 적도 있었잖아. 뛸 때마다 활짝활짝 웃어가면서. 그날 밤 너는 평소와 다르게 아주 잠을 잘 잤단다. 조리원 친구들을 만나던 날 그동안 쌓아온 너의 뛰기 신공을 보여주었지? 우리집 쏘서보다 훨씬 화려하고 불도 켜지고 음악도 나오는 은서네 집 쏘서에 앉아서 한참을 삐그덕대며 방방 뛰니까 조리원 이모들이 모두 웃었잖아. 역시 남자애는 다르다면서.
쏘서에서 뛰기 시작하면서 넌 점점 살이 빠지고 늘씬해지기 시작했어. 아마도 네가 뒤집고, 되집고 나서 자유자재로 굴러다니기 시작할 때쯤이기도 했을거야. 허벅지에 접힌 살이 꼭 소라빵 같다고 이모가 사진을 찍고 놀려대곤 했었잖아. 그런데 그 주름이 점점 옅어졌단다. 쏘서는 네가 운동을 하는 곳이기도 했고, 맘마를 받아먹는 곳이기도 했어. 이유식을 주면 쏘서에 서서 받아먹다가도, 입을 다물고 더 먹으려고 하지 않아 밑에 뚝뚝 흘리기도 했지. 이유식은 안먹으려고 하면서도 과일은 엄청 좋아했잖아. 엄마가 사과를 줬더니 한 번 더 먹겠다고 목을 빼고 넙죽넙죽 받아먹는 네가 또 얼마나 웃겼는지. 맛있는걸 너도 아는거니?
언제부터인가 네가 쏘서에서 전처럼 신나하지 않더라. 버튼을 제일 위로 올려주었는데도 네 발이 넉넉하게 땅에 닿고난 후였어. 쏘서에 앉힐려고 하면 다리를 위로 들어올리며 앉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 앉더라도 가만 있을뿐 전처럼 뛰는 일도 줄어들었고 말야. 쏘서보다 엄마 품이 더 좋았던 걸까 아니면 이제 쏘서를 졸업할 때가 된걸까? 가만 제자리에 있는 것보다는 여기저기로 움직이고 싶어진게 아닐까? 엄마의 말에 아빠는 또 빛의 속도로 쏘서 처분 약속을 잡으시고 새 보행기를 알아보셨지. 그렇게 갑자기 쏘서를 떠나보내게 된거야.
지안아. 쏘서가 우리집을 떠나는 날 아침 왜 이렇게 엄마 마음이 섭섭하니. 아마도 우리 지안이의 손길과 발이 닿아있는 물건을 떠나보내서 그런가봐. 네 배꼽에서 떨어진 탯줄도, 처음 잘라낸 네 배냇머리도 엄마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데 네 웃음과 행동이 담겨있는 쏘서는 이제 사진 속 추억으로만 남아버렸네. 작아서 못입게 된 옷은 보관한다 쳐도, 덩치 큰 물건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작별하기 마련인데 왜 이리도 엄마 마음이 섭섭하고 이상한 걸까?
지안아. 네가 커나가는 건 엄마 아빠의 너무나 큰 기쁨이자 행복이란다. 그런데도 소중한 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가는게 아쉬워서, 네가 너무 빨리 쑥쑥 크는게 아쉬워서 네 귓가에 대고 이렇게 말해주곤 하지. '지안아 지안이가 아가때는 말이야. 이러저러 했다구.' 이제 7개월 된 너에게 네가 아가이던 때를 말해준다니 그것도 참 우습지? 엄마아빠는 이 시간들을 잊지 않고 꼭꼭 마음에, 눈에 담아놓으려고 해. 잊지 않을게. 네 가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행복을, 무엇보다 소중한 이 날들을. 지안아 많이많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