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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Aug 24. 2018

쏘서를 떠나보내며

지안이에게

쏘서가 처음 우리집에 오던 날 아빠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셨단다. 우리집 생필품이며 네 용품 쇼핑은 쇼핑의 귀재인 아빠가 다 전담하지 않니? 그날도 엄마는 네게 새 장난감을 사줄 때가 된 것 같아 쏘서와 점퍼루를 비교하는 블로그 링크를 아빠에게 보냈었지. 그냥 그것뿐이었는데 아빠가 바로 중고 직거래 약속을 잡으신거야. 그날 바로 사는 말은 아니었는데.. 아마 아빠도 네게 새 장난감을(헌 장난감이지만) 빨리 사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지. 그날 저녁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운전을 하고 왕복 세시간 거리를 다녀오셨어. 네 쏘서를 가져온 집은 목동 어느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자리한 집이더래. 너무 낡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더라면서 우리집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감사를 잊지 않으셨지. 언제나처럼 말이야.


새 장난감을 구석구석 닦고 야심차게 너를 앉혀봤는데, 처음 보는 장난감들에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제대로 앉지도 못한채로 손을 뻗던 너를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목은 의자에 걸쳐놓고 한쪽 어깨는 밑으로 꺼졌는데도 네 눈은 별천지를 만난듯 반짝였고 손은 장난감을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어.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그게 돌리면 돌아간다는 걸 어떻게 알았니? 엄마가 이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야 아직 안되겠다. 좀이따 태워줘."라고 했잖아. 그래서 쏘서는 냉큼 업어온 아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 한달을 창고 속에 처박혀 있게 되었어.

   

네가 다리 힘이 생기고 이젠 쏘서에 앉을 수 있겠 싶을 때 너를 보러 오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제 네가 쏘서를 타도 되겠다고 하시더라고. 다시 쏘서에 앉은 너는 전보다 한결 여유로운 자세로 쏘서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지. 어떤 주말엔가엔 엄마아빠와 함께 있는게 신이 났는지 한 시간을 내리 뛴 적도 있었잖아. 뛸 때마다 활짝활짝 웃어가면서. 그날 밤 너는 평소와 다르게 아주 잠을 잘 잤단다. 조리원 친구들을 만나던 날 그동안 쌓아온 너의 뛰기 신공을 보여주었지? 우리집 쏘서보다 훨씬 화려하고 불도 켜지고 음악도 나오는 은서네 집 쏘서에 앉아서 한참을 삐그덕대며 방방 뛰니까 조리원 이모들이 모두 웃었잖아. 역시 남자애는 다르다면서.  

쏘서에서 뛰기 시작하면서 넌 점점 살이 빠지고 늘씬해지기 시작했어. 아마도 네가 뒤집고, 되집고 나서 자유자재로 굴러다니기 시작할 때쯤이기도 을거야. 허벅지에 접힌 살이 꼭 소라빵 같다고 이모가 사진을 찍고 놀려대곤 했었잖아. 그런데 그 주름이 점점 옅어졌단다. 쏘서는 네가 운동을 하는 곳이기도 했고, 맘마를 받아먹는 곳이기도 했어. 이유식을 주면 쏘서에 서서 받아먹다가도, 입을 다물고 더 먹으려고 하지 않아 밑에 뚝뚝 흘리기도 했지. 이유식은 안먹으려고 하면서도 과일은 엄청 좋아했잖아. 엄마가 사과를 줬더니 한 번 더 먹겠다고 목을 빼고 넙죽넙죽 받아먹는 네가 또 얼마나 웃겼는지. 맛있는걸 너도 아는거니?


언제부터인가 네가 쏘서에서 전처럼 신나하지 않더라. 버튼을 제일 위로 올려주었는데도 네 발이 넉넉하게 땅에 닿고난 후였어. 쏘서에 앉힐려고 하면 다리를 위로 들어올리며 앉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 앉더라도 가만 있을뿐 전처럼 뛰는 일도 줄어들었고 말야. 쏘서보다 엄마 품이 더 좋았던 걸까 아니면 이제 쏘서를 졸업할 때가 된걸까? 가만 제자리에 있는 것보다는 여기저기로 움직이고 싶어진게 아닐까? 엄마의 말에 아빠는 또 빛의 속도로 쏘서 처분 약속을 잡으시고 새 보행기를 알아보셨지. 그렇게 갑자기 쏘서를 떠나보내게 된거야.  


지안아. 쏘서가 우리집을 떠나는 날 아침  이렇게 엄마 마음이 섭섭하니. 아마도 우리 지안이의 손길과 발이 닿아있는 물건을 떠나보내서 그런가봐. 배꼽에서 떨어진 탯줄도, 처음 잘라낸 네 배냇머리도 엄마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데 네 웃음과 행동이 담겨있는 쏘서는 이제 사진 속 추억으로만 남아버렸네. 작아서 못입게 된 옷은 보관한다 쳐도, 덩치 큰 물건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작별하기 마련인데 왜 이리도 엄마 마음이 섭섭하고 이상한 걸까?


지안아. 네가 커나가는 건 엄마 아빠의 너무나 큰 기쁨이자 행복이란다. 그런데도 소중한 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가는게 아쉬워서, 네가 너무 빨리 쑥쑥 크는게 아쉬워서 네 귓가에 대고 이렇게 말해주곤 하지. '지안아 지안이가 아가때는 말이야. 이러저러 했다구.' 이제 7개월 된 너에게 네가 아가이던 때를 말해준다니 그것도 참 우습지? 엄마아빠는 이 시간들을 잊지 않고 꼭꼭 마음에, 눈에 담아놓으려고 해. 잊지 않을게. 네 가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행복을, 무엇보다 소중한 이 날들을. 지안아 많이많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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