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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Dec 22. 2019

영화 <친애하는 우리 아이>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Intro

영화는 놀이공원에서 아버지와 딸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반가워하는 얼굴과 인사로 보아 아마도 이혼한 아버지와 딸의 오랜만의 만남인 것 같다.

즐거웠던 하루가 저물고, 조용한 케이블카 안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묻는다.

"만약 엄마가 동생을 낳는다면 어떨 것 같니?"

사실 그건 타나카가 지금 아내의 임신을 두고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딸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묻고 싶은 물음이었다.




가 태어난다

새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다. 이 사건이 한 가정에 미친 파장은 미묘하고 또 깊다. 마음 저 밑에 있던 불안이 올라오고 관계는 커다란 파열음을 낸다.


겉으로야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 가정이다. 아니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보통의 가족보다 더 상냥지도 모른다. 아빠 타나카는 야근도, 승진도 마다하고 꼭 하나씩 사들고 일찍근하고, 어린 막내는 그런 아빠를 누구보다 반가이 맞는 일상을 살고 있다. 아내 나나에는 새 아기의 임신 누구보다 행복해 하는 중이다.




명령할 권리 있어? 꼭 아빠처럼 구네. 생판 남인 아저씨보다 친아빠를 만나고 싶은게 당연하잖아.


지만 카오루는 그렇지 못다. 엄마임신 소식을 듣고 그의 마음 속 불안은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한다.  한창 감수성 예민 사춘기 소녀는 어릴 적 친아빠의 손에 맞아 이가 부러졌던 기억이 있다. 부모의 이혼이라는 지난 경험의 화살은 엄마의 임신을 알고서 타나카에게로 향한다. 타나카는 친아빠를 두려워하던 어린 카오루가 처음으로 웃음을 보인 성인 남자였고, 엄마와 결혼한 후에는 한결같이 충실한 아버지 였음에도, 불안이 뒤덮은 마음 속에서 타나카는 쉽게 생판 남이자 적이 었다. 카오루 두려운 마음은 갈 곳을 찾지 못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소환한 친아빠에게 안타깝매달려있는 듯 하다. 친아빠만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마음 밑바닥에는 아가 태어나면 본인과 동생이 또 한 번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실은.. 아빠도 상당히 망설이고 있어. 안그래도 아빠는 새 식구인데 새 가족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어른이라고 다른게 아니다. 타나카친딸 사오리에게 쓰다 지운 메일에는 그동안 겪어왔던 나카의 어려움과 아내임신을 좋아할 수만은 없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4년 전 세 사람과 새 가정을 이룬 이후 타나카는  애써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한 번 상처 입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도 이들 속에 스스로 정착하기 위해. 이제는 자리 잡은 것도 같은 평화로운 아이의 탄생으로 깨는 건 아닐까,  가정의 첫 온전한 소생의 존재로 인한 파장을 식구들은 감당할 수 있을까. 어쩌면 누구보다도, 눈 앞에 마주하게 될 혈육 앞에서, 나 자신은 떳떳할 수 있을까.

카오루의 반항이 극심해질수록 타나카 점점 버틸 힘을 잃어간다. 둘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때 그동안 애써 쌓아올렸던 노력은 아무 의미 없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타나카의 의식 속에서 그간 힘들게 가꿔온 가정 모든게 거짓이었던 것 , 그가 내뱉은 말 속에서나마 아이의 생명은 소멸되고 가정생활은 종료될 위기에 놓인다. 갈등은 렇게 그동안 덮어두고 포장해 왔던 것들을 무참히 벗겨내고 무의식을 뒤흔들며 의식을 비틀어버리고 만다.



핏줄과 현실,

그 관계의 힘겨루기에 대하여


피로 맺어지지 않은 부모와 자식 관계. 멀지만 가까워야 하는 그 관계의 애매함은 타나카의 친딸 사오리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그 역시도 재혼한 엄마를 따라 자상한 새아버지와 살고 있지만 말기 암에 걸린 새아버지를 보고도 눈물이 나지 않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않아도 됐을 감정은 열 세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사오리가  마음의 갈등을 비밀스레 고백하는 이는 타나카이다. 타나카가 아이의 임신에 대한 속마음을 사오리에게는 털어놓으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같이 살고 있지 않음에도 내 속마음을 가장 먼저 전할 수 있는 상대, 카오루처럼 끔찍한 기억 있는데도 자신을 받아줄 유일한 사람으로 떠올릴 수 있는 상대. 핏줄의 힘은 그렇게 크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사오리는 타나카의 손을 놓고 새아버지에게로 향한다. 아빠의 식구들과 한 차를 타고 새아버지에게로 향하면서 새삼 자신이 '남'과 같다는 감정을 느낀 사오리는 마침내 새아버지의 죽음이 진심으로 슬퍼진다. 지금, 아버지가 죽는게 너무너무 싫다는 사오리의 마음 실 속 보호자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었을까. 또는, 지금 내 가족이 누구인지를 깨닫고서야 껴지는 슬픔이었을까. 영화는 타나카와 잡고 있는 손에서 빠져나와 새아버지에게 향하는 사오리의 작은 손을 느리게 비추는데, 럼으로 인해 사오리 뿐 아니라 타나카도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 사오리를 키워주셔서, 귀여워해 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나오는 타나카 현실 속 자신의 자리를 자각  것이리라.


이제 이미 뒤바뀐 현실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는 것은 현실의 사람들이 상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삶의 안정과 행복이란 내 자리를 인식하고 그 자리를 소중히 하는 데에서만 나오기 때문이고, 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 안정을 위해 무던히 애쓰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현실의 힘은 핏줄보다도 더욱더 클지도 모르겠다.  

 
의 의미를 전하다.


직장과 집을 왔다갔다 하기 위해 통과하는 어두운 지하철 터널, 그리고 집에 가기 위해 매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승강기. 영화에서 여러번 비춰주는 이 장면들은 집의 의미를 생각케 한다. 가정이란 어떤 이에겐 누가 매일 나를 기다리는 것이 답답하고 싫었던 곳이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히 평범한 행복을 이루고 싶었던 곳이다. 매일 같은 경로를 지나 도달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만 있어야 하는 곳은 아니다. 각자의 고단한 현실을 지내고 돌아온 사람들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터가 되게 하기 위해 애써 가꾸고 닦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타인과의 삶을 켜켜이 쌓아가야 하는 이 공간은 그래서 매우 어렵고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참으로 잘 만들어진, 매우 문학적이고 긴 여운을 주는 이 영화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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