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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로 Feb 16. 2024

치즈를 내 품에 품다

내 아가와의 첫 만남, 안녕 아가:)

품다: 동사. 품속에 넣거나 가슴에 대어 안다.


2023년 4월 17일 새벽 4시 무렵에 일어나(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을 테니... 머리는 샴푸로만 감고, 몸은 최대한 구석구석 씻었다. 몇 가지 주사를 맞으며 수술 준비를 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대기하다가 휠체어를 타고 간호사님의 인도로 수술 대기실로 이동했다. 남편과는 엘리베이터에서 안녕을 했다. 입원실 6층 수술실 2층. 6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잘하고 오겠다며 손을 흔들곤 그렇게 나 혼자(사실은 간호사님과 함께) 아이를 낳으러 갔다. 나보다 먼저 제왕절개로 수술했던 지인이 말해준 것이 있었다. 다른 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수술실의 서늘한 공기가 기분 나빴었다고... 수술 대기실에 있다가 이동한 수술실은 정말이지 공기가 서늘했다. 그렇게 수술대 위에 올라갔고, 마취 선생님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마취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출산에 대한 공포가 임신 후반기에 밀려와 매일 밤새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후기를 읽으며 지냈었다. 나는 수술을 하기로 했으니 응급 상황이 아니면 마취하면 되는데... 전신마취를 할 것인가 하반신 마취를 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그냥 공포심 없이 눈감고 들어갔다가 눈 뜨면 아기를 볼 수 있다는 전신마취를 할까 하다가...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출산의 순간. 아기를 나의 배 밖으로 꺼내어 "응애~!"하고 우렁차게 우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을 보고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수술에 대한 공포심을 이겼다. 그렇게 하반신 마취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고 척추에 마취제를 주입하였다. 척추에 마취를 한 경우 하루 정도 절대 고개를 들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고민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고개를 하루 동안 들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싶어서...) 여하튼 그런 건 내가 조심하면 된다 생각하고... 하반신 마취 진행.

마취 선생님이 느낌을 확인하면서 마취 상태를 점검하셨고, 그 사이에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오셨다. 수술 준비. 천막으로 목 아래 부분을 가리어 수술 진행 과정의 시야를 차단했고, 중간중간 마취 선생님과 간호 선생님이 간단한 예고를 해주시어 심호흡을 하며 수술 진행. 


"몸이 잠시 흔들린 후에 아기가 곧 나올 거예요."


십여분이 지났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기를 꺼낸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곤 정말 몸이 좌우로 흔들흔들하다가 곧 "응애~ 응애~" 소리가 났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기가 태어나며 응애 소리를 내면 감격하여 눈물을 주르륵 흘리곤 하던데... 난 이 순간에 가장 먼저 '아이가 잘 우는구나. 제대로 폐호흡을 해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2023년 4월 17일 오전 8시 21분. 남아입니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을 선포하듯 말씀해 주시곤 이내 속싸개로 감싸 나의 얼굴 옆에 갖다 대어 주신다. 


"어머니, 아가 왔어요. 태명 한 번 불러주세요~"


따뜻한 아기의 온기를 뺨으로 느끼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보았다. 치르와의 첫 만남이었다. 

아가는 뽀얗고 하얬다. 신생아는 빨갛고 쭈글쭈글해서 못생길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치즈는 신생아 같지 않게 뽀얗고 하얬다. 우리 엄마가 나를 처음 낳아 보았을 때 그렇게 뽀얗고 하얬다고 해서 고슴도치 사랑에 의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느낌이 이 것이구나! 싶었다.  


"치즈야, 치즈야"


작은 소리로 치즈를 불렀다. 순간 응애응애 울던 아기가 울음을 멈추었다. 마치 자신의 태명을 알아들은 것처럼... 마치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을 한 것처럼... 그렇게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너무 신기했다. 그제야 감동이 물밀듯 밀려와 울컥했다. 이내 아기는 간호사님이 다시 데리고 가시고 나는 수면마취에 들어갔다. 아마 자궁 봉합을 하고 난 후 난소 혹 제거 수술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스르륵 눈이 감겼다가 눈을 뜨고 나니 수술은 끝나 있었고, 나는 휠체어 위에 앉아 있었다. 아마 휠체어로 이동하면서 수면 마취가 깨버린 거 같다. 그렇게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이동했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바심과 불안 가득한 얼굴이 나를 보곤 금방이라도 눈물 터질 것 같았다. 남편과 간호사님의 도움으로 병실 위 침대로 이동했고 그때부턴 진통과 마취제와의 싸움이었다. 


그렇게 나는 치즈를 내 품에 품었다.

그렇게 우리는 치즈를 만났다. 

개나리 꽃과 벚꽃이 떨어질 즈음. 날이 따스했던 어느 봄날.


안녕 아가. 

내가 너의 '엄마'야.

우리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자. 

아빠랑 같이 행복하게 지내보자.

우리 잘 지내보자.



선물 같은 아이를 품에 품은 

내 인생에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나는 그렇게 마흔 살에 '엄마'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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