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치료는 할 수 없다는 아저씨

[요셉의원 이야기 151103] 환자이야기 #1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건물들이 보입니다. 그 앞에 촘촘히 박혀있는 간판을 보다 보면 병원 간판들이 여럿 보이죠. 참 병원들 많다 싶습니다. 하지만 요셉의원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주위에 이렇게 병원이 많은데 아직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월요일 낮 시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환자도 많고 게다가 한 주를 시작하는 날이라 요셉의원의 2층 대기실에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여느 때처럼 감기 환자, 고혈압 당뇨 환자분들의 진료를 마치고 나니 특별히 마음 쓰이는 한 분의 얘기가 있어 기록으로 남깁니다.


20151017_074959.jpg 멀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사람 좋게 생긴 아저씨 한 분



멀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40대 후반 아저씨 한 분이 진료실로 들어오셨습니다. 당뇨약을 지으러 왔다고 하는데 진료 전 체크한 BST(blood sugar test, 혈당 수치)가 300이 가까울 정도로 높게 확인되었습니다.


약은 잘 드셨나요? 며칠 못 드신 건 아니죠?


환자분은 약은 잘 먹고 있었다며 사람 좋게 웃으십니다. 차트를 다시 확인하니 이전에 내원 때마다 쟀던 혈당 수치도 대부분 200은 넘고 300을 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환자분, 안 되겠는데요? 약을 좀 더 올려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처방전을 확인했습니다. 에구, 이미 당뇨 약은 최대 용량으로 받고 계신 상태입니다. 당뇨약만 하루 6알을 복용 중인 상태. 이 정도면 주사로 인슐린을 사용하는 게 낫다 싶습니다. 다시 기록을 확인하니 몇 개월 전, 인슐린 치료를 권유했으나 환자가 극구 거부했다는 다른 선생님의 진료 기록이 남아있었습니다.


13400504_ml.jpg 이미지 출처 : 365healthcare.co.kr



당뇨 환자의 인슐린 주사 사용, 꽤 귀찮은 일입니다. 하루 한 번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안정적인 조절을 위해 속효성 인슐린과 중간형 인슐린 두 가지를 하루 두 번 배와 팔다리에 돌아가며 맞게 됩니다. 게다가 냉장보관도 해야 하고 말이죠. 인슐린 관리도 문제지만 주사는 주사인지라 통증이 싫어서, 주사가 무서워서 거부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전에 어떤 분은 그 비싼 인슐린을 받아만 놓고 하나도 안 맞고 버려오다 걸려서, 진료 중에 크게 혼을 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인슐린 용량을 올려도 도대체 당이 조절되지 않아 이상하다 싶어 심문하듯 캐묻다 보니, 주사가 무서워서 맞지 못하고 모두 버렸다는 진술이 나왔던 것이죠. 무료 진료소에서 무료로 약과 인슐린을 처방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점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환자분은 왜 인슐린을 맞지 않겠다고 거부하시는 건가, 설득으로 되는 문제면 좀 설득해봐야겠다.' 하고 맘먹고 물어봤습니다.


왜 인슐린을 안 맞는다고 하셨어요?


아저씨의 옛날 얘기와 함께 돌아온 대답은 잠시 제 말문을 막히게 했습니다.




아저씨는 한때 식당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당뇨를 잘 조절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화장실에서 잘못 넘어지면서 어깨를 다쳤는데 이후 식당 지배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의료수급자로 등록하였지만 꽃동네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수급자가 풀려 지역 가입자가 되었고 노동능력이 없던 아저씨는 1년간 의료보험비를 체납, 결국 보험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도 못하고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술에 빠져 오랜 기간을 지내다 어렵게 요셉의원으로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원에서 당뇨를 치료받는 동안에도 술에서 벗어나지 못해 술에 의한 무서운 합병증인 알콜성 케톤산증이 와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술을 줄이고 임시직이지만 다시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습니다. 멀쑥한 모습으로 요셉의원에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나오는, 어렵게 술의 굴레에서 탈출한 멋쟁이 환자 중 한 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슐린 치료를 권유받고, 당시 일하던 식당 냉장고에서 인슐린을 꺼내어 배에 맞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본 사장님은 아저씨에게 일을 주지 않았습니다. 중한 당뇨환자를 데리고 일을 하는 것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 식당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잘린 이후로 아저씨는 인슐린 치료는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삽화103.png 아저씨는 인슐린 치료는 절대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뭔가 울컥한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아저씨의 억울한 상황이 울컥했고, 두 번째로 임시직 직원을 고용해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어 더 울컥했습니다. 물론 당뇨로 고생 중인 아저씨만큼 고생하고 있진 않겠지만, 작은 식당을 운영 중인 입장도 어렵긴 매한가지겠지요. 일하는 사람이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 식당이 휘청거릴 만큼의 피해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인데, 아픈 직원을 매몰차게 내쫓았다고 무작정 매정한 사장님이라며 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나요?


불경기가 장기화되고 사회가 각박해지면, 서로 돕고 살기에도 힘겨운 어려운 사람들 사이도 점점 멀어집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애매해집니다.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151103 최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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