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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상 Jul 31. 2024

003. 와이퍼

-fiction

먼저 출근할게!


민준은 한 손에 커피가 든 텀블러를 손에 들고 문을 나섰다. 문을 닫고 나서자 길다란 복도가 뻗어있었다. 그 길들을 가득채운 햇살을 보고 민준은 잠시 멈칫 한다. 커다란 수조에 물이 넘실대듯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가지를 따라 그림자가 넘실넘실 복도에서 춤을 춘다. 왜그리 날씨는 좋은지. 무더운 여름 8월의 어느 날은 일찍이도 아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곧장 엘레베이터를 향해 걸어 갔다.   



"난 햇빛이 좋다고!!"

그의 아내 소희는 늘 말했다. 주말에 낮잠을 즐기고자 커텐을 치기만 해도 집이 어두운 게 싫다는 그녀 였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제법 잘 어울리는 짧은 단발에 앙 다문 입술은 그녀가 나름 얼마나 고집이 있는지 말해준다.  

"아니 그럼 왜 암막 커텐을 산건데? 이럴려고 산..."

"그건 오빠가 원해서 산거구. 난 캄캄한게 싫다니깐."

역시나 지지 않는 그녀였다.


'이게 그리 좋냐? 최.소.희!"

그렇게 그녀가 좋아하던 햇살을 그는 마치 그때 이기지 못한 울분을 토하듯 자근자근 빛을 밟으며 복도 끝을 걸어나갔다. 엘레베이터 앞에 서자 엘레베이터는 17층을 지나 한창 올라가고 있었다. 그가 살던 곳은 7층이니 1층에서 올라오는 것보다 더 멀리 간셈이다. '하아. 이 놈의 엘레베이터는 늘 타이밍이 거지같아.'


"아니 열심히 일하는 엘레베이터한테 괜히 핀잔이야."

언제나 내가 불만을 토로하면 반대편에서 나를 나무라는 그녀였다. 가끔씩은 그게 서러워서 그녀에게 불만을 내비치지만 또다시 그 불만의 반대편에서 뭐라하고 계속되는 악순환이었다.


민준이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앞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다가였다. 용돈을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는데 당시 야간 수당이 더 비싸다는 얘기를 듣고 심야를 맡게 되었다. 바로 전 시간이 바로 그녀였고, 바로 앞 전의 심야 알바는 사장과 싸우고 나가는 바람에 인수인계를 전시간대인 그녀에게 받게 된 것이다. 뭔가 특별하게 예쁘다거나 그렇지 않았지만 생글생글 웃는 웃상의 얼굴과 그녀의 친절이 민준의 첫 인상에 들었다. 일주일간 그녀의 인수인계를 받다보니 그녀가 그와 같은 학교에 다닌 다는 사실과 방송국 PD가 되기 위해 신문방송학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과였던 민준과 그녀를 엮어 준 것은 그 해 겨울 개봉한 어바웃 타임이었다.

"영화 보러 가지 않을래?"

소희는 늘 그렇듯 활짝 웃는 얼굴로 민준 앞에 CGV 티켓을 흔들어댔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민준은 잠시 머뭇거렸다.



"싫음 말고"

어색한 공기를 밀어내듯 그녀는 토라진 듯 말을 내뱉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바로 그 입술. 언제나 내가 못마땅한 행동을 했을 때 나무라던 그녀의 입술모양이었다. 입꼬리는 살며시 내려가고 그 입 술에 볼살이 살짝 밀려 주름이 지어졌다. 그 때는 그 모습이 왜그리도 사랑스러웠는지.

"아.. 아니아니. 나도 보고 싶었어."

민준은 반색을 하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렇게 내민 그녀의 조그마한 용기가 늘 여자 앞에서 부끄러움이 많던 민준에게 큰 지지가 되었고, 그 영화를 보고 둘은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 나름 으쓱한 학교 벤치에 앉아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문이 열립니다."

20층까지 올라갔던 엘레베이터가 어느새 7층에 도달하여 문이 열렸다.

드르륵. 엘레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는 20층에 살고 있는 5살짜리 꼬마와 그의 엄마가 타고 있었다.  오전 7시20분. 늘 그 시간 쯤 엘레베이터를 타면 종종 마주치는 모녀였다. 아무래도 출근 길에 어린이 집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가는 모양새였다.

"남편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래? 남편이 아이를 데려다주는 건 본적이 없어"

그 언젠가 종종 마주치던 그 모자가 생각 나 민준은 퇴근 후, 셔츠를 벗으며 화장대에 앉아 클린징폼으로 얼굴을 열심히 지우고 있던 소희에게 물었다.

"음.. 요 앞전에 반상회 때 들어보니 남편이 서울로 갑자기 발령이 나는 바람에 주말 부부를 한다고 들었어."

소희는 무심하듯 말하였다. 하긴 그들에 대해 우리가 알리가 만무하다. 20층에 살고 있는 그 모자는 이사온지 한달 정도 된 듯 그렇게 마주치게 된지도 그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옹? 그런데 아줌마는 어디계셔요?"

그 잠시 생각에 빠졌던 그의 얼굴을 보며 조그마한 몸통을 가진 꼬마는 조그마한 손을 배꼽 쯤 되는 위치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인사를 한다. 똘망똘망한 꼬마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어머니는 꼬마의 손을 낚아채어 입단속을 한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단도리에 놀란 꼬마는 엄마를 째려보며 그 조그마한 입술을 야무지게 놀린다.

"아파. 엄마!"

"엘레베이터에서는 조용해야지!"

엄마는 핸드백이 걸려있는 손의 검지를 들어 조용히 입가에 갖다된다.

민준은 그러한 그들의 대화에 끼지 않고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엘레베이터를 탔다. 문 쪽에 서있던 그의 뒤통수가 따갑다. 모녀의 대화는 그 뒤로 없었지만 그들은 분명 나를 보고있었고, 분명 너의 부재를 궁금해 할 것이다. 아니 정확히 한명은 너의 부재를 모르고 한명은 너의 부재를 알겠지.

원래 이 동네는 그런 입바른 소문이 빠르니.



어느새 엘레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여 문이열렸다.

아파트 입구를 나서니 복도를 가득 채웠던 햇살이 아스팔트 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정말 네가 딱 좋아하는 날씨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소희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 가는 것을 좋아하였다. 우리가 사는 청주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굽이굽이 들판과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국도가 있었고, 우리는 그 자연의 바람과 함께 드라이브를 좋아했던 것이다.

'하아'

짧은 한숨과 함께 입구를 나와 주차된 차로 가는데 아까 그 꼬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히가세요!"

그 목소리 뒤에 소희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늘 꼬마는 엘레베이터를 타기 전 인사를 하고, 내리고 나서 입구에서 헤어지면서 한번 마무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언제나 소희는 뒤를 돌아 그 젊은 날의 미소를 지으며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 좋은 하루 보내렴!"



그 꼬마 아이의 마지막 인사가 결국 민준을 흔들어버렸다. 그는 뒤돌아 보지도 않은 채, 비틀거리며 그의 차로 다가갔다. 어떻게 문을 열었는지도 모른 채 그는 힘겹게 차에 올랐다. 그 자리를 도망치고자 시동을 켰지만 그는 잠시 자리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어느 새 햇살이 가득했던 하늘에 빗방울이 고인다.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도 없이 앞 유리창이 물로 얼룩진다. 오른 손을 들어 와이퍼를 켰다. 드르륵. 와이퍼는 바지런히 기지개를 펴듯 두 손을 흔들며 마른 앞유리를 긁어댄다. 하지만 그의 앞에 빗물이 조금도 씻겨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더 빠르게 와이퍼를 작동 시켰다. 와이퍼도 성을 내듯 더 큰 소리로 마른 유리를 긁어댔다.

"열일하는 와이퍼한테 핀잔이야."

소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거짓말...' 민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떨쳐내듯 더 세게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그렇게 하면 며칠 전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난 소희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을 모두 닦아 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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