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또다시 잽혀가는 이명박을 뉴스에서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른 생각. '노년의 삶에는 정말이지 필터가 없구나. 어떻게 저렇게 표정 하나 행동 하나에서조차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걸까? 하긴 삶만 그러하랴. 이건희는 죽음을 맞는 것조차 돈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병상에 누워 몇 해를 더 기다려야 했으니... 자랑스러웠던 일생의 섬뜩한 전모가 그보다 더 비참하게 까발려지기도 어렵겠지.' 에이 지지다. 집어치우자.
노작가의 블로그나 훔쳐봐야겠다. <어스시 연대기>로 잘 알려진 환상문학 작가 어슐러 크로버 르 귄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를 읽는다.
2010년 10월, 여든한 번째 생일을 앞둔 르 귄은 주제 사라마구가 여든다섯 살에 시작한 블로그의 글쓰기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방식이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블로그가 자신에게 맞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블로그의 자유로움만은 일단 흡족하다는 감상을 적은 첫 글을 시작으로, 르귄은 7년 동안 블로그에 130편의 글을 남겼다. 마지막 두 편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4달 전에 올린 것이었으니 그야말로 작가 말년의 사색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블로그인 셈이다.
블로그에서 추려낸 42편의 글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었다. 4개의 챕터로 나뉜 책은 각각 노년에 대한 사유, 작가이자 독자로서의 문학,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생의 보상처럼 남은 추억들, 그리고 표지를 차지한 턱시도 고양이 '파드'의 연대기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로서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 뒤에 숨어있던 르 귄이 우리 앞에 직접 나타나 수줍게 내보이는 이야기들은, 작가 자신의 작품만큼이나 신중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유머와 통찰로 가득하다. 다채로운 주제들에 대한 단상으로부터 뻗어 나온 문장들은, 집요함과 물러섬의 균형을 유지한 채, 읽는 이들에게 선명한 교훈이 아니라, 삶이 이어지는 내내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물음들을 전한다.
나는 '내가 아는 멋있는 노인들' 리스트를 맘속에 품고 있다. 그 리스트에는 에든버러의 춥고 좁아터진 싸구려 호스텔에서 룸메이트로 지냈던 온화한 마음씨의 노숙인 할머니부터 켄 로치 감독까지 온갖 사람들이 등재되어있다.
삶을 묵묵히 감당해 온 사람에게서는 오래된 기품 같은 것이 느껴진다. 사람이 가질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그 어떤 능력이나 성취도 이 기품에 비하면 시시한 것이다. 능력이나 성취가 한 철 우연의 결실이라면, 기품은 이름 모를 어느 봉우리에 박혀있는 기암괴석이다.
자신의 삶을 더 감당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감당해야 할 것들을 외면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삶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 기품을 갖추지 못한다. 이 기암괴석과도 같은 기품은 대체로 노인들에게서 발견된다.
오늘 나의 기암괴석 리스트에 르 귄을 추가하면서, 그리고 자갈만도 못한 이명박과 이건희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다시금 생각한다. 노인은 스스로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 배어 나오는 세월의 향기가 지금껏 당신이 품어온 당신의 삶과 당신의 세계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책 곳곳에서 탁월한 이야기꾼의 재간과 평생 올곧고 날카로운 정신을 길러온 사람의 언어가 빛나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을 짧게나마 소개해본다.
"노년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노년은 존재 상태이다.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는가. "오, 선생님은 불구가 아닙니다! 스스로 불구라고 생각하는 만큼 불구가 되는 법이지요! 제 사촌은 척추가 부러졌는데 금방 이겨내고 지금은 마라톤 경기에 나가려고 훈련을 받아요!"
현실 부정을 통한 격려는,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역효과가 난다.
두려움은 현명하기 어렵고 결코 친절할 수 없다. 대체 누굴 위한 격려인가? 진심으로 노인들을 위해서 하는 말인가?
내 노년을 부정하는 말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다. 내 나이를 지우고, 내 삶을…… 지운다." -p.28
"전복이란 말은 삶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며 있는 그대로 유지되길 바라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만사에 그리해야 마땅한 방식이 지켜지도록 공권력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판타지 소설은 ˝모든 일이 늘 하던 식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어떨까?˝라고 묻는 데에 그치지 않고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일이 흘러갈 경우 펼쳐질 수 있는 결과를 보여주며, 이로써 뭐든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믿음의 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그렇게 상상력과 원리주의가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p.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