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4주가 되어서야 올리는 짧은 소회
오랜만에 새 올리는 글이 이 글일 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법...
지난해는 이사와 결혼 준비로 1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흘렀다. 생각보다 같이 살 집을 일찍 구했고 결혼 날짜도 일찍 받아둬서 넉넉잡고 1년 반의 여유시간이 있었는데 그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리고 두어 달 후, 우리에게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어머 허니문 베이비구나!"
결혼하고 두 달 뒤에 생긴 아기이기에 이 말을 가장 많이 들었지만, 틀렸다. 일단 우리는 나의 직장 때문에 허니문의 '허'자도 꺼내보지 못했다. 토요일에 결혼하고 월요일에 출근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나로서는 철저한 '계획임신'이었다. 그러니까, 허니문의 로맨틱한 감성에 젖은 뜻밖의 사건은 아니라는 거였다. 항상 결혼하면 아이를 갖고 싶었고, 기왕 가질 거라면 내 몸이 하루라도 젊을 때 덜 힘들게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니... 참 고맙게도 얼마 안돼 우리에겐 2세가 생겼다.
임신 확인서를 받아 들고 이틀 후부터 시작된 입덧, 심한 이들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 수준이었지만 힘들긴 했다. 여름의 한중간에 나던 광역버스의 살냄새... 상가에서 내놓은 각종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매연 냄새. 그 좋아하던 치킨에서 정확히 분리돼 맡아지는 누릇한 기름냄새까지. 불닭볶음면을 사발로 들이켜도 매운 줄도 모르고 먹었으니 속이 얼마나 느끼했던 건지. 심지어 남편이 샤워하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 그때 나는 바디워시 냄새마저 역해서 빨리 문 닫으라고 성화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이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입덧을 해도, 배와 허리가 쑤시고 편두통이 급습을 해도 태동 하나에 기분이 슬며시 풀어졌다. 희한하게 모성애라는 것이 생긴 듯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는 약간 결이 다른 처음 겪는 종류다. 내 뱃속에 작게 꼬물거리는 생명체가 조금씩 자라나고, 어느새 손발을 움직이고 몇 센티씩 커가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대신 기꺼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그런 신기한 경험.
하루하루는 느리게 흐르는 듯하더니, 어느새 34주를 지났다. 자식은 뱃속에서부터 걱정이라는 말에 백번 공감이다. 자다가도 문득 정신이 들면서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우리 아기 잘 있나? 태동이 없네 자고 있나? 이 생각이라니. 미혼이던 시절, 아기가 없던 시절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나의 변화가 참으로 신기하다.
이제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출산을 위해 퇴사를 했고 여유로울 줄 알았던 나의 백수 생활은 온통 아기용품 빨래와 정리 등으로 더 바쁘게 돌아간다. 곧 다가올 우리의 새 가족이 너무나 기대되고 설렘과 동시에... 나에게 올 인생의 큰 변화가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변함이 없는 건... 오늘도 나는 뱃속의 이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 부디 건강하게만 태어나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