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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크 Nov 18. 2016

신비한 동물사전, 건재한 로망과 낭만과 판타지

해리 포터를 기억한다면

킹스 크로스 역 9와 3/4 플랫폼, 그리고 호그와트는 유년 시절 로망이 머물렀던 장소다. 혹시 부엉이가 입학 안내서를 물어다 주지 않을까 고대했던 유년기를 지나, 영국 왕복 비행기 티켓값이 참 비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쯤, 새로운 로망이 들이닥쳤다. <신비한 동물사전>이라는 영화로.


<신비한 동물사전>은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스핀오프로 출간된 동명의 책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다. 사실 책 자체는 분량이 많지 않다. <해리 포터> 세계관 속에서 등장하는 몇몇 동물들에 대한 소개가 전부다. 책 자체도 '해리가 공부한 서적' 콘셉트로 나왔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내용보다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의 낙서를 보는 재미가 더 컸으리라. 명확한 캐릭터도, 플롯도 없는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사진 출처: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뉴트의 세계, 그리고 해리의 세계


<신비한 동물사전>은 호그와트 출신 마법사 뉴트 스캐맨더의 이야기를 다룬다. 1920년대 뉴욕 시가 배경인지라, 여태껏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접했던 개념들이 살짝 바뀌어 등장한다. '머글'과 '마법부' 등 영국 마법사 사회에서 사용하던 언어와는 다르지만,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개념이 치환된다. 어쩌면, <해리 포터> 세계의 언어들이 포함하던 의미가 더 넓어지는 듯 하기도.


판타지의 매력은 상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짜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해리 포터>처럼 현실과 어느 정도 이어져 있는 독립적 세계관을 갖춘 작품이라면, 당위성을 부여하는 데 그리 많은 노력을 쏟지 않아도 된다. J. K. 롤링은 그 힘을 정말 잘 알았던 것 같다. <해리 포터>보다 한참 전의 시간적 배경에, 심지어 주요 무대가 되는 나라까지 바뀌었는데도 딱히 걸리는 부분 없이 극에 몰입하게 된다.


사진 출처: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신비한 동물사전> 속 뉴트의 세계는 <해리 포터>와 닮은 듯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위험한 급진주의자 그린델왈드와 볼드모트의 존재, 다소 관료주의에 젖어 있는 듯한 마법부와 MACUSA. 마법사 세계를 이루는 구조들은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뉴트의 세계에서는 일반 인간, 즉 '머글'이 이야기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철저히 머글의 존재를 배제한 채(헤르미온느가 있지만, 그녀는 천재 혹은 돌연변이에 가깝다) 마법사 세계만을 조명한 것과는 다르게. 과거에는 킹스 크로스 역이 마법사와 머글의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였다면, <신비한 동물사전>에서는 머글과 마법사가 뉴욕 곳곳에서 함께 숨을 쉰다.


이처럼 뉴트의 세계는 해리의 세계 덕분에, 관객들 머리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 또 한편, 해리의 세계는 뉴트의 세계를 만나 그 지평이 더욱 넓어진다.


3시간 남짓의 행복한 꿈


개인적으로 IMAX 3D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안경이 불편하다거나, 가끔 초점이 흐릿해지는 것 따위의 단순한 이유 때문에. 하지만 최근, 이 현대 기술을 기민하게 활용한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해 참 고민이 많이 된다. IMAX 슬로건처럼 단순히 스크린 너머로 지켜보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의 일부가 되고 싶은 작품들이 점점 늘어난다. <신비한 동물사전>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사진 출처: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비주얼 면에서는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다. 어린 시절 우리가 상상했던 마법사의 가방 속, 환상적인 동물들을 빼다가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 같다. 스크린 속 마법 세계 동물들은 마치 정말로 살아 숨쉬기라도 하는 듯, 저마다 자기 모습에 걸맞은 생태계와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연이어 동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진심으로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경외심이 들 정도다. CG의 발전은 정말이지 위대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뉴트 스캐맨더로 분한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신비한 동물사전>에서도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 모두가 마음속으로 이 세계는 허구라는 걸 아는데도, '진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갖게 되는 건, 그의 연기 덕분이기도 하다.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진심 어린 애정이 가득하고, 손 끝에서는 존중 어린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사진 출처: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뉴트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캐릭터로 분한 배우들도 밀리지 않는다. 각자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유지하며, 극 중 중요한 부분을 꼭 하나씩 도맡는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도 보았듯,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방향으로. 여기에 솜씨 좋게 재현한 1920년대 뉴욕 배경이 더해지니, 그 거리 속 풍경에 실제로 더벅머리 영국 청년, 뉴트 스캐맨더가 있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환상은 견고해진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5부작으로 계획됐고, 이번 작품이 그 첫 스타트를 끊은 영화다. 새로운 장을 여는 작품으로 매우 훌륭하고, <해리 포터> 연작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어쩌면, <해리 포터>가 만들어 놓은 상상의 토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쐐기와도 같다. 그리고 20년이 다 되어가는 해리의 세계를 아직 붙들고 있었던 독자들에게 좀 더 어른스러워진 상상의 공간을 열어 준다. 오래 기다렸지, 하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이렇게, <해리 포터>의 시간은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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