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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떻게 남의 집에 가서 살아요?

헬프엑스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헬프엑스는 한 마디로 ‘남의 집에 가서 사는 여행’이다.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여행한다고 생각하는데, 헬프엑스의 첫 번째 여행지는 날 초대한 사람, 즉 호스트와 그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체로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다. 


어떻게 남의 집에 가서 살아요?


그것도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어떤 사람일 줄 알고? 아마 뒤에 이런 말들이 따라오려다 말았을 것이다. 

    

맞다, 안전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혼자 여행하면서 내게 가장 중요한 부분도 안전이었다. 헬프엑스로 호스트를 결정하기 전, 매번 나는 모든 촉을 동원해 안전 여부를 체크했다. 가기 전 두어 달 전부터 각종 검색은 물론이요, 수없이 메시지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궁금한 점을 해소했다. 때로는 화상통화로 미리 얼굴을 보기까지 했다. 안전은 중요하고, 아무리 신경써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잔뜩 움츠리고 경계하며 조심조심 살금살금 발을 내딛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쪽도 날 모르고 두렵긴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 낯선 여행자를 들인다고 생각해 보라(나는 미래에 헬프엑스 호스트가 된 내 모습을 종종 상상해보곤 한다).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집에 초대하지?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물건을 집어가진 않을까?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헬프엑스로 할 수 있는 일 중에 아이돌봄, 동물돌봄이 있다) 말도 잘 못 하는 아이를 혹시 학대하거나 괴롭히면 어쩌지? 걱정이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결국 헬퍼나 호스트나 서로 모른다. 그리고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마찬가지다. 일방적으로 내 입장만 생각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한번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제나 보이는 것 너머가 있다. 상상하길 그치지 말자. 

    

   




우리나라에서 헬프엑스는 개념 자체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해외에서 어쩌다 먼저 헬프엑스를 경험한 소수의 의견이 헬프엑스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간접적으로나마 만져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내 이야기도 그 단서들 중 하나다.

    

누군가는 헬프엑스에 대해서 '완전 비추'라고 말하고 싶을 수도 있다. 호스트와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고 ‘외국인 노동자’ 이상의 경험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호스트와 성향이 맞지 않아(혹은 호스트가 정말 별로라서) 아주 불쾌한 기억만 갖고 떠날 수도 있다. 헬프엑스 웹사이트에서 각 호스트에게 달린 별점 평점(다섯 개가 만점이다)과 이전 헬퍼들이 남긴 리뷰를 통해 호스트가 대체로 상식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 판가름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개인과 개인이 만났을 때의 ‘케미’는 연애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할 수밖에 없다.  

각 호스트의 프로필 아래 이전에 다녀간 헬퍼가 남긴 별점 평점과 리뷰가 달려 있다. 약 3만 5천 원 정도를 내고 프리미엄 계정으로 업그레이드하면 내용을 볼 수 있다. 


  

안전이 담보된다는 전제 하에, 세상 만사가 그렇듯 헬프엑스 자체는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교환여행 헬프엑스는 ‘일손을 돕고 그곳에 머무르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구를 만나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그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는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렇기에 내가 헬프엑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건 비단 ‘이렇게 새로운 여행 방식이 있다’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이 진실로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일상을 함께 공유할 때 어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한 개인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같은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상은 여전히 많은 부분 다정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계속해서 기르는 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유럽과 남미로 헬프엑스 여행을 떠났을 때, 난 내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것들을 보게 될지, 그것들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꿀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김영하 작가가 그랬던가, '인생이 여행이고 여행이 인생'이라고. 내겐 헬프엑스가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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