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떠나가버린 故장국영의 13주기를 기리며.
2003년 4월 1일. 내가 초등학교 때였다. 만우절이라고 장난이 오고 가며 엉망인 상태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며 학교 수업 후에 집에 와서 TV에서 본 소식은 장국영이 자살을 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며, 그가 그립고 슬프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이제 그의 모습은 영상 속에서 찾을 수 있으며,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이 그가 출연한 영화 또는 드라마에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면서 이렇게라도 보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고 여긴다.
오늘 아침에 CGV에서 보여준 <패왕별희>는 재개봉작이면서 화질 부분에서 개선이 많이 이루어진 것 같다. 덕분에 보는 내내 옛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영화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더군다나 장국영의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이었던지 내심 반가운 마음이었다.
영화는 1925년에서 시작한다. 창녀, 매춘부였던 도즈의 어머니는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기에는 힘이 부쳐 아이를 경극학교에 맡기려 하지만, 도즈가 6 손(다지증)이었기에 경극학교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이를 본 도즈의 어머니는 도즈의 한 손가락을 잘라버린다. 이후 도즈는 경극학교에 들어가게 되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게 된다. 내성적인 성격이 한 몫하지만 크게 놀림받는 것은 도즈가 매춘부의 자식이라는 점이었다. 문득 보면 신분을 가지고 차별하며, 신분이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있는 이야기라 씁쓸해진다. 도즈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때 이를 지켜보고 도움을 주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시투다.
도즈가 미숙할 때마다 시투는 도즈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배역을 맡게 되었을 때 도즈는 '우희'를. 시투는 '항우'를 맡게 되었다. 도즈가 자신의 배역인 우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경극단의 후견인 앞에서 대사를 실수하면서 기회가 무산되려던 찰나, 경극학교 내에 집합이 걸리는 상황을 면하기 위해 시투는 담뱃대를 도즈의 입에 강하게 휘저으며 우희를 해내라고 권한다. 어찌나 강하게 휘저었는지 도즈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이후 도즈는 시투를 위해 자신의 배역을 해냈다. 도즈는 경극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봐주는, 자기 자신의 곁에 있는 이를 위해 자신의 배역을 해내려는 모습이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애정 어린 우정이 훗날 독이 될 줄은 모를 일이었다.
이후 후견인의 추천으로 도즈와 시투가 청나라 궁중 내관이었던 장 대인의 집에서 경극을 펼치는데. 이를 본 장 대인은 도즈의 미모에 취해 성性을 사들였다. 이는 배우가 되려면 거치는 과정임을 강조하는 것을 보아 연예계에 입문하기 위한 절차 과정임과 동시에 구시대에 자리한 악습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을 스승이 상납을 했다고 하지만, 스승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표정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이후에 나타나는 도즈의 섹슈얼리티의 변화는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사료된다. 장 대인과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도즈는 돌아가는 길에 시투의 물음에도 대답을 안 한다. 그 참담하고 수치스러우며 모욕적인 상황을 어떻게 자신을 믿는, 사랑해주는 이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침묵으로 일관하며 길을 가던 도즈는 한 아이를 발견한다. 이를 본 스승이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있다고 그냥 가길 권했으나 도즈는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돌아온다.
10년이 지난 1937년. 도즈는 '청데이'라는 예명을, 시투는 '단샬루' 라는 예명을 쓰는 당대 최고의 경극 배우가 되어 있었다.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원 대인이라는 인물이 참석해 본다고 데이와 샬루에게 전한다. 그리고 이 원 대인이라는 사람은 공연 이후에 데이에게 보내는 눈빛이 영 심상치가 않다. 데이와 샬루에게 밥을 먹자고 권하나 샬루는 기생집을 간다며 거절하였고 데이는 가만히 있었다. 원 대인은 그럼 나중에 밥이나 먹자고 하며 떠나는데, 이 과정을 보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보통의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보내는 눈 빛은 저렇지가 않다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샬루는 홍등가의 기생집에서 가장 유명한 주샨과 우여곡절의 상황 끝에 약혼을 올린다. 약혼을 올리는 샬루와 주샨을 보는 데이는 질투와 더불어 시기심을 가지게 되며 그들을 차갑게 대한다. 여기서 비롯된 데이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샬루는 데이에게 친구며, 가족이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물씬 느껴진다. 이 사랑이라는 것이 고단한 경극학교에서 비롯된 의지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었기에 보통의 관계라고 그려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겨졌다. 데이는 두 사람의 관계를 너무 싫어하는 나머지 앞전에 찾아온 원 대인과 자주 만남을 가지게 되고 단순한 관계를 뛰어넘게 된다. 샬루와 주샨은 결혼을 하게 되며, 데이는 여기서 비롯된 외로움을 아편으로 달래기 시작한다.
1945년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에서 패전하여 국민당이 수복하자 대대적인 친일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나섰다. 데이의 경극 공연 중에 군인이 몰려와 데이를 지목해 친일파라 비난하자 샬루가 군인들을 말리다가 한패로 몰리며 싸움이 벌어졌고, 임신 중이던 주샨은 이를 말리며 샬루를 찾다가 구타를 당해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이때 샬루는 데이와 주샨에서 선택을 해야겠다. 앞으로 살아갈 날에 있어서 사람을 택해야 한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샬루는 주샨을 선택하나, 자신의 친동생 격인 데이를 마냥 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데이와 긴밀한 관계였던 원 대인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원 대인은 잘 살고 있는 나에게 이득이 될 것이 없다며 발을 빼려 한다. 얼토당토않게 과거의 7걸음을 언급하며 샬루를 모욕하려 하나 주샨의 계책으로 모면하며 원 대인의 협조를 이끌어낸다. 원 대인의 협조를 이끌어 냈고 남은 것은 데이의 선택이었다. 데이의 선택이 데이의 목숨을 살릴 유일한 방도였다. 하지만 주샨이 전달한 샬루의 선택적 메시지에 의해 데이는 많은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으며 법정의 판결 역시 원 대인의 도움을 거부하고 자신을 죽이라고 말한다. 이 모습을 본 주샨은 데이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보는 내내 데이의 고집에 고구마를 먹은 느낌이 가득했다. 샬루와 주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판결이 사형으로 가는 데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한 고위 간부의 청탁으로 보석으로 풀려나게 된다.
1949년 국공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국민당은 대만으로, 중국은 공산주의가 퍼지며 공산화되었다. 데이가 데려왔던 아이는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며, 데이는 경극을 그만두게 된다. 앞전에 나왔던 '변태 게이' 원 대인은 사형당한다. 데이는 이쯤 때 아편을 끊으면서 리스크에 시달리는데 주샨은 이를 보고 일종의 모성애를 느낀다. 어찌 보면 동정심일 수도 있지만, 극 중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자뭇 모성애를 그리게 된다.
이후 1966년 중국 문화 대혁명이 이뤄지면서 샬루와 데이가 몸 담고 있던 극단은 대거 인민재판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데이와 샬루는 자신이 하던 우희, 항우의 경극 분장을 한 후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을 당한다. 이 과정에서 샬루는 재판의 압박 및 고문을 이겨내지 못한 채. 자기 자신 바로 옆에 있는 데이의 사적인 이야기와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폭로하며 데이를 모욕하게 된다. 이를 들은 데이는 샬루가 자신을 져버렸다고, 배신했다고 느끼며 샬루의 자아가 담긴 항우, 패왕을 버렸다고 비난하기 시작하며 울부짖는다. 이를 본 주샨은 말리려 다가오지만, 데이는 주샨의 과거를 많은 사람 앞에서 들춰낸다. 주샨의 과거가 들춰지자 홍위병들은 샬루를 향해 저 여인을 사랑하냐고 묻기 시작하고 모욕하자 샬루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를 본 주샨은 절망에, 배신에 표정을 잃는다.
결국 세 사람 다 풀려나지만, 주샨은 샬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과, 버렸다는 상실감으로 자살을 하고 이를 본 데이와 샬루는 실성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문화 대혁명의 영향이 거의 사라진 1977년. 데이와 샬루는 은퇴 직전 패왕별희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데이와 샬루의 주고받는 박자감은 서로가 얼마나 많은 공연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서로에게 서로는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였다. 데이와 샬루가 서로 연기의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샬루가 잠깐 고개를 돌릴 때. 데이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샬루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뽑아 든다.
전체적인 내용은 경극을 중심으로 시대의 변천과 사람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관객을 몰입시킨다. 171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하다 라는 평을 내릴 만큼 집중, 몰입도가 높다.
<서한연의>에서 펼쳐낸 해하전투에서 피어난 항우와 우희의 이야기인 경극은 우리 눈에 보이는 화려하고 즐기는 문화적인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배우들의 노력이 각자 고충과 인생의 굴곡이 자리했음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 끝에서 보노라면 인간적으로 슬프다 못해 마음이 미어진다. 가족애와 우정과 사랑. 그리고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 여러 가지의 복합적 감정이 충돌하고 부딪히기 시작하는 모습은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괴리감에 빠지게 된다. 데이가 샬루를 위해 했던 일과 더불어 샬루가 데이를 위해 헌신하려는 것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 직면하면서 사람의 모습이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렇게 인물들의 복합적인 갈등관계를 풀고 있다 보면 두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인물을 둘러싼 배경이다. 1920년 당시의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일제의 침략과 더불어 문화 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근현대사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면서 때로는 역사가 사회를 추구하지만 개인을 억압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중국의 경우는 사회주의기 때문에 이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 문화, 역사적으로 삼박자의 요소를 두루 갖추면서 <패왕별희>는 보는 이를 끝까지 집중시킨다. 잘 살고, 잘 해보려고, 잘 하고 싶어서 잘 하려 하지만, 더 잘 하려고 잘 되려는 그 강박이 오히려 사람을 타락시키는 또는 추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을 보고 참 마음이 미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오히려 서로를 밀어내는 아이러니함에서 데이의 자살은 샬루에게 주었던 자신의 마음을 다시 가져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데이의 마지막의 죽음처럼 때로는 많은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편안해지는 것이 아닐까.
故장국영을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