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4 - 미국 알래스카 페어뱅크스(Fairbanks)
2017.03.27
알래스카 여행에서 알래스카 철도 다음으로 기대가 컸던 것은 바로 개썰매를 타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만화영화 중에 '발토(Balto)'라는 영화가 있었다. 알래스카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어마어마한 거리에서부터 약을 운반해와 전설처럼 남은 개에 대한 영화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는데 몇 번이고 돌려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한 번쯤 개썰매를 타보고 싶었다.
전날 늦게까지 오로라를 보고, 숙소에 와서는 또 호스텔 사람들과 오로라 이야기를 하느라 늦게 자서 피곤했다. 그래도 가서 개들을 만나니 기분이 들떴다. 개들이 굉장히 짧은 줄에 묶여있었는데, 워낙 여러 마리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겠지 싶으면서도 조금 마음이 아팠다. 24시간 저렇게 묶여있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개들이 너무 사납게 짖어대서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모두 짖는 것을 멈추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거나 어쩔 줄을 몰라한다. 가운데에 서 있는 이 시베리안 허스키도 굉장히 도도한 자세로 우리를 내려다보더니, 가까이 다가가니 나에게 얼굴을 비벼댔다.
이곳은 알래스카 챔피언 경력도 있는 에이미라는 이름의 여자가 실제로 연습하고 훈련하는 곳인데, 우리처럼 관광객들이 오면 현역(?) 개들이 아닌 나이가 들어 경주에 나갈 수 없는 개들로 선정해서 달린다고 한다. 실제 경주를 하는 팔팔한 개들이 달리면 너무 빠르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고, 또 나이가 든 개들에게도 신나게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개들하고 놀다가 드디어 썰매에 타볼 시간. 에이미가 뒤에 서서 속도나 방향 등을 조종하고, 나는 썰매에 올라타 편안하게 다리를 뻗고 앉아있으면 되었다.
나이가 든 개들이라고 해서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경주개 출신들이라 정말 빨랐다. 여러 마리가 한 번에 박자가 맞는 것도 신기했다. 정말 오랜 시간 호되게 훈련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또 한 번 마음이 아팠지만, 알래스카만의 문화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로 했다.
속도가 빨라서 신났고, 옆으로 꺾을 때마다 스릴이 넘쳤다. 15분가량밖에 안 탔는데도 바람을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마비되는 줄 알았다.
페어뱅크스에 돌아와서는 Ice Alaska 전시 공원에 갔다. 저녁에 가면 불빛이 켜져 더 예쁘다는데, 전날부터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 쉬기로 했다. 행사는 이미 다 끝나고 추가 전시 중이라서 한산했다.
생각보다 조각상들이 너무나 섬세해서 놀랐다. 얼음조각을 위해서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온도도 중요했을 텐데, 작가들이 얼마나 힘들게 작업을 했을까.
한편에서는 이렇게 작은 조각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음조각에 불을 조금씩 그을려 모양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조각상의 크기와 주제, 작가의 연령에 따라 참가부문이 나뉘는데, 시상이 모든 끝난 시점이다 보니 각 조각상들이 몇 등을 했는지도 볼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코끼리를 좋아해서 이 조각상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상을 받은 작품은 아닌 것 같다.
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을 얼음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이었다. 캐릭터도 여럿이고 각 캐릭터의 얼굴 표정까지도 정말 섬세하게 표현해 놀라웠다.
오전에는 눈 위를 달리고, 오후에는 얼음들 한가운데 있었던 하루였다. 5주간 남미에서는 더위에 지쳤는데, 그 이후로는 계속 추위 속, 그리고 알래스카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눈과 얼음 한가운데 있으려니 추워도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에는 더 극한의 추위와 진짜 알래스카를 만나러 갔다.
# 사소한 메모 #
* 개썰매도, 얼음 조각도, 사람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