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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Nov 21. 2023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

캄보디아 여행 5 - 앙코르와트 빅투어

내가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대부분 웅장한 자연풍경을 보기 위함이다. 아이슬란드의 빙하,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지역의 산맥, 갈라파고스의 바다와 같은 풍경들 말이다. 건물들이 가득한 도시는 현대적이든 중세적인 분위기든 간에 언젠가는 질리는 편이다. 유럽 남부를 여행하던 때, 오렌지빛 지붕들에 처음에는 한껏 설레다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 남부까지 내려오는 동안 점점 감흥이 없어진 것처럼.


그래서 앙코르와트 여행도 그렇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비슷비슷한 사원을 계속 보다 보면 첫날의 벅참이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고대의 유적이라 해도 결국 앙코르와트 유적들도 사람이 지은 것이고,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사원들은 그 양식들 또한 대체로 비슷하고, 세워진 동상들의 모양도 비슷할 테니까.



하지만 막상 여행을 시작하니 내가 출발 전 했던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건축물들만 건조하게 덩그러니 있는 곳은 없었다. 모든 장소에는 자연이 있었다. 정글로 뒤덮여 오랫동안 전설로만 남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만큼, 지금까지도 그 역사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과거에 끝도 없이 이어졌던 정글은 이제 사이사이에 길이 나있었지만, 여전히 그때 당시를 짐작할 수 있는 자연 풍경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사원에서는 나무들이 자랐고 벽에는 이끼들이 자랐으며 우리 주위로는 나비와 잠자리들이 겁도 내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다녔다.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해자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애초에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지어진 사원도 있었다. 유적지 주위는 늘 자연의 생기로 채워져 있었다. 중간중간 드물게 원숭이나 닭, 민물게가 걸어가는 모습까지 본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고층건물들이 빼곡한 곳에서 살고, 고층건물들이 빼곡한 곳에서 일을 한다. 건물들 사이사이에 선 가로수, 공원, 누군가 심어둔 꽃 한 송이를 통해 우리는 그 건물틈 사이에서도 자연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곳에 원래 있던 자연은 없다. 만들어낸 자연들일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때로는 다행이라고 생각되지만,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나무들과 공원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이유는 원래 그곳에 있던 동식물들은 이미 다 제거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아직 현대의 인간들이 건드리기 이전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대자연은 아니어도 소소한 자연, 사원과 한 몸 된 일상적인 자연풍경들은 입이 떡 벌어지게 감탄이 나올 정도의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 속에 함께 하고 싶은 풍경이었다. 첫눈에 반하는 강렬한 사랑은 아니지만, 오래오래 주변에 남고 싶은 그런 소중한 인연 같은 것이었다.



주변에 그 어떠한 현대식 건물들도 찾을 수 없었던 그곳들에는 마치 시간이 흐르지 않은 듯했다. 물과 나무들과 풀밭과 얽힌 모습 그대로, 오래전 발견된 모습 그대로, 여전히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앙코르와트와 그 주변 유적들은 건물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과거의 자연이 발견되어서 다행이라는 마음 반, 하지만 서서히 훼손되리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 반.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동물들의 터전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듯, 식물들의 터전도 헤아리리라 생각했다. 십 년 뒤 이십 년 뒤에 다시 가더라도, 이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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