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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May 29. 2024

나도 원한다, 시간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운전대를 잡으면

혼자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 여행하는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내가 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 나는 굉장한 겁쟁이다. 놀이공원에 가면 탈만한 기구가 하나도 없는 것은 물론, 높은 곳에 올라가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둠 속을 걸을 때면 귀신이 나타날까 봐, 아니 낯선 사람이 나타날까 봐 무섭다. 사막의 모래 언덕에서 배를 대고 엎드려 내려오는 샌드보딩 같은 것들도 남들은 즐거워하지만 나는 심장이 철렁거리는 느낌이 끔찍하다. 게다가 누가 내 얼굴에 손만 가져다대도 숨 막히게 답답한 일종의 폐소공포증까지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운전이다.


'안녕하세요, 3월에 방문하고자 하는 여행자입니다. 혹시 3월에는 아예 투어가 진행되지 않는 건가요?'


몇 년 전 겨울, 캐나다 동부의 여러 여행사들에 메일을 보냈다. 3월의 캐나다는 겨울이라 비수기인지, 여행상품들이 대부분 중지 중인 것으로 보였다. 꼭 가고 싶었던 지역이 여럿 있었는데, 답변조차 없는 여행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겨울에는 아예 업무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3월에는 아쉽게도 여행상품이 없습니다. 원하실 경우 차량을 직접 렌트해서 방문하실 수는 있습니다.'


답변을 줬던 여행사는 딱 한 곳. 하지만 그 답변은 내게 소용이 없었다. 눈이 내릴 수도 있는 먼 타국에서 운전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눈 내린 3월의 캐나다 퀘벡시티


대체 내가 면허증은 어떻게 딴 건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공포심을 극복해보고 싶어서 면허 취득 이후 몇 차례 운전 연습도 해봤지만, 결과는 늘 자율주행자동차를 검색해 보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좌회전을 할 때는 물론 아무도 가로막고 있지 않은 우회전을 할 때도 등에는 계절 불문 땀이 찬다.


게다가 운전 연습을 할 때면 꼭 한 번쯤은 밤에 악몽을 꾼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벌판의 도로 위에, 나 혼자 자동차 안에 갇혀 있는 꿈. 늘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액셀이 밟히지 않아 발을 동동 굴리다 깨어난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해준 이야기가 지금도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것 같다. 600km 넘게 인가가 없는 어느 광야를 지나가던 관광객 부부가, 차가 고장 나서 그 자리에서 며칠을 굶다가 결국 죽었다는 이야기. 워낙 오지여서, 그 도로를 지나는 사람은 고작 며칠에 한번 있을까 말까로, 때로는 일주일 넘게 아무도 안 지날 때도 있어서 그 부부 역시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실제 있었던 일인지 그저 괴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라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일단 주차장에서 먼저 연습을 해봐."

"해봤어. 근데 주차장도 무서워. 도로 위에선 운전자들이 피하기라도 하지, 주차장에선 다른 차들이 무방비상태잖아. 몇 대씩 긁을 것만 같아."

"사람만 안 다치면 되지."

"걸어 들어오는 사람 치면 어떡해?"

"… 그냥 지하철 타고 다녀."


운전대를 잡으면, 남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거대한 힘이 내 손안에 들어오는 기분이다. 그 힘은 나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고 내 인생을 더 편리하게 해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폭탄이 될 가능성 또한 가지고 있다. 나는 충분히 통제할 자신이 없으므로, 폭탄이 되느니 그냥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쪽이다.


하지만 내가 그 힘을 직접 다루는 것이 두려운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을 반대로 남의 손에 맡기는 형국이 되었다. 매일 대중교통을 타고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동안, 나는 내 손보다는 남의 손을 믿고 있는 것이다. 나보다 그들이 나으리라고 믿기에 그런 것이지만, 그래도 영원히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러한 공포 속에서도 내가 운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적은 없다. 세계여행을 할 때도 국제운전면허증을 준비해 갔다. 혹시나 긴급한 상황이 오면 필요할까 싶어서 챙긴 것이었다. 물론 결국 단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아 배낭 한 구석에 처박혀 때만 탔다. 사실 어쩔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 오면 어떻게든 운전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며, 내심 그런 긴박한 상황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겁도 무진장 많은 주제에)


다른 사람의 차, 유럽 어딘가에서


그렇지만 내가 언젠가 정말로 운전을 하게 된다면, 그건 여행을 위함일 것이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지금은 웬만하면 어디든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구석구석 보고 싶은 여행지에서는 원하는 곳에 적당한 교통편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매번 택시를 타는 것은 부담스러우니, 운전을 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곳들이 생긴다. 3월의 캐나다에서 노바 스코샤나 뉴펀들랜드와 같은 곳들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던 것처럼.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나는 가끔 내가 자신 있게 운전할 수 있는 때를 상상하곤 한다. 그때의 나는 아마 뉴펀들랜드섬의 해안 도로를 따라 천천히 운전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첫 해외운전은 말이 통하는 영어권 국가가 좋을 것 같으니까. 게다가 뉴펀들랜드는 인구가 아주 많지도, 관광객으로 엄청 붐비지도 않는 곳이니, 운전이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배낭과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은 채 원하는 곳에 멈춰 숙박하고 또다시 길을 따라 달리는, 그 어떤 시간표에도 얽매이지 않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자유롭게 운전대를 잡고 캐나다의 멋진 해안을 달리며, 예쁜 장소에서는 오래 멈춰서 보고도 싶다.


그런 여행의 낭만을 떠올리며 틈틈이 두려움에 맞서 운전연습을 해봐야겠노라고 마음을 다시금 잡아보지만, 오늘도 역시 운전대는 잡지 않을 것 같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지역 <출처 : (좌) canadaroadtrip.com, (우) freedomdestination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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