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능이 끝나고 울고 있는 너에게

by 바다의별

나는 수능을 잘 보지 못했다. 모의고사에서도 안 하던 실수를 해서 가채점 후 엉엉 울었다.


계열로 입학한 대학교에서는 1학년 성적으로 전공을 택할 수 있었는데, 열심히 했음에도 부족해서 결국 3 지망이었던 학과를 전공하게 되었다.


기자나 광고기획자가 되겠다고 복수전공까지 했지만, 결국 전혀 상관없는 회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원하지 않았던 전공 덕분에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그 계기로 언어와 여행을 사랑하게 되었다.


계획에도 없던 회사에 입사해서는 여행으로 선뜻 가기 어려운 나라들로 출장도 갔고, 운 좋은 기회까지 생겨 용기 내어 퇴사하고 어릴 적 꿈이었던 세계여행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여행 이야기를 담은 책도 출간해 또 하나의 꿈도 조금 이루어보았다.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고, 가끔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대학 때 원하는 전공을 신청조차 못해 우울해하던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일 뿐이라고.
하고 싶은 일들, 언젠가는 다 하게 될 거라고.

친구의 말이 맞았다.


나는 돌고 도는 길 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들을 수도 없이 만났고, 내가 꿈꿨던 것들은 가장 의외의 순간에 내 앞에 나타났다.

실패라고 생각한 순간들은 새로운 시작이었고, 계획 없이 들어선 길의 끝에는 언제나 더 멋진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건 계속 걸어가는 발걸음 그 자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수능이 끝나고 울고 있던 나에게 한 마디만 해줄 수 있다면,


네가 서 있는 길이 언젠가는 정답이 될 거라고 말해줄 것 같다.

너의 길이 어디까지 닿을지는 몰라도, 분명 무척이나 아름다울 거라고.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반계리 은행나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은 언제나, ‘다녀온 혹은 떠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