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 May 09. 2021

땅이 흔들렸다! 지진이다! (여행중에 지진을 만났을때)

멕시코 방황기(彷徨記) 2편

멕시코 방황기(彷徨記) 2편

아침에 수탉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응? 닭이라고?


멕시코시티는 멕시코의 수도이자 2,300만 명 인구의 대도시이다. 서울의 약 2배의 인구가 산다.  

그렇게 많은 인구가 사니 도심에서 수탉 몇 마리 키우는 집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냐? 마리나네 집에서는 바나나도 키우는데. 라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한국과의 시차는 15시간. 시차 적응이 안돼서 그런지 새벽 4시쯤 눈을 떴다. 조용히 마리나의 침대에 앉아 수탉 울음소리와 함께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마리나의 가족도 여느 집과 다름없이 출근, 등교 준비로 아침이 바쁘다.


마리나가 졸업한 대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우남대. 한국 대학 이름이 아니다. Universidad Nacional Autonoma de Mexico의 약자 UNAM이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중남미 국가 사이에서 유명한 학교라고 한다.


학교에 갔더니 캠퍼스가 보통 넓은 것이 아니다. 서울대 저리 가라 수준. 거의 반나절을 돌아다녔지만 일부만 볼 수 있었다. 캠퍼스가 너무 예쁘고, 날씨도 정말 좋았다. 정말 빛이 난다는 표현이 잘 어울렸다. 사람들, 학교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잔디마저도 빛이 났다.


숲, 정글 아닌 대학 캠퍼스. 사람이 개미만해 보이는 우남대 잔디 면적 클래스

우남대의 하이라이트는 도서관이다.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서관은 외관의 벽화와 모자이크로 유명한 곳이다. 멕시코 특유의 선이 굵은 그림들이 웅장하게 그려져 있다. 스페인 침략 이전과 이후로 바뀐 멕시코의 역사를 예술로 표현한 건축물이었다.




도서관을 등지고 나오는 길에는 간단히 목을 축이기로 했다.  


멕시코에서 좀 특이한 음료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아구아 프레스카 (Agua Fresca)’. 과일과 물 혹은 얼음을 넣어 갈아 만든 음료인데 그 안에 치아시드 같은 씨앗 종류를 넣어서 함께 마시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과일, 씨앗 등을 선택해서 넣을 수 있다.


"마리나, 아구아 프레스카가 정확히 뭐야? 주스야?"

"아니, 물에 과일을 섞은 거야"

"그니까 그게 주스잖아"

“과일을 갈아 만든 게 주스고, 이건 과일에 물을 섞은 아구아 프레스카야"


난 사실 아구아 프레스카에 대해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다. 과일값이 비싸서 과일 갈아 넣은 것에 조금이라도 물을 넣어야 주스가 완성되는 나라에서 평생 살아서 그런가. '과일맛이 많이 나는 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학교 앞에서 마리나와 거대한 아구아 프레스카 한 잔을 나눠 마시고 지하철 역에서 헤어졌다.


첫 대중교통 이용. 생각보다 별건 없었다. 혹시나 터무니없이 지저분할까 봐 염려했지만 난 이미 파리를 다녀온 몸. (파리의 지하철은 더럽기로 악명 높다.) 그리고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하철의 내부가 어땠는지 볼 수가 없었다. 주변이 온통 사람이었다. 역시 서울 지하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며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는 '코요아칸 시장 (Mercado Coyoacan)'을 구경하고,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Shape of Water)'를 보았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는 멕시코 출신의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판의 미로’가 있다. 여행을 할 때 관광지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일상적인 것을 해보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현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 나도 이 곳에 공존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이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이곳에 살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귀염 그로테스크라고 해야 하나. 참 귀엽게 잘 승화시키는 것 같다. 이것도 스토리의 힘이겠지. 겉모습은 위협스럽지만 스토리의 힘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


영화가 끝나니 저녁 10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멕시코는 위험하다', '치안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어서 늦은 귀가를 하려니 마음 한 구석이 콩닥거렸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바로 우버를 탈 수 있었다. 아마 우버 기사님도 의아했을 것이다. 한밤중에 우버 콜을 잡고 보니 왠 동양 여자가 영화관에서 출발해서 호텔이 모여있는 관광지가 아니라 로컬 주택지를 향해 가니 말이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지금 가는 곳은 어디인지, 그 친구는 어디서 만났는지 이런 과거사를 다 이야기하고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기사님은 내가 내리고 나서도 집에 잘 들어가는지 확인해주겠다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안심이라는 의미로 엄지 척을 했더니 그제야 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두 번째 하루가 지나갔다.


3일째 되는 날은 아즈텍 문명이 남긴 멕시코의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Teotihuacán) 투어를 갈 예정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우버를 타고 갈 수 도 있지만 가이드 설명도 듣고 편하게 갈 겸 투어를 신청했다. 그런데 그 날 나는 그 투어차량에 탑승을 못했다. 픽업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설마 잘못된 장소에서 기다렸던 건가? 하지만 확인을 할 길이 없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투어 회사에 전화를 했다.


"오늘 테오티우아칸 투어를 신청했는데 버스가 오지 않았어요."

"버스가 오지 않았다고요? 그럴 리가요. 잠시만요."

(잠시 대기 음악 소리 후)

“투어버스는 사람들을 싣고 벌써 떠났어요. 왜 픽업 장소에 없었던 거죠?"

"네에에에에? 전 지금 여기에 있다고요. 다시 데리러 와달라고 해주세요!"

"그건 안돼요. 그리고 저희는 사전에 픽업 장소 시간에 대해서 미리 공지를 했기 때문에 투어를 놓친 건 고객의 잘못이에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저기요. 제가 한국에서 왔는데요. 이걸 못 보고 가는 게 말이 돼요? 제발 다른 날로라도 바꿔주세요. 저 정말 여기 픽업 장소에 있단 말이에요!"

"잠시만요. (다시 대기 음악 소리) 여보세요. 저희가 특별히 며칠 뒤에 있는 투어에 당신을 넣어주기로 했어요. 이날은 정확히 제시간에 픽업 장소에 있어야 해요. 오렌지색 깃발을 꽂은 버스가 올 거예요. 절대 못 볼 수가 없어요. 오렌지 색 깃발이에요!"

"헉......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그렇게 투어는 며칠 뒤로 미뤄졌다. 테오티우아칸을 못 가게 되자 그날 오후 스케줄이 텅 비었다.  


급하게 구글맵으로 어딜 가면 좋을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 가지 레이더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멕시코시티 안에는 전날 갔던 코요아칸의 시장과는 비교도 안될만한 큰 시장이 있었다. 바로 ‘수공예품 전문 시장’ (Mercado de Artesanias). 기타, 인형, 장식품, 액세서리 등 멕시코에 관련된 것은 없는 것이 없다.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구역도 깔끔하고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도 이 곳에서 기념품으로 선물할 옷, 쿠션 커버 그리고 종이 가랜드를 구입했다.



3시간 동안 혼이 빠져서 구경을 했더니 허기가 찾아왔다. 시장의 가장 안쪽에 카페 겸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맥주와 간단히 먹을 음식을 시켰다. 그때 어디선가 지친 모습의 영국인 모자가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걸어오더니 내 앞 테이블에 앉았다. 둘은 고민하더니 내가 시킨 멕시코 로컬 맥주를 흘깃 보고는 '그 맥주 괜찮아?'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는 의미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고 쉬고 있었다. 다음은 어디를 갈까.  




그때였다.

갑자기 세상이 흔들렸다. 쿠아아아앙.


지진이었다다행히도 시장 안의 대부분의 가게는 실제 건물이 아닌 목재로 간단하게 만든 가벽 구조였고주변의 가장 높은 건물이라 해도 겨우 2 높이였다설령  곳이  무너진다 해도 그리 위험할  같진 않았다하지만  알고 있다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여행을 하다 보니 많은 곳에서 지진을 겪었다나름 내성이 생겼지만 그래도 막상 겪는  순간이 무섭다영국인 모자는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지만땅이 흔들리자마자 스프링 튕겨 나가듯이 지붕이 없는 시장의 중심부로 튀어 나갔는데 그때도 둘의 손에는 맥주병이 들려 있었다.


잠시 후 흔들리던 땅도 많이 진정이 되었다. 관성의 법칙으로 벽에 걸린 물건들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땅이 한차례 흔들리고 난 뒤 시장의 중심부로 대피해있던 사람들의 모습

재미있는 건 인간이란 어떤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 그 장소에서 우선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진이 멈추자 그 즉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향한 곳은 인터스텔라 도서관으로 유명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Biblioteca Vasconcelos)였다. 우버를 불러서 도서관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가는 사이, 갑자기 현지인 친구인 일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레나! 괜찮아? 방금 지진이었어!"

"응. 일리. 난 괜찮아."

"너 지금 어디야?"

"나 시장 구경하다가 이제 도서관으로 가려고. 근데 차가 좀 막히네."

"도서관에 간다고????? 그냥 집으로 가. 도서관도 닫았을 거야."

"……. 어?"

"기다려봐, 내가 확인해볼게”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도서관도 지금 닫혀있어. 마리나의 집으로 돌아가 있어 레나! 위험할 수도 있어!”


수십만 권의 책들이 쌓여있는 도서관이 지진에 멀쩡할리가 없는데 생각이 짧았다. 그렇게 도서관으로 향하던 택시를 멈춰 세우고 마리나에게 연락을 했다. 마리나는 저녁 먹을 겸 내가 있는 곳으로 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지진은 괜찮을 거라고.


그래서 시티에서 혼자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졌다. 근처에 유명 글로벌 체인 호텔이 있길래 조용히 로비를 통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지진 때문에 수도가 일시적으로 끊겨서 화장실 사용이 불가능했다. 정확히 말해 사용은 가능했다. 단지 물이 내려가지 않을 뿐. 도로에는 차들이 엄청 많았고,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트럭을 타고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도로의 한 블록을 계속해서 돌며 확성기를 통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아마도 여진이 있을 수 있으니 안전한 곳에 있으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주변에 광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잠시 사고가 멈췄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마리나를 1시간 정도 기다렸을 때쯤, 마리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레나, 밖에 나가려고 하는데 차가 잡히질 않아. 니가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 같아"


다시 우버를 붙잡고 집으로 가려는데 우버를 잡는데도 또 1시간이 걸리고, 집까지 가는데도 1시간이 걸렸다.


정말 되는 일이 없는 하루였다. 피곤했다.


집에 도착하자 이반이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최악의 하루였어"라고 내뱉고 말았다. 이반은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기타 연주를 해주겠다고 했다. 이반은 수의대에 진학했다가 뮤지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고 기타를 배우고 있었다. 연습 중에 내가 나타나자 하던 연습을 마저 더 하려 했던 것 같다. 하나도 위로가 안 되는 슬픈 느낌의 곡이었지만 그 마음이 고마웠다. 마리나는 저녁도 못 먹은 나를 위해 또띠야, 검은 콩으로 만든 수프 그리고 선인장 볶음을 내주었다. 두 번째 먹는 선인장 볶음은 묘하게도 맛있었다.  


바로 저 빨간 소스의 애호박 같이 생긴 것이 선인장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나 했더니 마리나가 갑자기 제안을 했다.  


"레나 오늘 저녁에 피에스타 갈래?" (피에스타는 스페인어로 파티를 뜻한다.)

"웬 피에스타?"

"대학 동기들 모임인데 클럽에서 할 거야”

“근데 오늘 지진 났던 거 아니야? 피에스타 해도 되는 날이야? 내가 꿈꾼 건가?”

“아니 지진 났던 거 맞아. 근데 괜찮을 거야"

“어?..."


그렇게 나서게 된 멕시코의 클럽행. 일단 라틴음악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무대에는 가수라고도, 사회자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올라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중간에 노래도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 같이 살사와 같은 라틴댄스를 춘다. 라틴댄스의 핵심은 스텝과 파트너이다. 멕시코의 한 클럽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한국에서 라틴댄스 학원을 한 달이라도 끊고 스텝이라도 배워서 다시 오고 싶었다. 결국 보다 못한 마리나 친구들이 날 도와주기로 했다.  



‘레나, 이렇게 하는 거야. 하나, 두울, 세엣, 네엣.”


한 몸에서 나오는 움직임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팔과 다리가 따로 움직였다.  마리나 친구들 중 일부는 나를 포기하고 춤을 즐기러 갔고, 나머지가 대화를 시도해주었다. 마리나는 엄청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결국 그 날 새벽에 더 놀자는 마리나의 친구들을 만류하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마리나네 엄마가 어젯밤의 피에스타는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저 멀리에 있던 마리나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엄마! 레나는 춤을 출 줄 몰라!!!”


고오맙다. 마리나.

매거진의 이전글 멕시코 현실 가정집에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