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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Feb 01. 2019

수면 내시경을 받고 난 후, 먹는 삼겹살이 최고다

얼마 전부터 성실장이 여기저기 쑤시다고 하고, 머리도 아프고, 너무 피곤하다고 중얼대더니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카톡을 보내왔다.


‘나 갑상선 암일까?’


라는 말과 함께, 인터넷 링크가 있었는데, 


인터넷 링크의 제목은 : "갑상선 암이 의심되는 초기 증상"이었다.


피곤하고, 소화가 안되고, 입맛이 없고 등등 대부분의 증상이 애매모호하게 진짜 암인가? 싶었지만, 결정적으로 ‘급격한 체중감소’ 항목에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성실장은 ‘자도 자도 피곤하다’라는 한 마디에 꽂혀서 무섭다고, 암이면 어떡하냐고, 엄마 친구의 딸의 친구가 동갑인데 암이라고 했다고, 친구의 엄마의 친구의 딸이 얼마 전에 수술했다고 등등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을 계속했다.


처음엔 성실장이 왜 이리 호들갑일까 했는데, 듣다 보니 좀 걱정이 되긴 했다.


애 둘 낳고, 보약 하나 먹지도 못하고 계속 맞벌이하느라 몸이 고장 났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초음파 등 전반적으로 검사받는 것을 알아보고, 성실장에게 검사를 받으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성실장은 검진을 안 받겠다고 나섰다.


시간도 없고, 돈도 아깝고, 생각해보니 그런 병이 아닌 것 같다면서 일단 이번 달 회사 마감 끝나고 하자고 자꾸 도망가는 것이다.


왜 자꾸 걱정하면서 도망만 가냐고 버럭 화를 냈더니, 

내가 버럭 하면 두배로 버럭 하던 성실장이 이상하게 꼬리를 내리면서 “그냥 나 걱정해 주니까 그걸로 됐어. 괜찮아. 그리고 보험도 알아보고 검진받을게”라는 것이다.



아프면, 돈부터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나는 막연히 성실장이 “진짜 큰 병일까 봐” 두려워서 검진을 피하는 줄 알았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애들 두고 일찍 가는 병이면 어쩌지 하는 상상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검진비는 물론이고, 큰 병일 경우 보험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말 그대로 ‘돈’의 계획이 안 잡혀서 병원을 못 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돈은 걱정하지 말고, 일단 진료받고 치료받고, 돈은 그다음에 생각해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리 내어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굶는 거고, 돈이 없으면 병원도 못 가는 거고, 돈이 없으면 사랑도 못하고 애도 못 기르는 것’이 룰이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아프다는 현실 앞에 ‘지갑부터 보는 성실장’이 어른이 된 것 같아서 고맙고 마음이 미안했다.


결혼할 때만 해도 ‘마이너스 통장은 높은 신용도로 좋은 것’ 정도로만 알던, 돈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여자인데, 이제는 병문안 시에는 현금이 최고고, 보험 약관 하나하나 뜯어볼 줄 아는 어른이 된 것이 기특하고, 든든했지만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나’니까...


나는 아직 ‘돈보다 사람이고, 돈보다 꿈이고, 돈보다 사랑’인 철부지인데

성실장은 그게 아니니까 많이 미안했다.


다행히


검진 결과 성실장은 그냥 만성 피로이고, 다이어트하고, 운동하라는, 아주 좋은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검진 비용도 보험 처리되는 부분이 많아서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검진 결과를 듣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결과를 받고, 나는 성실장에게 어른스럽게 “이제부터 야채 먹고, 커피 줄이고, 주말에 맥주 한 캔 하던 것도 한 달에 한 캔으로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돈 걱정하던 성실장이 갑자기 애처럼


“다 필요 없고, 고기부페 가자 당신 카드 있지? 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라고 막 앞장서서 잡은 손도 놓고 혼자 고깃집에 들어갔다.


역시 이래야 내 마누라지!!!


그날 우린 무한리필 고기를 고등학생 씨름부처럼 먹으며 기분 좋게 맥주도 한 잔 했다.


전날 밤 9시부터 금식하고, 수면 위/대장 내시경 후 먹는 삼겹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을 배운 철없는 부부였다.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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