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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Aug 15. 2022

친구

2022.08.14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t 1

음… 이거면 어떨까?

선물을 고른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다. 특히나 선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알고 친하냐에 따라서 줄 수 있는 선물이 더 디테일해진다. 예를 들어 요즘 눈이 침침해졌다고 말하는 친구에게는 눈 마사지기를 주고,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된 친구에게는 무드등을 보낸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연락은 했지만 그 친구가 뭘 좋아하는지 알지 못할 경우에는 홍삼이나 비타민 같은 종류가 좋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을 때는 카페 쿠폰이나 치킨 선물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주는 선물을 받고 이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거 살 거야?”

“응, 이거면 적당할 듯한데. “

옆에 있던 친구가 자신도 뭘 선물할지 몰라 고르다가 내가 고른 것을 보고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오늘은 3년 만에 보는 고등학교 친구의 집들이이다. 엄청 친한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대학교 때도 학과가 달라 같은 학교지만 몇 번 스쳐 지나가며 인사만 했던 친구이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서 얼마 전에 연락이 왔다. 이사를 했다고, 집을 샀다는 연락이었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연락이었다. 사실 속으로는 ‘그게 뭐, 지금 자랑하려고 오랜만에 연락하는 거냐?’하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은 나의 참을성과 예의범절이라는 것을 무척 강하게 성장시켰고, 정작 입 밖에 나온 말은.

“와, 정말? 진짜 축하한다. 나는 아직 제대로 취업도 못했는데, 넌 벌써 집까지 샀네? 그런데 너 요즘 어찌 사냐? 그러고 보신 요즘 소식 한번 제대로 못 들은 것 같네.”

라는 말이었다. 적당한 능청과 약간의 솔직함은 관계를 원활하게 풀어준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된 나이였다.

“그치, 나도 무심했지. 사실 나 결혼했어, 그렇다고 결혼식을 올린 건 아니고. 그냥 이래저래 혼인신고해서 살고 있어. 그래서 이번에 결혼식 대신으로 간단하게 집들이나 하려고 연락했어.”

능청과 솔직함은 나뿐만 아니라 친구 역시 많이 늘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능청의 단점은 한번 약속을 하면 어기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뭔가 ‘응응, 그래 그래. 가야지 암.’이라고 말하면 꼭 가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자리 잡는다. 사실 안 가더라도 나중에야 이유를 되면 그만이지만, 습관이라는 게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지 않는다. 자꾸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압박감을 주어 결국 약속을 지키게 만든다. 이번에도 그랬다. 습관적으로 말한 ‘응 가야지 ‘가 조금씩 나를 조여왔다. 달력에 날짜를 표기하고, 매일매일 체크하면서 스스로를 압박하는 자신을 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급기야는 혼자 가기는 어색하여 같은 동기이지만 정작 그 친구와 친하지 않은 친구까지 설득해서 데려가는 길이다.

“그런데, 나 걔랑 그렇게 안 친한데. 이렇게 선물까지 사가야 할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거잖아. 이왕 가기로 한 거 제대로 친한 척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 술 사준다는 약속만 없었어도. 그냥 쌩까는 건데.”

“그래. 다음에 내가 거하게 쏠 테니 이번만 함께 가주라. 내가 생전에 이런 부탁한 적 있냐? 거기서 혼자 뻘쭘하게 있기 그렇단 말이야.”

“아니, 그럼 너도 안 가면 될 거 아냐? 너도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잖아.”

“그러면 되는데. 이미 간다고 말했는데, 또 갑자기 못 간다고 하기에 그렇잖아.”

“아니, 못 간다고 말하는 게 뭐가 어려워서? 갑자기 아프다. 일이 생겼다. 뭐 핑계될 거 많잖아.?”

친구는 못 가는 핑계될 게 많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이유를 되었지만, 정작 나라고 그걸 모를까. 사실 마음 깊은 저편에는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한 것이 컸던 것 같다.

소위 집을 산 그 친구는… 사실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집친구라고 말하련다. 집친구는 사실 조금 은근한 인싸의 느낌이었다. 뭔가 학교 다닐 때 엄청 나대거나 친구들 사이의 분위기 메이커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같이 어울리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언제나 그 집친구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나도 집친구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그 주위의 다른 인싸들과 친해지고 싶어 집친구의 주위를 많이 돌아다녔던 듯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이런저런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 완전히 소식이 끊긴 게 3년이다. 그동안 나는 연락처를 바꾸지 않았고, 그 집친구 역시 오랜만에 오래된 연락처로 연락을 했는데, 내가 연락이 되어서 신기한 듯 초대를 한 것 같았다.

술친구(집친구 집에 같이 가는 친구. 그냥 이름보다는 술친구라고 부르는 게 형평성에 맞는 듯해서 그렇게 칭하겠다. )와 나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집친구의 집 근처로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했는데, 우리 카페에 있다가 들어갈까? “

“뭐하러 그래 이왕 온 거, 빨리 들어가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술친구는 바로바로 들어가서 빨리 나오자며 나를 꼬셨다. 무슨 마라톤 경주도 아니고,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제한된 것 도 아닌데. 먼저 들어간다고 먼저 나온다는 법칙은 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쓸데없이 카페에서 시간과 돈을 쓰는 것도 싫고. 나 역시 집친구의 눈치를 보는 듯해서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집친구의 집은 생각보다 좋았다. 최근에 지은 아파트였는지 엘베부터 현관문까지 눈길이 가지 않는 게 없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의 집친구를 보는 듯했다.

‘띵동’

문이 열리고 집친구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대로였다. 아니 어쩌면 저렇게 안 늙고 그대로 자랐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집친구는 정말 찐친이 온 것 같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우리는 그런 집친구의 반응에 다소 어색해서 쭈뼛쭈뼛거리며 집친구의 집에 들어갔다.

약속 시간이 되고도 집친구의 집에 찾아오는 애들이 없었다. 그 많던 집친구 주변의 인싸들은 모두 없고, 그 주위를 맴돌던 나와 술친구만 집친구의 집들이에 온 것이다.

“다들, 바쁜가 봐. 연락이 없네.”

솔직히 집친구도 당황했는지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뻘쭘하게 만든 것은 집친구의 아내분 때문이었다. 아내분은 집친구의 친구들이 온다고 해서 정말 상이 부러질 정도로 굉장히 많은 음식을 준비했는데, 정말 한 점씩만 먹어도 배부를 양을 대령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온 사람은 나랑 술친구. 술친구 이 녀석도 내 부탁이 아니면 안 왔을 테니. 정말 사정사정해서라도 데려온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집들이는 생각보다 빨리 파했다. 뭐 친구들이 오지 않은 탓이 컸다. 최종적으로 집친구의 집들이에 온 애들은 나랑 술친구를 포함해 4명 정도이다. 물론 그 4명 모두 친하지 않은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시절 집친구의 근처에 있던 인싸들을 보려고 온 나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집에 들어간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나왔다. 물론 준비한 돈고양이 선물은 주고 왔다. 새로 들어간 집 돈이 많이 들어오라는 뜻으로 선물해갔는데. 아마 돈보다는 사람이 조금 더 많이 들어오게 하는 선물을 들고 가야 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집친구는 연신 ‘친구들이 다들 바쁜가 보네. 연락도 없는 걸 보니.’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가면서 술친구가 고마웠다. 그래도 이 녀석은 내가 집들이한다고 하면 우리 집 냉장고를 텅 비게 만들 것은 확실하니까.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날따라 어둠이 내린 골목이 조금 더 온도차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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