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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Oct 09. 2023

동물들이 갇혀야 하는 이유

전시 '동물 없는 동물원'을 다녀와서

인사동을 거닐다 보면 여러 전시 갤러리가 있다. 그중에서 KOTE라는 곳에서 열렸던 동물 없는 동물원을 구경하고 왔다. 사실 '동물 없는 동물원' 전시는 뉴스레터 '카탈로그'에 한번 소개된 적이 있다. 


소개된 전시를 보고 나서, 흥미가 동해 주위 사람들을 모으고 같이 갔던 전시다. 그리고 해당 전시는 10월 8일. 어제일자로 마무리가 되었다. 마무리가 되면서 조금이나마 감상기를 정리하고자 컴퓨터를 켰다. 






작지만 단단한 전시

해당 전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작지만 단단하다고 할 수 있다. 전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전시에서는 동물원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지만, 동물은 일절 없는 전시다. 하지만 대체제라고 말해야 할까? 동물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여러 조형물들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 


모두 기타 재료들로 만든 그림이고 조각이지만, 멀리서 보면 흡사 실제 동물들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동물의 퀄리티를 살렸고,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예술가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전시의 총 전시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는 30여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체험적 공간과 여러 메시지적 전달성 또한 좋았다.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은  본인의 다른 블로그를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동물의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전시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전시가 던지는 메시지였다. 사실 이전부터 동물원이 주는 폐해성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부분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때마침 동물 없는 동물원이라는 테마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행동하지 않는 부끄러움'을 잘 건드리는 제목이었다. 


앞서 테마별 정리가 되어 있는 내 블로그를 봤다면 이번 전시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사람마다 느끼는 점이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전시가 주는 목적이 공동성이 아닐까 한다. 동물과 우리는 똑같은 포유류라는 종류에 묶여 있지만, 전혀 서로를 위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아니, 가진 자가 부족한 자들에게 베푸는 배려가 없다는 쪽이 더 맞다.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이 그렇지 못한 동물들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이는 동물원이라는 구조가 가지는 목적성에서도 드러난다. 


동물원은 본디 제국주의 때 나타난 현상으로 알고 있다. 강대국이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나서 빼앗은 물건, 동물 등을 전시하는 하나의 장이다. 한때는 흑인들이 동물원에 가두어져서 전시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그만큼 동물원이라는 속성 자체는 있는 자의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장치이다. 


하지만, 강자우선주의인 서양에서도 약자에 대한 배려를 나타내는 말들이 있다. 바로 노블레스오블리주이다. 권력을 가진 층에서 약자를 지켜주고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행동양식인데, 이제는 이를 동물에게까지 확장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같이 지구를 살아가는 공동의 주민으로서 말이다. 



동물이 곧 지구, 행성을 이룬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생각하건대, 코알라를 행성에 비유한 저 그림아 나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 하며, 그 주위에 둘러싸고 있는 행성띠 역시 뭔가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거기서 눈을 감고 있는 코알라의 모습은 그들(동물)이 참고 있고 우리를 가만히 기다려주고 있다는 인상까지 든다. 


이 파트에서 나타난 그림에서 느끼는 바로는 동물은 곧 하나의 행상이고, 자연이다라는 말을 하는 듯하다. 동물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죽어갈수록 각각의 행성이 파괴도고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곧 지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이 점이 내가 이 전시에서 느낀 가장 큰 메시지였다.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를 아는 것

이 전시에서도 마지막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아예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사라지는 동물들의 흔적들이다. 

동물들이 어떻게 사용되어지고 있고, 상처받아가고 있으며, 결국에는 사라져 가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특히 표현이 좋았다고 생각 한 부분은 위에서 왼쪽 사진이다. 


왼쪽 사진의 경우 사라져 간 동물들이라고 하여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모시천 같은 곳에다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런데 모시천이라는 게 빛이 들어오면 투명하게 보여서 그 너머의 장면들이 보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까이서 보면 오히려 상들이 흐릿하게 보이는 속성도 있어 오히려 동물들을 보기 위해 다가가면 오히려 안 보이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를 통해 사라져 간 동물들이 조금씩 흐릿해지고, 이제 그들을 지키고 보기 위해 다가가면 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했다. 그 내용을 이어받은 것이 오른쪽 그림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빼앗은 자연에서 동물들이 관찰되지만 이후에는 그들의 살고 있는 장소가 다 빼앗기고 아무것도 없어져 버린다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전시는 이런 상황에서 동물원의 새로운 발전사항도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동물원을 착취의 전시가 아닌 보호의 울타리로 만드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 제시라고 읽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그들이 멸종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모색하는 게 그다음의 스텝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가 바라볼 동물원에서는 진짜로 동물이 없는, 기계만이 동물을 대체한 동물원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동물 없는 동물원이라는 전시는 끝났지만, 그들이 남기는 메시지는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우리가 동물들을 지키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준 전시였다. 앞으로 이런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전시가 조금 더 많아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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