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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숭이같은비버 Jul 27. 2024

4-2. [외노자 회고록] 런던에서 첫 직장생활

런던에서 최악의 시작

코로나 락다운 기간으로 재택으로 월요일 근무를 시작했다. 시작 전 주에 팀원들에게 연락해서 내가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나 알아야 할 것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없다고 했다. 나는 아침에 노트북을 피고 연락을 기다렸다. 11시쯤이 돼서야 테크팀에서 연락이 왔고 나를 담당하던 HR은 휴가 중이라고 했다. 보스한테도 연락이 와서 내 컴퓨터 셋업을 테크팀이 도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테크팀은 컴퓨터 셋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화요일부터는 매일 아침 회의를 했지만 다음날이 돼서도 컴퓨터 셋업이 되지 않았고 나는 회사 컴퓨터로 그 어떤 업무로 할 수가 없었다. 팀즈 콜로 팀원들이 돌아가며 업무에 대해 설명해 줬다. 하지만 나는 관련 파일을 실행할 수가 없었고 제대로 된 업무 설명 파일 없이 말로 파일을 휙휙 넘기며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따라가기가 조금 벅찼다. 너무 불친절하다고 느꼈고 한 번은 팀원이 휘리릭 설명하고 이해되냐고 물어보다가 혼자 웃었다. 너무 답답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컴퓨터 셋업은 되지 않았다. 금요일 5시쯤까지 원격으로 셋업을 돕던 테크팀 직원은 퇴근시간이 되자 나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셋업을 멈추고 사라졌다. 황당했다.


오퍼를 받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과정이 비상식적이고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화가 났다. 그래도 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내 개인 컴퓨터로 업무를 시작했고 과거 몇 시간이 걸리던 업무를 5분 내로 단축시키는 자동화 작업을 했다. 보스가 회사 업무를 개인컴퓨터에서 했다는 사실에 조금 언짢아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역으로 아직까지 컴퓨터는 안되고 테크팀은 설치하다 말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데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그 다음 주까지도 셋업이 안 됐고 연락도 잘 안 됐다. 그래서 나중에는 매번 이메일로 연락할 때 cc로 내 보스와 테크팀 보스를 첨부했다. 그렇게 입사한 지 한 달이 지나 모든 것이 설치됐다. 테크팀 헤드는 나에게 사과를 했다. HR은 여전히 연락이 잘 안 됐고, 아프다는 영국 상사는 여전히 없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코로나 기간에 런던까지 와서 잘해보고 싶었는데 이게 뭐지? 내 상황이 너무 창피했고 누구에게도 공유하기가 싫었다. 마음에 안 들면 인턴이라 생각하고 그만둔다는 마음가짐은 막상 오니 이 결정을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둔갑했다. 인생의 대부분의 선택은 그 선택의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뀐다. 내가 여러 평행 우주를 미리 살아보고 최고의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선택 이후에 필연적으로 노력이 수반돼야 그 선택을 합리화,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컴퓨터 셋업이 완료된 후, 팀의 1년 넘게 방치되던 주요 파이프라인 중 하나를 일주일 만에 완성시켜 발표했다. 보스는 고마워하면서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했다. 나는 내가 열심히 했으면 더 빨리했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뭣도 아닌 일이었다. 이때부터 팀원들은 나에게 협조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코로나 기간에 새로운 사람이 와서 귀찮게 업무 설명을 해야 하는 등 나를 짐으로 취급했다. 사실 딱히 감정적으로 생각할 건 없었다. 입사 후 3개월 만에 시니어레벨인 팀원이 전화로 팀이 발전하고 있지 않고 자기 연봉이 작년에 동결되었다고 말했다. 이미 팀에 대한 마음이 떴는데 새로운 사람이 왔다고 적극적으로 도와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솔직함에 고마웠지만 굳이 이 얘기를 신입사원에게 말해야 되나 싶었다.


생각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부정적인 상황에 사로잡혀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기회, 긍정적인 것까지 놓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다. 난 당시 살던 셰어하우스를 채광을 보고 선택했다. 하지만 간과하던 것이 있었다. 창문 너머로 기껏해야 2차선 도로였는데 낮에는 슈퍼카들이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내며 지나다녔다. 화장실을 3명이서 공유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욕조에는 머리카락들이 항상 널려있었다. 이것까지는 괜찮았다. 변기 안이 아니라 시트 위에도 역겨운 이물질들이 항상 있었다. 이걸 처음부터 말했어야 했는데 난 무조건 실수라 생각했고 굳이 말하면 상대가 너무 민망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면 이런 부분을 빼면 너무나도 정상적이고 나이스한 분이었다. 그렇게 난 그 집을 사는 내내 변기를 쓸 때 휴지와 알코올 스프레이를 가지고 들어갔다. 내 방은 옆집 마스터베드룸과 벽을 두고 나누어져 있었는데, 오후에는 어린아이들이 소리 지르면 뛰노는 소리가 들렸고, 새벽 1시만 되면 신생아가 있는지 귀를 찌르듯이 울기시작했다. 밤만 되면 내 처지가 화가 나서 구직사이트를 병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는데, 이게 아니더라도 너무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었다. 낮부터 밤까지 너무 시끄러워서 신경민감증이 걸릴 지경이었고 나는 점차 더 초췌해져 갔다. 이 모든 것이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됐다.


하나를 추가하자면 내가 살던 동네는 이민자가 많은 동네로 단순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수치만 보면 치안이 안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위협을 느낀다든지 밤에 돌아다니기 무섭다든지 그런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가끔 새벽이 되면 누가 맥주병을 던지며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종종 다음날 아침 유리 파편과 차 유리창이 깨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이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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