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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 나에게 말하는 것들 - 최은창

불협화음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by 세잇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는 대부분 악보 없이 던져진 연주자와 같다. 공연 준비는 해야 할 텐데, 다음 마디에 어떤 코드가 올지, 옆 사람의 연주가 언제 끝날지 모른 채 그저 순간의 감각에 의존해 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소음처럼 느껴져 불안할 때, 베이시스트 최은창의 『재즈가 나에게 말하는 것들』을 만났다. 이 책은 음악 이론서가 아니다. 엉망진창인 삶의 소음 속에서 어떻게 나만의 리듬을 찾고 타인과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긴 호흡의 철학적 보고서다.




스누피, 멋진 하루, 그리고 재즈

사실 나에게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라는 편견 뒤에 숨은, 낯설지만 매혹적인 세계이지 않나 싶다. 돌이켜보니 재즈는 예고 없이 내 삶의 틈새에 스며들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나를 깨우던 애니메이션 '피너츠(Peanuts)'의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빈스 과랄디(Vince Guaraldi)라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 영화 '멋진 하루'에서 하정우와 전도연이 거닐던 서울과 경기의 낯선 공기를 세련되게 감싸주던 푸디토리움(김정범)의 음악. 그리고 우연히 카페에서 흘러나온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Bewitched'에 마음을 뺏겨 한동안 그 앨범만 반복해 듣던 날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재즈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음을 안다. 그리고 이제, 그 씨앗이 최은창이라는 베이시스트의 문장을 만나 비로소 어떤 의미의 싹을 틔우게 된다. 저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솔로 악기가 아닌, 묵묵히 저음으로 리듬을 지탱하는 베이시스트다. 그는 김윤아의 밴드 멤버로, 또 재즈 펑크 밴드 JSFA의 리더로 20년 넘게 무대를 지켜왔다. 그의 글은 베이스의 현처럼 굵고 단단하며, 낮은 곳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통찰을 담는다.



협상의 기술 (Art of Negotiation)

이 책은 재즈를 정의하는 수많은 말들 중 가장 인상적인 정의를 내린다. 바로 '협상의 기술'이다. 우리는 흔히 재즈를 자유로운 영혼들의 즉흥적인 향연이라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 이면에 숨겨진 치열한 '듣기'와 '타협'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쉬운 합의가 아니라 끈질긴 협상 뒤의 타협,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되 나의 나 됨은 잃지 않으려는 투쟁, 그 힘겨루기가 만들어내는 예기치 못한 결과가 art of negotiation, 협상의 기술이며 곧 재즈란 얘기다. 뒤늦게나마 나는 그 협상의 기술을 갈고닦아야 한다. 그것이 재즈의 본질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얼마나 자주 쉬운 합의를 택하는가. 또는 반대로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타인에게 휩쓸리는가. 재즈 연주자들은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서로의 소리를 듣는다. 드럼이 리듬을 쪼개면 피아노가 화답하고, 색소폰이 질주하면 베이스가 길을 터준다. 그 과정은 평화로운 대화일 때도 있지만, 서로의 자존심을 건 투쟁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투쟁의 끝은 파국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조화가 된다. 나의 '나 됨(Self-identity)'을 잃지 않으면서 타인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이 아닐까.



엉망진창인 상황이 만들어내는 예술

저자는 20년의 연주 생활 동안 겪었던 좌절과 소화불량 같았던 시간들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즉흥연주가 마치 초등학생에게 주어진 수능 수학 문제처럼 느껴졌던 막막함, 재능 없는 자신을 미워하는 데 썼던 20년의 세월. 그 고백은 화려한 무대 뒤편의 그림자를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 모두가 가진 불완전함을 위로한다.


"대가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자기 자신됨, 스스로의 경험에 절대로 등을 돌리지 않은 것이었다. 자기가 인생을 통해 겪은 것이 자신의 소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뛰어난 예술은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나왔다.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다. 그게 재즈가 태어난 지점이고 힙합이 나온 곳이다.” (로버트 글래스퍼)


'엉망진창인 상황'. 이 말이 주는 묘한 안도감이 있다. 우리의 삶도 자주 엉망진창이 된다. 계획은 틀어지고, 관계는 꼬이며, 그 위에선 나는 초라해진다. 하지만 재즈는 말한다. 바로 그 엉망진창인 상황이 당신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재료라고. 매끄럽게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진흙탕인 길을 걸어왔기에 낼 수 있는 고유한 소리가 있다고. 실수(Miss tone)조차 다음 음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의도된 불협화음처럼 들릴 수 있는 재즈처럼, 우리 인생의 실수들도 결국 나라는 사람을 완성해 가는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듣는 이가 완성하는 세계

저자는 연주자이지만, 책의 많은 부분에서 '듣는 행위'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음악은 연주자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이 완성되는 곳은 청자의 마음속이다.


듣는 이가 추상적인 이야기에 자신의 감정과 이해를 덧입혀 완성해 가는 것은 무척이나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습니다. 가사가 없을 때, 혹은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가사로 가득 차 있을 때 듣는 이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됩니다. 정작 연주자는 오직 악기 소리로만 이야기할 뿐인데, 듣는 이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잘 아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도 됩니다.


가사가 없는 연주곡을 들으며 펑펑 울어본 적이 있는가. 혹은 낯선 멜로디에서 오래된 기억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그것은 음악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청자인 '나'의 경험과 감정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도 이와 같다. 저자의 텍스트는 악보와 같고, 그 행간에 나의 삶을 투영하여 해석하는 것은 나만의 즉흥연주다. 저자가 말하는 '개인적인 기대를 투영해서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태도를 덜어내려는 노력'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4분 음표로 걷는 삶

재즈 베이시스트는 주로 4분 음표를 연주한다. '둥, 둥, 둥, 둥'. 화려하지 않고, 멜로디처럼 도드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4분 음표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때(Walking Bass), 다른 연주자들은 그 위에서 마음껏 춤을 춘다.


재즈가 대중음악의 중심에서 점차 밀려난 지 벌써 몇십 년이 지났다. 훌륭한 4분 음표를 가진 베이스 연주자라면 모두에게 환영받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가치를 감상해 낼 사람들이 많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화려하던 시절을 흐릿하게 재현하는 중일까? ‘여기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어, 어쩌면 지금 너희들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하고 중얼거려 본다.


이 시대는 자극적이고 빠르며, 시각적인 것에 열광한다. 묵묵히 리듬을 지키는 4분 음표 같은 삶은 주목받지 못하겠지. 그러나 저자는 믿는다. 시대와 불화할지라도, 이 음악 안에,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행위 안에 커다란 가치가 있다고.


이 책을 덮으며 나의 일상을 생각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사소한 배려들. 어쩌면 나 역시 인생이라는 밴드에서 4분 음표를 연주하고 있는 베이시스트가 아닐까. 화려한 솔로 연주는 아닐지라도, 내가 묵묵히 짚어가는 이 리듬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고, 나의 가정을, 나의 관계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삶이 자꾸만 엇박자로 느껴질 때

사람들 사이의 소음이 견디기 힘들 때

이 책이 전하는 재즈의 지혜를 떠올리고 싶다.


불협화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

엉망진창인 상황을 내 고유한 소리로 만들 것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되 나만의 리듬을 잃지 말 것


재즈는

그리고 삶은

결국 계속해서 이어지는 연주(Play)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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