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것
누군가 내게 '잘 산다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내 막막해졌다. 잘 살고 싶다고 늘 되뇌건만 막상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어서. 문득 '힘들지 않게'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닐까, 근데 나는 여태껏 '왜 힘들게' 사는 걸까. 생각은 담을 넘고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 복잡한 세상에 모두들 힘들게 살고 있을 텐데, 그렇게 힘들게 사는 건 '원하는 걸 갖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원하는 걸 갖기 위해 우리는 직장에서 인정받으려 하고, 수억에서 수십억 쯤 되는 집을 사려 발버둥 치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그리운 밤을 지새우고, 고시며 원하는 대학이며 삶을 보장한다는 자격증이나 바늘구멍처럼 좁은 여러 전형을 뚫어내기 위해 애쓰고, 주식이며 비트코인에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수많은 건강보조제와 피부과를 찾으며 나이 들지 않으려 하고, 여행을 가고 명품을 감기 위해 고된 아르바이트를 마다하지 않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허리띠 졸라매며 뒷바라지하고, 갖지 못함에 부모를 원망하거나 내 나라에 손가락질하며 나에게 부족한 무언가만 탓하며 살고 있진 않은지.
원하는 걸 갖게 되면 힘들지 않을까?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아왔으나, 그다음은 (모두가 알다시피) 또 다른 걸 갖기 위해 힘들어지던데. 그렇다고 갖기 위한 마음을 비우면 잘 살 수 있을까? 현학이, 종교가, 자연이, 우주가 가진 의미를 받아들이고 지향점대로 살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지진 않던데. 정말 비약일지 모르지만, 그건 정신승리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 문득 마주한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이라는 에세이. MBC 라디오국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장수연 PD의 문장들이 내게 작은 길을 열어주었는데, '매일매일이 쌓여야 나를 만들고, 매일 하기에 힘들고 지겹고 정들며 매일 이어지기에 들키지만, 그래도 매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다행이다'라고.
그래, 지금은 잘 모르겠으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작지만 소중한 내가 원하는 것들로 쌓다 보면 매일의 나는 원하는 것을 얻고 사는 게 아닐까. 그게 결국, 잘 사는 게 되지 않을까.
잘 모르겠어서, 일단은 오늘 하루치만이라도, 하루치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아봐야지.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좋아하는 소설을 읽을 테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도록 관계자들과 목표를 정의할 거고, 맛있게 점심을 먹고, 춥지만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알고리즘이 골라준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미세먼지가 걷힌 빌딩 사이를 거닐 테고, 때론 궁금했던 세미나를 듣고, 퇴근해서 온갖 집안일을 해치우고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다 잠드는 게 전부 아닐까. 그렇게 힘들고 지겹지만 소소한 기회들이, 내가 원해서 만든 일상이 쌓여 잘 살고 있는 나를 만드리라 오늘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