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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하승민, 영화 위키드

다름이 외롭지 않길

by 세잇

25년 3월의 끝자락. 여기저기 개나리며 목련은 움트는데, 차창 밖엔 눈이 내린다. 유난스러운 날씨 덕에 시린 손을 주머니에 끼우고 마트에 들어서려는데 주변이 소란스럽다. 뭘 잘못한 건지 누구 잘못인지 모르겠으나, 차 안의 손님에게 어눌한 말투를 건네는 주차 도우미의 낯빛이 어둡다. 이윽고 창문을 내린 손님 입에서 욕이 샌다. 큰 목소리가 들리기에 무슨 상황인고 살펴보니, 오른쪽으로 주차하려던 손님이 왼쪽으로 가라는 주차 도우미 덕분에 주차장에 들어섰다가 대기하는 차들로 인해 앞이 꽉 막혔나 보다. 그렇다고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를 일인가. 왜소한 체구에 몸도 불편하신지, 대꾸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온갖 욕을 다 받아내는 직원분을 보려니 마음이 멍해진다.


보고 있자니 하승민의 소설 『멜라닌』에서 한국인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이와 뮤지컬/영화 《위키드》의 '엘파바'가 떠오른다. 재일은 피부색이 파랗고 엘파바는 초록색이다. 유독 눈에 띄는 외모로 세상을 마주한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일지. 어린 시절부터 특이한 피부색으로 인해 두 사람은 계급의 가장 낮은 단계에 놓인 건 아닐는지. 다수에 속해 있음이 정상성을 정의하는 세상에서, 파랗고 초록인 피부는 과연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 걸까.


이 피부색은 나를 계급의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려보낸다. 다수에 속해 있음이 정상성을 정의하는 세상에서 내 피부는 확연한 비정상이었다.


차별은 그 시스템의 피해자만 인지할 수 있는 독가스 같은 거니까. 수십 번의 경험이 필요한 게 아니야. 몇 번, 어쩌면 딱 한 번의 끔찍한 경험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폐에 남기는 거야.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거지. 사람들은 그걸 몰라. 차별이 강물처럼 흘러야지만 차별인 줄 안단 말이야. 사실 차별은 곳곳에 놓인 지뢰밭 같은 거야. 딱 한 번의 폭발에도 우린 불구가 된다고.


내가 싸우고 있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지정할 수 있는 대상이나 인물이 아니었다. 나는 시스템과 싸워야 했다. 인식에 대항해야 했다. 그런 걸 어떻게 이기나. 주먹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존재를.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귀가 없는 존재를.


재일은 파랗다. 가부장적인 아빠의 차별과 주변인들의 냉대로 무너질 만도 하건만. 이어폰과 후드 안에 스스로를 감추고, 베트남 엄마의 온기에 마음을 기대어 단단하게 살아나간다. 공장 노동자인 아빠는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 이민을 준비하고, 거긴 사람도 많고 너처럼 파란애들 차별도 덜할 테니 미국 가서 살아보자고 아빠와 먼 길을 나선다. 영어가 서툰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이며,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에 파란 피부까지. 미국에서도 재일이 섞일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재일과 똑같이 파란 피부를 가진 클로이와 항상 손을 내밀어주는 셀마를 만나 서로 친구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다.


엘파바의 피부는 초록색이다. 뛰어난 마법능력에도 불구하고 피하거나 놀리는 친구들이 한가득. 심지어 엄마는 또 초록색 아이가 태어날까 봐 매일 우유꽃을 씹는데. 그로 인해 태어난 동생은 두 다리가 불편하다. 집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동생이 마법학교에 입학하고, 엘파바는 동생의 보호자 역할로 함께 학교에 갔다가 주변의 수군거림을 못 참고 마법을 쓰게 되고. 마침 교장 선생님 눈에 들어 학교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마법학교 생활이 평탄했을까. 인싸인 '글린다'와 룸메이트가 되어 온갖 고초를 겪지만 둘은 결국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파란색과 초록색. 바다와 숲, 하늘과 풀. 우리는 매일 그 색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살 텐데, 그 색이 피부에 얹힌 순간에는 왜 이상한 힘이 발휘되는 것인지. 우리는 언제부터 나와 '다름'을 경계하고 선을 긋고 있을까. 경계하고 선을 긋는 것이, 그 선 너머의 존재에게 '차별'이라는 무게추로 눌리워 지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다름을 받아들이며 살아왔을까. 누군가와의 다름 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저 않거나 내몰지는 않았을지.


세상 모든 사람의 피부가 파란색이었다면 재일은 평범했을까. 초록색이었다면 엘파바는 그저 뛰어난 마법을 가진 단 하나의 멋진 친구였을까.


소설과 영화의 말미에 두 주인공은, 이러한 차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아끼고 서로 보살피던 주변인들이 뜻하지 않게 곁을 떠나는 상실 속에서도 재일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며 , 엘파바는 사악한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서도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신념을 지키려 서쪽 하늘로 날아오른다.


다름이 더 이상 누군가의 외로움이 되지 않길 바란다.

다름으로 인해 생긴 그 외로움이, 누군가에겐 누구보다 높이 날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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