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구원할 것인가
그간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단순히 ‘존재해야 한다’, ‘폐지해야 한다’의 논쟁을 넘어 타인으로서의 인간이 누군가의 생명을 법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사회에 있을지에 대한 관점이랄까.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13 계단』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이야기는 전과자 준이치가 가석방 후 사회 복귀를 준비하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으며 시작된다. 퇴직을 앞둔 교도관인 난고는 준이치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는데, 조만간 처형될 사형수가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이고 그가 무죄임을 증명할 수 있게 수사를 도와주면 사례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 사형수는 기하라 료라는 인물로, 강도살인죄로 사형이 확정되어 수감 중인 인물이다. 그를 구원하기 위한 시간은 단 두 달. 이렇게 세 사람의 기묘한 접점이 시작된다.
형벌을 다룬 소설은 많지만, 『13 계단』은 조금 다르다. 작가는 사형제도의 존재 자체보다 그것이 돌아가는 방식, 절차, 시스템, 인간의 감정까지 냉철하게 들여다본다. 초점은 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이 판결이 과연 정당 했는가를 추적하는 과정에 맞춰져 있다. 준이치와 난고는 기하라의 사건과정을 복원하려 노력하면서, 수사의 허점과 증거의 약점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간다. 그러다 보면 점차 소설을 읽는 우리는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정말 기하라는 범인인가.
소설 속에서 ‘13 계단’이라는 상징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일본의 실제 사형 집행 구조에는 교수형 집행장까지 이어지는 13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형틀까지 오르는 그 계단은 물리적인 구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법과 제도, 양심과 죄책감, 복수와 용서가 얽혀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보인다. 이 계단은 단지 사형수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를 판결한 판사, 수사한 형사, 감시한 교도관, 그리고 집행 버튼을 누르는 이들 모두가 관여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영화 ‘재심’이었다. 영화는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이라는, 전북 익산에서 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숨진 실제 사건을 다루는데, 사건 직후 경찰은 당시 15세였던 현우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현우는 강압 수사를 받았고, ‘범행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는 점’을 참작하여 5년을 감형한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죄 없이 감옥살이한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만기 출소 후 1억이 넘는 사망보험금으로 소송당하고, 이를 재심하는 과정에서 진범이 밝혀져 3년이 더 지난 2016년에야 무죄를 선고받는다.
만약 현우가 사형을 선고받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법은, 과연 누구를 구제할 수 있었을까. 일본의 법 제도 아래 쓰였지만 『13 계단』은 이런 현실을 은유하면서도 매우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일본 역시 수많은 무기수, 사형수들이 기억이나 정황으로만 죄를 뒤집어쓴 채 갇혀 있다. 소설 속의 기하라는 실제로 그런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모른 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느냐의 물음에 있다.
소설은 단순히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이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어느 입장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지를 보여준다. 준이치는 과거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고 그 죗값을 치렀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난고 역시 과거에 사형 집행자의 역할을 했던 것을 계기로 죄책감을 지고 살아간다. 그들은 둘 다 ‘법의 심판’을 받았거나 그 체계에 몸담았던 사람들이지만, 결국 그들 자신이 느끼는 죄와 용서는 제도 바깥에 있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묻는다. ’죄는 법으로만 다스려질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정말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은 소설의 말미로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진다. 사형이라는 결정적 형벌은 법적으로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과 갈등, 회한과 후회는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특히 난고와 준이치에 의해 기하라 사건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날 때, 우리는 ‘판단하는 자’의 위치에서 벗어나게 된다.
『13 계단』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강한 처벌이 곧 정의라는 단편적인 사고로는 복잡한 인간의 죄를 다룰 수 없음을 말한다. 정의는 때로 처벌보다 더 어려운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건 바로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참회하게 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너무 이상적인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은 그렇게 이상적인 믿음을 현실 속에서 질문한다.
결국 이 소설은 촘촘하게 쓰인 한 편의 미스터리이지만, 우리 자신을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누군가의 실수를 되돌릴 수 있는 용기를 가졌는가. 그리고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법이 완전하지 않은 인간을 처벌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