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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감각 - 조수용

변치 않는 기준, 본질

by 세잇

나이가 들수록 저마다 살면서 기념할 꺼리들이나 잊지 않고 싶은 마법 같은 순간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생일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처음 마주하게 된 순간이나 새로운 시작, 생명의 탄생, 감동으로 벅차올랐거나 변화의 기로에 놓였던 순간들 말이죠. 누군가는 월급날을 기다리기도 할 테고요 :)


저도 제 나름에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는 순간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5월 14일이 그렇습니다.(벌써 어제가 되었네요.) 누군가에겐 로즈데이이겠으나, 저겐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밥벌이의 수단으로써, 나를 찾는 과정으로서, 내가 속한 곳에서 무언가로 기여하고 의미를 찾아온 ‘일’이라는 걸 시작한 날입니다. 열여덟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으니 기념할 만한 꺼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하진 않지만 매년 이때가 되면 ‘그래, 그동안 잘했지’, ‘한 해 동안 이러이러했지만 올해는 더 나을 거야 ‘, ’또 얼마나 가슴 뛰는 새로운 일거리들이 기다리겠어 ‘ 하는 심정으로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자는 생각에 혼자 그럴 듯~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점심 한 끼를 찾아 제게 주곤 합니다.


별건 아닙니다. 네 뭐,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야죠 :)


돌아보니 그동안의 일에 있어 수많은 부침과 변곡점의 순간이 있을 때마다 깨우침을 주었던 게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프리 워커스』- 모빌스 그룹, 『일하는 사람의 생각』- 박웅현, 『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일을 잘한다는 것』- 야마구치 슈, 『언바운드』- 조용민, 『일의 격』- 신수정, 『Start with WHY』- 사이먼 시넥 같은, 일이라는 이 요망한 녀석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 해야 할지에 대한 책들을 적절한 시점에 만나 다시금 뒤돌아보고 나아가게 해 준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우연히 『일의 감각』이라는 책을 접하고 배운 것이 많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조수용이라는 분의 글은 묘하게 말이 많지 않습니다. 짧고 단단한 문장들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데요. 화려하게 설득하려 들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꺼내 놓는데 그게 오히려 더 크게 와닿을 때가 있죠.


오너의 신뢰를 얻으려면 오너의 고민을 내가 대신해 주면 됩니다.

이 이야길 듣고 예전 같았더라면 '사내정치'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겠습니다. 수많은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들에, 오너도 리더도 사람인지라 이해해 주고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오너와 리더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조직이 원하는 바와 나아가려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고, 오너가 가진 고민의 지점이야말로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감각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예전엔 뭐든 다 해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성실이고 책임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려내는 감각이 오히려 더 중요한 거더군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 지금 당장 힘을 쏟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분해 내는 감각. 그건 결국 어디까지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한 태도 같기도 했습니다.


사용자는 디자인을 분석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느낍니다.

이 문장은 디자인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자주 떠오릅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묘하게 신뢰가 가는 사람.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왠지 마음이 끌리는 태도. 결국 그런 건 다 감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감각이란 게 결국 훈련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감각 있는 사람은 없다고, 좋아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 좋아하려는 노력, 그걸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 말이 좀 오래 남더군요.


'사소한 일도 잘하는지’를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잘하고 못하고 이전에, 그가 일에 대해 가지는 마음가짐을 보는 겁니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더 잘 해내려는 마음가짐 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만나는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결과물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내 취향을 깊게 파고, 타인에 대한 공감을 높이 쌓아 올린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 ‘감각’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감각은 ‘현명하게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이 책 덕분에 그간의 업무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아는 말, 누구나 하는 방식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건 없었을까. 그렇게, 다시 천천히 돌아보게 됩니다.


일도 감각도 결국은 ‘본질’이라 믿습니다. 전문적인 기술도, 일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끝까지 해내려 하는 능력도 업과 일에 있어 중요하겠으나, 그 모든 건 결국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한 도구라 믿습니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지. 그걸 잊지 않기 위해 감각을 훈련하고, 상식을 지키고, 태도를 다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5월 14일, 올해도 자신에게 점심 한 끼를 선물했습니다. 이유는 여전히 같고,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얼마나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건 앞으로의 일에도 여전히 중심이 있었으면 합니다. 정답이 아니라, 흔들려도 돌아올 수 있는 기준 같은 것 말이죠. 그게 바로 제가 지금 생각하는 ‘일의 감각’이고, 제가 믿고 싶은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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