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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나 Jan 31. 2021

2020 결산

몰아치는 일과 마감의 속도에 정신없는 한 해였다.

2019년 십자인대 수술을 하고 일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 막연한 불안감이 생겼다. 2019년 하반기에는 일하게 되어 기뻤고, 일정해진 일상의 패턴 덕에 날뛰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2020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반년 정도 일을 쉬고, 다시 일을 시작하니 자신감이 붙었다. 내 생각을 완벽에 가깝게 이해해주는 든든한 동료도 있었다. 신나게 가속했다.



1. 나는 동료 빨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어떤 회사에 가든 좋은 동료를 만나는 천운이 있다. 올해는 퍼포먼스 마케터, 제휴/행사 담당자, 디자이너, 개발자, 데이터 분석가, 서비스 기획자 등 다른 직무의 사람들과 유독 일을 많이 하게 됐다. 다른 직무의 일을 이해하며 나아가며 일하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고 그만큼 채워나갔다. 내가 부족했더라도 꽤 괜찮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던 건 다 함께 일해준 동료 덕이다.


1~2년 차 때는 일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이를테면, 콘텐츠 마케터로서 카피를 매끄럽게 쓰는 일, 매체별로 효율을 파악하는 일, 그 외에 전화받는 것, 메일 쓰는 것 등. 하지만 요즘은 기술을 모르는 것보다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때 더 무섭다. 일을 방향과 지향점을 섬세하게 조정해나가며 일을 하고 싶다.



나와 동료들은 서로 간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과정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의견을 주고 동기 부여해주는 동료와 리더가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을 마칠 수 있었다. 퇴사한 동료들 보구10파.


다른 직무를 가진 사람들과 많이 일하게 될수록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하는 방향에서 오차를 줄이려면 '그 일에서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핵심을 정확히 짚으며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많이 얻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요즘 고민하고 있다. 일을 할 때 서로를 훼손하고 소모하는 것은 불가피한데, 소모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얻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동료의 잠금화면 (세상에서 가장 큰 야생 고양이입니다.)



읽은 것

- 빌라선샤인에서 일터 밖 동료를 만나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었다. 빌라선샤인이 서비스 종료를 할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만나고 떠들었을 텐데 아쉽다.

- 글을 쓸 때의 자세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언제나 굳건했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었어요. 제 시가 좀 더 날카롭기를, 꼭 날카롭지는 않더라도 흐물흐물한 게 아니기를 바라면서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을 조금 더 편협하게, 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밀고 나가려고요. 인터파크 북DB 시인 임솔아 인터뷰 중

- 모든 일은 사람을 훼손시킨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흔히 둥글둥글해진다고 말하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었던 모서리가 깎여서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지는데, 무엇을 배우고 성장하는 면도 있는 반면에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채널예스 김혜진 인터뷰 중

- 우리는 확신이 없는 것을 용기가 없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했다> 중





2. (또) 이사를 했다.


신림동에 살 때 버스를 기다리면서 들리는 버스 브레이크 소리가 싫었다. 버스 브레이크가 언덕에서 내려오며 닳아가는 소리가 액운처럼 느껴졌다. 이사를 하자는 얘기는 석이(동생)가 먼저 꺼냈다.


석이가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저렴하게 나온 반전세 집 구할 수 있었다. 장승배기 역과 노량진 역 사이, 오래된 넓은 투룸이 썩 맘에 들었다. 서울에서 구한 7번째 집이었다. 이사가 너무 지긋지긋해서 주거 안정성과 경제적인 자유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이 집에서 나갈 때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 집을 구하기로 다짐했다.


이사 오기 전에 석이와 함께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 집 여러 곳을 뜯어고치고 욕조를 샌딩기로 갈아냈다. 결과물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정말 재미있었다.


셀프인테리어,, 30%의 성공,,


올해는 집에 오래 있어서 청소에 공을 들였는데(심지어 친구 집 청소도 해줌) 청소를 하면서 내가 몸을 움직이는 것을 굉장히 즐거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콘텐츠 마케터 일을 그만하게 되면, 현장 4 : 사무 6 정도의 일을 하고 싶다.



읽은 것 / 들은 것
- 오늘부터 돈독하게
- 나의 월급 독립 프로젝트
-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팟캐스트





3. 순간은 tlqkf!이었는데 이어 보면 이상하게 즐거웠다.


분명 tlqkf tlqkf거린 순간이 80%는 됐는데, 추억 보정의 힘은 엄청나다. 1년 간의 사진을 다시 봤더니 나 너무 즐겁게 살았잖아? 친구들이 끌고 가서 바쁜 와중에 여행도 많이 가고, 새로운 일도 많이 했다. 친구들, 애인과 갔던 모든 여행(마지막 강화도 여행은 빼고), 수림 언니와 함께 유기견센터 봉사 간 것, 우리 집에서 술 마신 순간들이 특히 즐거웠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못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도 징하게 놀았다. 매우 뿌듯하다.




+ 이외 잔상과 다짐들


애인과 7년이 되었다. 2019년에는 애인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늘 도사렸다. 두려움이 무서워서 못본척하고 싶어서 감정을 차단할 때도 있었다. 2020년에는 더 많이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의도대로 됐는지는 모르겠다. (잘 안 된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오래된 관계는 평온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순간의 감정과 파동을 잘 읽어나가며 더 오래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애인이 찍어준 사진


김혜진 작가의 글에 푹 빠졌고 인터뷰도 모조리 찾아봤다. (처음 빠진 책은 중앙역이다 제발 읽어조) 정세랑, 임솔아, 강화길 작가의 책도 거의 다 읽었다. 신작이 나오는 대로 읽기보다는 한 작가의 작품이 좋으면 그분의 글(말)을 탈탈 털어서 읽는 스타일이다. 올해도 좋은 여성 작가의 글을 더 많이 읽어야지!


N번방 사건, 성범죄자 박원순 사건 등을 보며 파렴치하고 뻔뻔한 성범죄와 무책임한 남성들의 행동에 분노했다. 힘 빠지는 일 투성이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들의 움직임이 있어 힘낼 수 있었다. 낙관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앞으로 힘과 체력을 키워 여성 의제에 더 많이 힘을 보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 찍히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특히 똘빈이 내 사진을 많이 찍어준다. 나 사진 속에서 아주 즐거워 보여 곰아워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몸, 정신이 다친 친구들이 많았다.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 안타까웠지만, 회복하는 과정을 응원하게 됐다. 회복 과정에서 생각을 만들고 부숴가며 다시 자아를 구성하는, 그런 꿋꿋함을 닮고 싶었다. 올해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말고 더 많이 즐거워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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