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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24. 2023

카카오톡도 네이트온처럼 로그오프가 필요합니다

초연결사회에서 늘상 접속 상태일 수만은 없으니까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내가 그랬다고?" 반문할 만한 일을 타인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경우. 얼마 전, 지인이 나에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얘기했었다.


"너 몇 년 전에 카톡 지웠을 때 있었잖아."

"응? 카톡..? 내가 카톡을 지웠어?"


  맞다. 있었다. 약 두 달간 카톡을 지웠던 적이. 




 그때는 취준생 때였다. 하반기 9-10월 쯤이었나, 두 달 정도 카톡 상태 메시지에 '카톡X 문자,DM O'라고 표시해두고는 카톡 세상에서 사라졌다. 탈퇴까지는 아니고 어플을 삭제했다. 인스타 스토리에다가는 카톡을 지웠으니 연락이 필요하면 DM 달라는 공지를 올렸다. 그래도 지인 대부분이 인스타를 했으니까. 다른 연락이 필요하다면 알아서 문자를 보내겠지 하는 마음에. 


 차라리 인스타를 지우지, 왜 카톡을 지우냐는 질문을 무수히 들었다. 아마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취준 중이니까 휴대폰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 습관처럼 들어가는 인스타를 없애는 게 효율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나. 카톡은 연락이 왔을 때 답장만 하면 되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왜 지우나. 그런데 내 의도는 하루의 효율을 높이고자 함은 아니었다. 몇 개의 카톡이 왔는지, 그 빨간색의 숫자 표시에 질렸다. 같은 의미로 내가 몇 개의 카톡을 읽고 답장해야하는지, 더는 그걸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본래 답장을 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안읽씹 혹은 읽씹을 아주 오래하다가 뒤늦게 정성스러운 답변을 보내는,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다. 아무리 그냥 지나가는 '고마워'라는 말 하나를 보낼지언정 나는 내가 정말 그 마음을 감사히 받고 고맙다고 전달할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그 카톡을 보낸다.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는 늘상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또 나의 생각을 한 번 거친 뒤 답문을 적어내리는 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이다. 때문에 코앞에 닥친 일들이 많으면 불가능하다. 당장 피곤해서 씻고 누워야할 것 같을 때도 불가능하다. 비로소 일상의 폭풍이 지나가고 가장 정돈되고 편안한 상태가 되어서야 생각한다. '아, 카톡 답장해야지.' 그리고는 누구누구에게 답장해야 하는지, 누구의 생일 연락을 빠뜨렸는지 점검한 후 한 명씩 답장을 보낸다. 나의 제일 여유로운 순간의 정점, 나는 나의 모든 에너지를 타인에게 쏟았다. 답장을 끝내기 전까지는 그 마음의 찜찜함을 늘상 안고 있었다.  


 한 번은 생일 축하한다는 카톡을 약 5일 만에 답장했다가 '야아, 안 죽었으면 됐다!'는 답변을 받은 적도 있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바로 보내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고, 진심 없이 말뿐인 메세지는 내가 용납이 안 됐으니까. 카카오톡을 지운 건, 이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였다. 나의 일상 저변에 누군가에게 답장을 아직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게 버거웠을 때. 더는 타인에게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을 때. 


 


 카카오톡에 비해 인스타는 되려 가벼웠다. 카카오톡은 이 사람이 거의 바로, 혹은 되는대로 바로 보고 답장 줄거라는 무언의 의무감이 깔린 한편, DM은 바로 답장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 않는다. 연락 뿐 아니라 스토리에 대한 일종의 댓글 반응도 포함되어 있어서 늦게 보면 그냥 늦게 봤나보다- 하고 넘어가기 더 쉬운 형태다. 또한 인스타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내용은 카톡으로 오는 것보다 훨씬 가벼운 게 많다. 거기서는 본격적이지 않아도 쉽게 즐기고 웃고 넘어가는 용도의 연락을 주고받는다. 타인과 단절되고 싶기보다 그들이 나를 찾는 목적에 '리액션' 할 수 있는 힘이 바닥난 내게 인스타는 아주 적절한 매체였다. 


 다만 단톡방도 보지 못하고, 당시 스터디원들에게도 양해를 구해야 했어서 이런 저런 이유들로 두 달 남짓한 나의 카톡 삭제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그렇지만 그때, 아주 편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연락하고 싶을 때만 하고 답장하고 싶을 때만 한다는 건 사실 아주 이기적인 거지만, 내게는 많은 부담이 삭제된 아주 편안한 시절이었다. 




 '라떼'는 네이트온을 썼다. 네이트온은 로그온오프 기능이 있어서 이 사람이 접속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준다. 내내 로그오프 되어있는 기간에 보낸 메시지를 왜 읽지 않았냐고 물어볼 순 없다. 이 사람도 여건이 됐으면 알아서 로그온을 했을 테니까. 카카오톡에도 이런 기능이 생겼으면 좋겠다. 초연결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접속 상태에 있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 정도는 주어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이다. 주말 중에 도착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을 화요일 오전인 지금까지 읽지 않은... 나를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여기서 더 늦어지면 정말 민망해질 것 같으니, 이제 기지개를 쭉 펴고 카카오톡에 로그온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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