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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짱 May 25. 2019

지붕 이지 못한 자의 슬픔과 자조

이 숙소 저 숙소 전전하던 나날들

der Obdachloser.
노숙인에 대한 공식적인 명칭으로, 학원 선생님에 의하면 PC한 표현이라고 한다. 그렇지 못한 표현의 Penner는 잔다는 것을 속되게 표현하는 동사 pennen에서 온 것이고 그 옆에 술병 하나 같이해야 한다고.
obdachlos라는 형용사에서 뻗어나온 말로서 이때 obdachlos는 '거처(Obdach) 없는(los)'을 의미한다.
이 표현이 재미있어서 한두 번 입에 올리고는 바로 머리에 들어온 것인데, Obdach의 Dach가 '지붕'을 뜻하기 때문.
실제로 '집이 없다(obdachlos sein)'와 동의어로서 소개되는 'kein Dach über dem Kopf haben'을 직역하면 '머리 위에 지붕을 갖고 있지 않다'가 된다.
Obdach는 고대 독일어에서 überdach의 의미를 갖던 ob(a)dah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überdach가 지붕 Dach에 영어에서의 over의 의미를 띠는 über가 붙은 표현이며 실제로도 물리적인 뚜껑으로서의 지붕을 뜻하는 것을 보면, 결국 집이 없는 사람은 비바람 피할 지붕 하나 머리에 이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느껴졌다.
반년이나 제대로 배웠나 싶은 독일어를 아는 체하며 파고드는 게 내가 생각해도 너무 민망하노니, 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몇 달간 우리는 행정적인 지붕을 갖지 못했으며, 노숙인들의 참담함을 감히 상상하지 못할진대 그럼에도 그 지붕이라는 추상명사의 상징성을 그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년에 나는 4번 이사했어요. 나는 더 이상 이사하지 않아요."
새해를 맞이하고 크리스마스에서 연말연시를 이은 3주간의 방학이 끝난 뒤 아이스브레이크 삼아 방학 기간 뭐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이사를 소재로 삼았다. 10월 31일, 편의상 11월 1일에 이 도시에 다다르고서 2018년의 남은 두 달간 우리는 28인치 캐리어 두 개와 이민가방 하나, 기내용 캐리어 하나, 노트북 포함해 뭔가가 가득 든 백팩 두 개로 이루어진 짐들을 네 번이나 쌌다가 풀었다 한 끝에 당분간의 마지막 이사를 치러냈던 것으로, 정말로 가장 우선순위의 근황이었다.
그동안 두 군데의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거쳐 한 번의 쯔비셴미테(Zwischenmiete, 원 임차인이 집을 비우는 기간 임대하는 단기 계약)를 거친 끝에, 우리가 주계약자가 될 곳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집은 구하고 가느냐 가서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들에 원래 가서 직접 보고 구해야 한다며 일단 가보련다고 대답할 때에, 정말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모르고 그리 굴었던 거였더랬다.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이 도시를 추천한 남편 친구의 호언장담과, 실체 없는 두려움을 뒤로 하고 막연히 커지던 근자감을 탓으로 삼아볼 수 있겠다.

애초에 우리는 한밤의 도시에 떨어지고서 다음날 체크인 때까지 잠시 짐을 부릴 호텔을 하나, 그리고 집을 구하러 돌아다닐 때의 베이스캠프가 될 2주짜리 에어비앤비를 하나 예약했었다.
구글 지도와 그에 흩뿌려진 숙박업소의 가격대별 분포도로 도시의 양상을 정말 대강 가늠하여 교통이 편할 법한 지역을 고르고, 특히 에어비앤비의 경우 가격을 고려하여 호스트와 함께 지내는 개인실로, 그러나 뭔가 한번쯤 수다 떨며 조언자가 돼주지 않을까 싶은 젊은 사람이 운영하는, 아무리 그래도 현관과 화장실은 따로 쓸 수 있는 곳으로 잡았다.
그렇게 벌어놓은 2주 안에 이사가 가능할까 싶었지만, 베를린도 아니고 적당히 매물이 나오겠지 싶었다. 우리의 애초의 1순위 도시였으나 근래 집값 상승률 최고치를 찍은 터라 포기한 그곳 말이다.
남편과 나 둘 다 결혼 전까지 줄곧 부모님 집에서 살았고 그나마 해외 경험이 있던 나조차 기숙사를 미리 신청하여 들어갔었기 때문에, 초면의 도시에서 고정된 거처를 갖지 못하는 데 대한 불안감이 실질적으로 와닿지를 않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소간 무모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약한 호텔이 중앙역에서 가까운 지점이 아니라 해당 체인의 보다 먼 다른 곳이어서 한참을 헤매면서도, 이런 해프닝도 있는 거겠지 싶었다.

여독이고 나발이고 저녁 나절 동안 비행기서 선잠을 잔 덕에 시차 적응에 실패하고 일찍 일어난 다음날 아침, 호텔 체크아웃부터 에어비앤비 체크인까지 뜨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데 에어비앤비 호스트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엄마가 아파서 엄마네 도시에 와 있고 오늘 못 돌아갈 것 같아. 내일 체크인해야 하는데 괜찮니?
어쩌겠는가. 우린 이미 13박 14일을 선결제했고 내일에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되는 것을.
지금 당장 짐을 꾸리지 않아도 된다는 조삼모사식 가벼운 마음으로 괜찮다 너희 엄마가 빨리 낫길 바란다 내일 보자, 라고 답했다.
혹시라도 오늘 체크인하지 못해서 예약을 취소하고 싶어지면 얼마든지 말해, 라는 말이 더불어 있었지만, 정말로 내일에라도 들어갈 수 있는 편이 급작스레 새로운 숙소를 찾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나은 것이었기 때문에 예의상 붙인 말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1박을 연장하게 된 숙소에는 온라인 써드파티 예약 사이트의 최저가를 찾아볼 새도 없이 직접 현금을 냈고, 그 에누리 없는 정가가 원래 예약했던 가격에 비해 비싸서 조금 아까웠지만, 현금을 싸들고 온 초기의 무딘 금전 감각에 따라 그 아까움은 정말 찰나에 불과했다. 이걸 쓰는 지금은 상당히 아깝지만, 무튼 그때는 손쉽게 하루를 연장하고 도시를 조금 돌아다녔다. 그 유명한 라인강에 가보자며 호기롭게 나서던 참에 뿌리는 한두 방울 비를 두고는 이런 걸로 우산 피는 거 아냐, 하고 가던 길 계속 가는데 그 짧은 새 점점 굵어지던 빗줄기가 라인강에 다다르자 폭우가 되어 우리의 발을 묶어놓는 이벤트가 있었지만, 뭐 그날은 그저 어쨌든 여정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주를 지낼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장소에 짐을 풀기까지 임시방편으로 머리를 기대는.


그리고 그 가벼운 마음이 역레발이기라도 했던 것이다.
다음날 체크아웃까지 마친 뒤 짐을 맡겨놓고 생필품 몇 가지를 사러 마트에 다녀오는데 에어비앤비 메시지가 또 왔다. 이번에는 물음표가 없었다.
내가 아무래도 엄마 곁에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아. 호스팅을 못하겠어. 전액 환불해줄게. 정말 미안해.
당장에 의탁할 곳이 사라져버린 마당에 미안이고 나발이고 패닉에 빠져버렸다. 내심 느껴지지만 무시하려 애썼던 불안감이 태연자약하게 현실로 나타나버리니, 그 낙차만큼의 부정적인 감정이 대번에 치솟았다. 그럼에도 막바로 그렇구나 너희 엄마가 빨리 낫길 바랄게 따위의 말로 비굴하게 대거리했던 것도 같다. 어쨌든 곤란함의 수렁에 빠져버린 나와 남편은 서로의 눈치만 보면서 서로만큼만 화내며 모종의 대책을 꾸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이번에 독일에 오고서 첫 카페 방문을 마수걸이하게 되었고, 남들 다 시키는 듯한 슈바어츠 커피 한 잔씩 시키고는 저마다 묵묵히 핸드폰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을 알고 있는 이 나라 어드멘가 살고 있는 지인들에게 선험자로서 용한 실마리를 점지해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징징대는 메시지를 보내댔고, 저마다 핸드폰에 설치해놓은 숙박업소 써드파티 앱들을 뒤적였다.
호스트의 사유로 취소된 에어비앤비의 여정을 어떻게든 보상받을 수 있을지 살펴보았더니 그 금액에서 조금 더해준 금액만을, 원래 예약했던 것과 동일한 기간동안 해당 지역에서 묵어야만 지원해준다고 했다. 지금 예약할 수 있도록 남아 있는 숙소의 금액대는 애초에 수주 전에 예약했던 숙소의 금액대와 맞을 리가 만무한 정도가 아니라 2주를 따지면 그 차액이 기십만 원이 훌쩍할 정도였다. 말인즉슨 남은 숙소는 죄다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남았다는 소리. 그렇다고 호텔 숙박을 늘리자니 우리의 예산에 맞추자면 묵을 수 있는, 도로변의 활짝 열 수 없는 창문은 물론이요 우리의 캐리어마저 활짝 열지 못하는 "디럭스룸"의 퀴퀴함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어 이미 목구멍까지 답답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냉장고가 없어 우유며 맥주도 보관해둘 수 없고 환기 제대로 못한 방에서 침대 시트에 부스러기를 흘려가며 포장해온 케밥이나 마트 도시락을 먹어야만 하는 그런 인공 조명 속 먼지 구데기는, 이곳에 올 때에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바였다.
결국 에어비앤비에서 보상을 포기하고 기간을 조정해가며 찾으니, 우리가 애초에 설정했던 두 주 사이에 이곳 메쎄에서 어떤 박람회라도 열려 투숙객들이 몰렸던 것인지 선택지가 확연히 넓어졌다. 우리는 개중에 가격이 제일 저렴하면서도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숙소를 고를 수 있었고, 실수로 가격을 너무 낮게 설정했었는지 청소비를 따로 받긴 했지만 그래도 가격이 낮아 고민의 여지조차 없었고, 그 정도로 괜찮은 상품인 만큼 당장에는 예약이 차 있어 이틀을 호텔에 더, 그러나 보다 교통편이 나은 곳에서 묵기로 했다. 그렇게 이곳에 오고서 첫 열흘의 거처가 새로이 정리되었고, 한숨 돌렸다는 생각도 잠시 나는 몸살에 걸리고야 말았다.

이민가방에 들어가 있던 전기장판을 꺼내 호텔 침대 시트 밑에 깔고 와병하였다. 와중에 남편이 밖에서 포장해온 도시락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이틀은 본격적인 관광객도 아니고 거주자도 아니어서 정말 흘려보내야만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음 달의 월급에 의지하여 마음껏 매식하고 돌아다니다가 숙소에 머리만 잠깐 붙이던 관광객으로서의 숙박과 근본적으로 다른 패턴을 취해야만 했다. 당분간의 수입이 없음을 되뇌며 한정한 가격대 안에서 나름 현지 식문화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식사를 경험해보아야 하는 것이었다.
팁까지 다하면 사오만 원은 금방인 현지 레스토랑에라도 갈라치면 미약한 죄책감마저 들곤 했다. 하지만 관광도 거주도 아닌 시간을 보낸 호텔방에서의 식사는 냉장고도 식기도 여의치 않아 쾌적과는 영 떨어진 일이고야 말았고, 원하는 온도나(빵조차도 뎁혀 먹는 것이 맛있는 법) 원하는 위치나(유럽이란 지정학적 위치가 소망케 한 볕 드는 창가에서의 식사를 치러내기에 간신히 3성급인 호텔방은 대강의 여유공간도 내주지 않았다) 원하는 자세(등받이에 기대는 것까지는 사치여도 적어도 음식이 내 무릎보다는 위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 모두를 박탈당하지 않으려면 더 이상 수입 들어올 곳 없는 통장에 대한 죄책감과 실질적인 과잉 지출(에다가 현지인 점원과 소통해야 하는 긴장감)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니.. 어떻게든 마음이 편하지 않은 선택지 두 가지를 갖고 규칙적인 일상의 이벤트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도 참담한 일이었고,
일주일은 아니었을지언정 그래도 4박이라는 기간 동안 주거가 뜻하던 대로 되지 않음으로써 휴식의 방식과 그 공간의 범위와 식사의 스타일이 모두 제한되는 것은 독일 생활의 시작을 꽤나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파리나 베를린이나 런던이나 여튼 누구나 여름휴가를 기꺼이 탕진할 정도의 볼 것 많은 대도시였다면 이 우울감이 조금은 달랐을까.

그즈음 나는 한국을 결국에는 떠나오고야 말았다는 일종의 성취감 내지는 쾌감과, 출국 직전까지 여유롭지 못했던 업무 덕에 일일이 연락지 못했던 이들에게 인스타 정방형 사진으로써 근황을 전해야 한다는 허세스런 의무감이 연동하여 자아낸 어떤 기묘한 달뜸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여기에 풀리지 않는 집 찾기와 아무것도 능동적으로 정할 수 없이 이사만을 기다리고 있는 일상의 음울함이 더해져 입국 직후의 열기는 조금 기형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역시 내 일이 잘 풀릴 리가 없지, 이것은 문학적이게도 결국 나의 도독 생활이 그 나름으로 힘겨울 것임을 암시하는 것일까... 뭐 이런 자조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에어비앤비 숙소에 들어가 처음으로 둘의 캐리어를 한번에 활짝 연 뒤에 올릴 첫 인스타 피드에 대해 자조적인 멘트를 미리부터 정해두지는 않았었을 테니까.
와중에 남편의 친구 덕에 하루이틀 뒤 들어갈 수 있는 두 달짜리 쯔비셴미테를 구하게 돼버린 까닭에 이미 완납한 에어비앤비와 겹치는 기간의 숙박비가 너무 아깝게 돼버리기까지, 자조적인 음울은 어떻게든 깊어져만 갔다.


말하자니 너무 혀가 길었지만 귀결은 너무나도 심플했다.
에어비앤비로 도착한 춘희 씨의 집이 생각 외로 너무나도 좋았던 것이다.
이후 이사를 다니며 이곳의 원룸들이 서울의 원룸들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얼마간의 쾌적함이 보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복수의 집에서 살았거나 복수의 집을 방문해본 지금 돌이켜봐도 퍽이나 좋았다. 하얗고 넓었으며 무엇보다 전자레인지와 냉장고가 있는데 식사할 수 있는 장소가 창가이거나 테라스였다. 스마트티비마저 있어서 우리는 이 집에 머물기 위해 원래 예약한 곳을 취소당한 것이라고 너스레 떨기까지 했다.
현지인과 결혼한 중국계 호스트 춘희 씨는 영어를 못하고 나는 독어를 못해서 간신히 사정을 설명한 끝에 체크아웃 일정을 당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지만(물론 게스트의 사유이므로 환불은 반액만 될 것이었다) 그 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원래 예약한 기간대로 지내기로 했다. 다소간의 돈 낭비였고, 심지어 당시 나 혼자 다른 도시에 2박짜리 여행을 다녀올 예정까지 있는 상태라 이 도시에 누일 몸뚱이는 남편분 하나인데 위에 씌울 지붕이 두 개나 되는 과분한 상황이기까지 했다.
뭐 어쨌든 호텔방에서 침대 위에서나 데굴대며 인공 조명 아래 도시락 까먹던 자조적인 뇌가 이를 비판적으로 고민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쪼그라들었던 생각이 펴져봐야 곧바로 올바르고 현명해질 수 있었을라고. 냉장고 생겼다고 우유며 소스며 사다가 좀 끼적거리다가도 이삿짐이 늘어날까 완전히 요리할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는 핑계로 맘 편히 나가서 매식하기도 했다. 물론 맘에 쏙 드는 넓은 집이니 이 정도로 그렇게까지 슬프진 않았고.

이후 쯔비셴미테에서 온전히 거주 등록까지 하고 살게 되는 지금의 집으로 옮겨오던 기간에라고 맘고생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좀 더 행정적인 문제와 연관돼 있어서 다음 기회에 쓰도록 한다. 사실 첫 주거 계획들이 무너지면서 위기감을 갖고 집을 찾은 덕에 쯔비셴미테도, 지금 사는 집도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기의 집에 남는 방이 있다거나 한국 다녀오는 동안 자신의 집에 지내도 된다는 등 감사한 말들을 건네준 다른 도시의 선험자들이 있어 징징댄 보람도 있었다..




호텔방에선 너무나도 할 게 없어서 야구를 봤다...
밝고 넓었던 춘희씨의 집. 캐리어 다 펴놔도 바닥에서 뒹굴 수 있을 듯했다. 첫째 사진 창 너머 테라스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볕 좋은 낮엔 야외서 식사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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