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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짱 Sep 06. 2019

유럽 살면 여행 다니기 좋겠다 그치

유럽 대륙 저비용 여행의 필요충분조건 플릭스버스 체험기

"가서 살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좋겠다."
결혼 소식과 함께 이주 계획을 알리고 다닐 때에 들은 말들 중 가장 큰 포션을 차지한 덕담. 지정학적으로, 그래 뭐 한국인들이 여행지로 선망하는 유럽 곳곳을 보다 적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방문할 수 있으니 맞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주체가 닝크족(노 인컴 노 키드..)인 우리라면 어떨까?

구주 대륙에 거주하는 건 두 번째인데 그 어느 때에도 나는 그다지 여유롭지 못했다. 출판계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인 아픈 가슴을 안고 도피했던 첫 체류 시절에는 지금 생각하면 스물네 살 시절 그 월급에서 도대체 모을 게 뭐였나 싶을 정도로 간신히 쥐어짜 모은 아주 쥐꼬리만 한 돈에 언젠가 갚겠다는 호언장담만 떵떵이며(결국 못 갚았다) 엄마에게 지원받은 얼마를 안고 가 아등바등 더 송금받지 않고 버티겠다며 정말 아끼고 아껴 여행을 다녔다. 프랑스에는 학생들을 위한 주택 보조금 제도(Allocation)가 있어서 나는 월세만 가져가고 생활비는 환급받는 주택 보조금만으로 해결해볼 요량이었지만, 쥐꼬리도 월급이라 일주일에 치맥 다섯 번 먹는다고 행복해하던(그렇다 이것은 스물네 살의 사치) 사람이 200유로쯤 되는 환급금에 차(교통비) 떼고 포(핸드폰 요금) 떼고 남는 조막만 한 돈으로 어찌 생활을 꾸렸겠는지. 집에 가면 대충 퍼먹을 수 있는 엄마 밥도 없고 이천 원이면 비굴하지 않게 배를 채울 수 있는 학생 식당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와중에 다시 언제 올지 모르니 이곳저곳 가보겠답시고 바지런히 다녔다. 저가항공을 타고 로마와 바르셀로나와 더블린에, 야간열차를 타고 뮌헨에, 기차를 타고 옹플뢰르와 그래도 궁금은 하다고 도서전이 열리는 프랑크푸르트에..

이번에 와서도 나름 여기저기 다니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 쥐꼬리를 헌납해가면서까지 지내보고 싶었던 '최애' 도시엔 벌써 네 번을 다녀왔고, 옆 나라 벨기에나 네덜란드는 물론, 독일 여러 도시들에도 발도장을 찍고 있다. 내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응, 정말로 여행 많이 다니고 좋아"가 아니다. 언어가 노동자로서 상품화될 정도에 미달하는 상황에서 월세며 학원비며 다달이 숭덩숭덩 사라지는 통장 잔고를 보면 앓는 소리만 나오면서도 구주에 산다는 장점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여행을 도출해내었나, 를 기록코자 하는 것이다.


유럽 내에서 여행을 간편하게 해주는 것은 첫째, 국경이 무색한 철로, 둘째, 저가항공의 존재가 되겠다. 첫째로 인해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유레일패스를 사서 몇 주건 유럽을 유람하고, 둘째 덕에 야간열차로 연결하기도 너무나 긴 여정, 예를 들어 이베리코 반도의 저 먼 끝이라거나 일반적인 영-프-이 내지는 영-프-(베네룩스)-독-스-이의 시계 방향 혹은 거꾸로 시계 반대 방향 동선에서 툭 떨어지는 동유럽 어딘가를 여정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된다. 자가 운전이라는 옵션도 존재하지만 구주 룸펜 뚜벅이들에게는 해당 불가. 참고로 한국 운전면허증은 6개월 이상 거주 시 독일 면허증으로 아묻따 교환이 가능하다고는 한다. 5만 원쯤 하는 수수료가 아무래도 애매하게 아까워 아직 바꾸진 않았지만.
기차는 사실상 3개월 전 티켓이 풀리자마자 예매하거나 패스를 사지 않는 이상 다른 선택지에 비해 가장 값이 많이 드는지라, 지속 가능한 여행을 기도해야 하는 거주자들에게는 그다지 좋지 못한 선택지가 된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멀미나 화장실 문제로부터도 자유롭고, 수하물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상식선에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술 운반이 자동으로 따라붙는 우리에겐 고맙게도 액체류 반입에 제한이 없기까지 상당히 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선뜻 선택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여러 도시를 한 번에 여행 다니기 위해 저먼레일패스나 인터레일패스 등을 사기는 하는데, 아직 이주의 일차목적을 달성치 못한 우리에겐 그럴 여유란 심적으로까지 부족했다. 그래서 기차를 이용하는 것은 ICE나 THALYS 같은 고속 노선이 아닌 우리나라 무궁화 정도에 빗댈 수 있는 가격 부담 적은 지역열차(Regionale Bahn, 통칭 레기오날)를 통해 가기에 시간 부담이 적은 근교 도시를 갈 때가 된다. 그래서 나는 뒤셀도르프를 포함하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Nordrhein-Westfahlen, NRW) 중서부를 관할하는 교통공사 VRR(Verkehrsverbund Rhein-Ruhr) 권역의 지하철들과 지역 열차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월 정기권인 영티켓플러스(Young Ticket Plus, 직업교육받는 청년들이나 인턴 곧 사회 초년생들을 위한 혜택으로 일부 공신력 있는 어학원에서도 발급해준다)를 갖고 VRR 권역의 도르트문트나 에센도 둘러보고 네덜란드 국경의 몇몇 도시들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

저가항공의 경우 생각보다 뒤셀도르프에서 큰 매력을 주지 못한다. 사실 뒤셀도르프는 공항과 중앙역 간의 거리가 급행 전철(S-Bahn)로 20분 버스로 30분 즉 굉장히 가까운 편에 터미널도 말만 세 개지 사실상 건물 하나라 접근성이 굉장히 뛰어난 편인데, 이 근방에선 주도라 해도 독일에선 일곱 번째 도시인지라 이곳을 거점으로 쓰는 메이저 항공사도 없고 비행 노선들이 수도급 대도시들에 비해서 적은 탓인지 비행기 티켓의 가격 경쟁력이 낮았다. 저가 항공사들 중에서도 최저가인 라이언에어가 뒤셀도르프에서 기찻값 따로 내고 1시간 반은 가야 하는 베체(Weeze) 공항에만 취항하는 탓인데, 파리에서 라이언에어를 타고 빨빨댔던 나로선 웬만한 편도 비행기가 10만 원은 거뜬한 상황이 영 마뜩찮은 것. 파리에서와 비교할 때 공항까지의 월 정기권으로 커버가 되는 덕에 어느 정도는 이득이지만, 그래도 가격이 원화로 여섯 자리를 채우고 보면 이게 저가인가 싶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에 비할 때라야 유럽 어느 도시 왕복이 십몇만 원 이십몇만 원이라면 눈의 흰자를 형형히 자랑할 정도겠으나 있던 돈 까먹고 있는 자에게는 아무래도 그랬다.


그래서 내가 가장 유용하게 쓰게 된 교통수단은 플릭스버스(Flixbus, 독일식 발음 '플릭스부스') 되시겠다.

해외여행에서 장거리를 버스로 이동했던 것은 29살 때 미국 피츠버그에서 뉴욕으로 가는 야간버스를 탔을 때가 처음이었다. 이때 이용한 야간버스는 메가버스(Megabus). 미국에서고 유럽에서고 땅덩이의 스케일이 커서인지 한국의 고속버스처럼 터미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운수회사들이 붙는 느낌이 아니라 전 대륙을 아우르는 소수의 회사가 주경과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한 장거리 노선들을 꾸려 운영했다. (2013년 독일에서 시작된 플릭스버스는 유럽 전역으로 어마무시 팽창하여 2016년에는 다른 경쟁사들뿐 아니라 메가버스의 유럽 노선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메가버스는 미주대륙 이외에 아직 영국에서는 운행 중이고 반대로 플릭스버스 또한 미국에 진출했다고..)
피츠버그에서 뉴욕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이지만 이틀짜리 일정이 오로지 야구 관람 때문이었다 보니 저녁 경기 끝나고 뉴욕으로 날아갈 시간이 촉박했고, 그렇다고 호텔 1박을 추가하고 오전에 넘어가자니 줄어드는 뉴욕 일정이나 하루치 숙박비나 다 아까워 비행기로의 이동이 영 마뜩찮은 상황이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야간버스라는 새로운 선택지. 당시로서 최근에 미국 여러 도시를 여행했던 친구에게 고견을 구하니 돌아오는 말. "허리가 녹기는 하는데 너 아직 20대니까 한번쯤 해볼 만함."(이 발언의 주인공은 나보다 한살 많고 디스크로 고생 중이(었)다) 비슷한 류로 그레이하운드버스가 있었고 왜 메가버스를 선택했는진 이제 와선 기억이 안 나지만, 친구의 말대로 메가버스는 정말 허리를 녹이는 선택이었다. 한국의 우등버스까진 아니라도 일반 좌석버스는 되기를 바랐던 의자는 시내버스 급이었으며, 뒤로 눕혀지지도 않아서 불편하게 앉아 엉덩이가 배기는 느낌을 참아가며 8시간을 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뉴욕에서 그 고생을 한 몸으로 캐리어를 나르다 허리가 삐끗한 바람에, 남은 여행은 사실상 허리 대고 앉을 곳을 찾아 다니는 여정이었을 정도였다.
그 메가버스의 유럽대륙 버전이랄 수 있는 플릭스버스. 장거리 버스에 대한 이러한 힘든 추억이 있는데도 플릭스버스를 일순위로 꼽으며 다니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성이다. 사실 처음에야 메가버스의 뼈 녹는 추억 때문에 선뜻 이를 선택할 마음을 못 먹었었다. 그런데 그 경제성이란 것이 어마무시하다. 독일에 오고서 제일 먼저 가게 된 여행지는 브뤼셀이었는데, 남편의 업계 친구(=맥덕)들이 벨기에 양조장들을 탐방하러 왔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순수령이 여전한 독일과 달리 다양한 재료들로 다양한 풍미의 맥주들을 뽑아내는 매력의 벨기에 맥주들 중 스트롱에일이 내 취향이고 브뤼셀도 10여년 전의 유럽 여행 당시 좋은 추억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합류코자 했다. 여행이 갑자기 정해진 차에 어떻게 갈지 고민하면서 일단 제일 익숙한 DB(도이치 반) 앱을 뒤지니, 왕복인지 편도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100에 훨씬 가까운 몇십 유로가 튀어나왔다. 그래, 유레일패스를 안 쓰면 원래 이런 값이었겠지. KTX 부산 왕복보다 더 비싸니 일단은 보류. 그 숫자와 함께 튀어나온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 다음으로 익숙한 저가항공을 찾아보자니, 직항도 없으려니와 경유를 해도 기차보다 더 오랜 시간이 드는데 기차나 진배없는 가격이 아닌가! 그래서 정 안되면 비싼 값이나마 기차를 선택해야지 하며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유학생 커뮤니티서 친숙해진 그 이름 플릭스버스를 검색하자니, 세상에.................. 편도 10유로?!
왕복 이십몇 유로. 지금보다 낮았던 당시 환율 셈하면 그러니까 3만 원. 서울 강서구 엄마 집에서 대전 한밭구장 왕복하는 가격으로 유럽연합의 수도에 다녀올 수 있다니! 끽해야 도경계를 넘는 그 값으로 국경을 넘는다니! 운행시간이 3시간여라고 쳐도 같은 한국 안의 너댓 시간 걸리는 부산이 편도로 4만 원은 하는데 이게 웬 일이람. 별 수 있나. 그렇게 3시간 참아보자는 마음으로 플릭스버스를 예약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플릭스버스 경험은 너무나도 좋았다. 3시간이라 굳이 그럴 것 없었는데도 첫 버스 여행이니 변수를 최소화하고자 좌석을 지정한 2층 맨 앞 자리는 경치도 좋았고, 버스 안에서 1일 150Mb나마 무료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었고, usb 충전기를 꽂아 충전도 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좌석의 질이 좋았다. 감히 한국의 우등버스 정도였달까. 3시간 가는 길 엉덩이도 배기지 않고 뒤로 젖히는 것이 뒷사람에게 민폐이지 않을 정도로 좌석 앞뒤 간격이 적당했으며 여타 서비스가 좋았다. 돌아오는 길은 당일치기를 기하느라 새벽 2시 반의 버스를 예약한 탓에, 좋지 않은 치안으로 인한 다소의 공포와 개방된 화장실 없는 탓의 요의를 적당히 버무려 덜덜 떨며 기다린 것과 하필 내가 무작위로 점유한 좌석의 등받이가 뒤로 기울여지 않는 불상사가 있었을 뿐, 그 불편함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선잠을 자느라 어쩐지도 몰랐다,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최상의 상태였는데도 내 척추뼈를 녹였던 메가버스와는 아주 차원이 다른 서비스였다는 것!

그때부터 나는 모든 여행에 대해 플릭스버스를 제1여행용 교통수단으로 책정하기 시작했다.
뒤이은 파리 여행은 플릭스버스의 참맛을 알기 전에 대충 예약한 탓에, 그리고 베를린 여행의 경우에는 수도와 주도를 잇는 노선이 아무래도 잦다 보니 한시간 짜리 비행기나 예닐곱 시간은 거뜬한 버스 가격이나 진배없던 탓에 비행기로 다녀왔으나, 그 이후로는 웬만해선 플릭스버스가 우선이었다. 엄마가 딸 살림 어찌 차렸나 시찰하러 왔을 때 암스테르담으로 눈 돌리게 하려고도 플릭스버스로, 남편과 오래간 펜팔 친구로 지내온 학생을 만나러 프랑크푸르트에 다녀오기 위해서도 플릭스버스로, 프랑스에 살고 있는 친구 부부와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 디종에 갈 때에도, 그리고 논문을 위한 답사겸 여행을 온 친구와 우리가 늘 최애도시로 꼽던 파리에서 만나기 위해서도, 대부분의 여정에서 플릭스버스를 탔다. 편도로 아무리 많아봐야 30유로나 됐을까 싶은 모든 비용을 따지면 플릭스버스는 늘 압승이었지만, 이 잦은 여행에서 매번 첫 여정 같지 않은 사소한 불편한 점들이 생겼다. 그 대단한 가격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내케는 하지만 결국에는 단점인 것.

첫째, 가격대가 낮다는 것은 가격으로 인한 허들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엄마가 여행겸 왔을 때 독일의 서쪽에 위치한 이곳에서 가까운 도시들 중 개중에 가장 유명한 여행지인 암스테르담에 가기 위해서 역시 플릭스버스를 예매하였다. 브뤼셀과 비슷하게 3시간 남짓한 여정이었고, 브뤼셀까지처럼 저렴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차보다는 현격히 저렴하여 왕복 50유로정도에 예매했던 것 같다. 이것이 메가버스의 암울한 추억을 잊게 해줄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브뤼셀 방문 다음의 첫 플릭스버스 여행이었기 때문에 나는 우등 버스 정도의 퀄리틴데 더 저렴하다며 엄마에게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리고 오고가는 여정 내내 우리는 소음에 시달렸다.
뭔고 하니, 젊음이 충만한 도시 암스테르담은 이곳 사람들에게 아주 기꺼운 주말 여행지인지라 술 취한 여행객, 단체 여행객, 그리고 술 취한 단체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체로 목청을 가무리지 못했고 왁자지껄했고 시끄러웠다. 그러니까 교통약자 연령대인 엄마에게 민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후에 암스테르담에 한번 더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결혼식에라도 참석하려는 듯한 중년 그룹이 있었고, 암스테르담 시내에서는 브라이덜샤워를 하는 듯한 그룹이 빈번히 보였다. 암스테르담이 그런 도시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저렴한 덕에 누구나 택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해서일 것이다. 그 누구나가 바로 나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노모를 모시고 가기엔 조금 민망한 처지였다.
하지만 기차라고 딱히 괜찮느냐면 독일 철도 중 가장 고가인 ICE를 타더라도 한 그룹과 자리가 맞붙으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래도 확률의 문제 아닐까.

둘째, 연착.
내가 아니라도 플릭스버스의 연착에 대해선 울분을 토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실 연착에 그리 큰 피해를 입지도 않았었다. 10분쯤 늦는다던 버스가 30분을 늦어 같이 버스 기다리던 엄마에게 미안해했던 적도 있었고 늦는다는 말도 없었는데 타러 간 정류장에 버스가 없고 그러고도 또 한참을 오지 않아서 같은 노선을 탈 승객들과 무언의 연대감을 조성했던 순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큰 피해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30분이었고 그게 늦어서 피해를 본 건 체류 시간이 조금 짧아진 정도 말고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실제로 이루어지는 수십 분의 연착은 꽤나 단점이 된다. 물론 비행기라고 연착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기차는 말해 무엇하리, 내가 10여년 전에 유럽여행을 할 때에 "독일은 시간 엄수로 유명하니 독일 기차 예약 사이트는 정확합니다"라던 유랑 카페에서의 조언들이 빛 바랠 정도로 독일인들에게 철도의 이미지가 연착 그 자체가 되었을 정도다.
도로를 타다 보니 교통 체증으로 인한 연착이 조금 있을 수야 있는데 주5일 다닌 학원 때문에 주로 주말을 노려 여행을 꾸렸던 럿치고 교통 체증을 그리 겪은 적은 없었다. 심지어 어느 토요일 오후에 파리로 접어들면서도 아주 잠깐 막히나 하고 말았을 정도이니. 오히려 플릭스버스의 스케줄이 널럴하게 꾸려진 것이었을까.

셋째, 모든 버스가 동일하지 않다, 곧 서비스가 균질하지 못하다.(!)
그래, 이것 때문에 내가 이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뭐 이게 별거라 싶겠지만, 두 달에 한 번꼴로 경험이 누적되다 보니 별거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10여년 전 첫 유럽 여행에서 파리를 최애 도시로 삼았을 때 이미 파리를 사랑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으니, 우리는 상대가 파리에 갈 때마다 부러워하고 축하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마침내 지난 7월 함께 파리를 여행할 기회가 왔다. 중세미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논문을 위한 답사를 핑계삼아 여행을 꾸린 것이었다. 이에 파리로부터 비행기로 1시간 기차로 4시간 거리에 사는 내가 합류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 아닌가.
그런데 독일어학원 집중 코스를 반 년을 다니고 유로화 한푼 벌어보지 못한 합법체류자에겐 그 한 시간짜리 비행기 네 시간짜리 기차가 또한 비용상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기차는 3개월 전에 예약한다면 편도 30유로였지만 이미 편도 거의 100유로에 달한 상황이었고, 비행기 또한 편도 70, 80유로는 되었다. 비행기를 탄다면 샤를드골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오를리버스가 12유로니 왕복 따지면 짐 추가 안 하는 이상 액체류 반입도 안 되는데 기차만큼 비싸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플릭스버스를 찾아보았다. 뒤셀도르프에서 파리는 편도로 8시간정도. 직행도 있고 한번 환승하는 코스도 있다. 왕복 50유로 안짝. 대안들의 편도에도 한참 미치지 않는 가격이다.
이번에도 또, 괜찮았던 야간 버스 경험이 있었다. 부르고뉴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 디종(Dijon)에 갔을 때였는데, 디종도 나름 주도고 뒤셀도르프도 주도지만 전주에서 안동 가는 버스도 없는데 이들은 심지어 서로 다른 나라 아니겠는가. 어떻게든 한 번은 환승을 해야 하는 여정이었던 차에, 마침 늦은 오후에 뒤셀도르프를 출발해 벨기에의 안트베르펜(Antwerpen)에서 두어 시간 대기하고 디종으로 자면서 갈 수 있는 노선이 있노라니 바로 이거다 싶었다. 안트베르펜이 마침 우리에게 언제 다시 한 번 가고 싶었던 곳이었던 참이었던 것.
안트베르펜에는 수많고 다양한 빈티지의 벨기에 맥주들이 저장된 엄청난 창고로 유명한 몇십 년 된 펍이 하나 있는데, 이전에 방문하려고 시도했을 때 예정되지 않았던 휴무일이었어서 실패했었던 것이다. 노부부가 운영하시는 곳이다 보니 페이스북페이지도 팬들이 운영하는지라 급작스런 휴무는 아날로그적으로 그러니까 가게 문에 안내문으로써 고지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이 여정이 딱 우리를 위한 거다 싶었다. 안트베르펜으로 가서, 쿨미네이터(Kulminator, 그 펍 이름)에서 벨기에 스트롱 에일을 즐기고, 함께 여행할 사람들과의 밤을 위해 생년 빈티지맥주를 구입해서, 피로와 취기를 이유 삼아 현대인 권장 수면 시간인 8시간을 맞춰 달리도록 예정된 야간버스 속에서 뻗어서 가면 딱이었던 것이다.
안트베르펜도 또 주도이긴 했지만 이 야간 노선에 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벨기에 북부의 안트베르펜에서 파리보다 스위스가 더 가까운 프랑스 중동부의 디종까지 쭉 세로질러 내려가는 노선인데, 위도상 지나갈 법도 한 브뤼셀이며 파리를 거치지 않다 보니 그랬던 듯싶었다. 이 비인기노선의 모든 승객들은 한 사람이 두 자리씩을 차지하고 앉아 등받이를 한껏 뒤로 젖히고는 창틀에 기대거나 손잡이에 기대거나 아예 두 자리에 걸쳐 옹송그린 몸을 누이거나 창문에 등을 받히고 통로로 발을 내뻗고 잤다. 승객보다 빈자리가 더 많은 것 같았고, 심지어 우리의 경우엔 통로 맞은편 자리들도 다 비어 있어서 발바닥을 맘껏 내보였던 것 같으니, 공간도 여유, 승객들의 마음도 여유, 몸의 피로도 여유였던 것이다. 새벽의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 덕분인지 예정보다 30분은 일찍 도착하여 '누워 쉼'의 시간이 조금 손해를 봤는데도, 와이너리 두 군데를 돌고 저녁을 함께 차려서 와인과 맥주를 곁들이면서 자정에 이를때까지 유별난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무박 2일이라 쳐도 될 여정이었는데도.
그래서 나는 똑같이 8시간 걸리는 파리에, 아무런 근심 없이 버스로 다녀오기로 결정하였다. 기왕 자린고비 된 김에 최저가를 노리면서 갈 때는 오후 12시에 출발하여 저녁 8시에 도착하는 주간 여정으로, 올 때는 밤 11시부터 달려 아침 7시에 내리는 야간 여정으로.
왕편인 주간 여정에 있어서 나는 시간대 때문에 안트베르펜-디종 정도의 여유로움을 기대했었다. 파리에 가는 중에 누가 한창 관광할 8시간을 버스에서 허비하고 싶겠어? 집에서도 학원도 아르바이트도 안 가는 날이면 몇 시간이고 휴대폰이나 책이나 노트북 부여잡고 뒹굴대는 일이 허다하니 낮잠 조금씩 자가면서 버티면 8시간 할 만하다 싶었다.
그런 내게 닥친 최초의 청천벽력은, 출발 시간보다 15분은 늦게 나타난 버스가 출발하면서 들려온 안내방송, "여러분 안타깝게도 화장실이 고장났습니다"..........
독일어로 한번 영어로 한번 나온 이 안냇말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서 파리 어쩌구저쩌구 한 것이 아무래도 파리까지 가야 합니다로 들려버리고야 말았다. 이 말 들은 시간 현재 도착 시간 -8시간... 그리고 불안함은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 따로 먹지도 않고 끼니나 대충 때우고 나온 내 몸속에서 요의를 피워내기에 충분하였다.
휴대폰의 자극들로 눈을 돌리려 했더니 맙소사, 심지어 이 차는 휴대폰 충전 기능도 망가진 상태였다... 버스에 따라 자리마다, 혹은 연석의 가운데 부분쯤에 usb포트나 하다못해 콘센트 구멍이 있어서 충전을 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 버스의 경우 앞뒤로 한 자리 걸러 한 자리씩, 그러니까 네 좌석에 한 개꼴로 usb포트가 있었고, 심지어 그게 작동하지를 않는 것이다... 화장실 고장 안내 멘트와 함께 나왔던 휴대폰 어쩌고저쩌고가 바로 이것이었다......
다행히 챙겨온 크레마가 있어서 시선의 피난처를 제공해주었고 그러면서 나는 정류장에 정차할 때마다 멀리 가지도 못했던 의식을 불러들였다. 이 노선은 네덜란드 마스트리트와 벨기에의 불어권 도시 서너 개를 거쳐 파리로 가는 것이었는데, 그 도시들은 이름을 들어본 듯하면서도 못 들어본 곳들일 만큼 작은 도시들이었고, 그런 만큼 플릭스버스 정류장이 뒤셀도르프나 파리에서처럼 좀 널따란 고속버스 전용 주차장 내지는 터미널이 아니라 그냥 길가, 그냥 공용 주차장 어디 구석 이런 정도였다. 그랬다는 것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혹시 근방에 화장실스러운 것이 보이지나 않을까 또는 어떤 동승자들이 기사에게 화장실을 물어보지 않을까 시각이며 청각에 온 신경을 다 쏟았음에도 소득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첨언하자면 많은 정류소를 들르는 만큼 이 노선을 다양한 방식으로들(6C2의 경우의 수랄까..) 활용하는 것이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들어찼으며, 그리 자주 정류장에 서다 보니 내리고 타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구간마다 달라지는 분위기에(처음에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이 많았다거나, 벨기에를 지나면서 프랑스어가 더 많이 들려오기 시작했다거나..)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하니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앞으로 여섯 시간, 다섯 시간이 남았는데 지금까지 괜찮았어도 과연 내 방광과 요도가 저녁시간까지 참을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운전 기사들에 대해 한 시간인지 두 시간마다 일정량의 휴식을 법으로 정하고 있는 EU 체제 내의 운송회사인 만큼, 여정을 반으로 쪼갠 4시간께에 도착한 벨기에의 샤를루아(Charleroi)에서 45분의 정차 시간이 있어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45분이라는 마치 대학교 한 시간짜리 강의 시간과도 같은 긴 시간이 당황스러워 기사아저씨한테 재차 확인해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다른 야간버스에서도 잠결에나마 어디선가 한참 섰던 기억이 났던 것도 같다. 샤를루아 기차역 뒤편의 공용주차장 옆 갓길에 정류장이 설치된 탓에 버스는 45분을 그 갓길에 멈춰서 있었고, 구면인 듯 초면인 동승자들과 함께 나래비로 역사내 화장실에서 해우를 하였다.
남은 시간은 배기는 엉덩이와의 싸움이었다. 입만 축일 정도로 물을 마신 덕에 파리에 도착해 친구와 만나 맥주 한잔 하고 숙소에 들어갈 때까지 요의가 다시 동하는 일은 없었지만, 샤를루아에서의 산책이라 치기도 민망한 잠시간의 발걸음을 제외하면 8시간 내내 계속하여 엉덩이를 한 의자에 붙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샤를루아에서부터는 내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서 몸 움직임이 부자유스럽기도 했다.
처음 플릭스버스를 탔을 때 의자가 한국의 우등버스만큼 좋다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휴대폰 충전도 화장실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이 차는 의자도 살짝 불편한 것 같았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내가 아무리 집에서 액정에건 종이에건 코 박고 뒹굴대는 것을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여덟 시간 동안 어디에서고 엉덩이를 떼지 않았던 적은 없었던 것이다.
파리서 뒤셀도르프로 돌아오는 야간버스에서는 차체와 무관한 불편함이 있었는데, 안트베르펜-디종과 달리 파리-뒤셀도르프라는, 심지어 뒤셀도르프를 지나 함부르크까지 이어진다는 노선의 특이점이 있었다. 유럽여행의 중심지 파리로부터, 독일 서북부 주요 도시들인 쾰른과 뒤셀도르프를 지나 커다란 항구와 함께 독일 해상 물류의 중심인 함부르크까지....... 그러니까, 완전 인기 노선이었다는 것이다. 차는 완벽히 만차였고, 그래서 옆으로 눕기는커녕 뒷자리 남자의 무릎에 닿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등받이도 맘놓고 젖히지 못했다. 결국 한두 시간 정도밖에 제대로 자지 못했고, 7시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기어가 낮에 갔어야만 했던 무료 회화 수업도 놓치고 비몽사몽의 혼곤함으로 빠져들었다........ 한 번의 경험이 좋았다는 것은 다음 경험도 좋을 것이라는 게 아니라 그 운을 다 썼다는 것이라고 할까...
덧붙이자면, 플릭스버스를 타는 중에 승차감이 가장 별로였던 것은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것이었다. '플릭스버스 중 이 버스가 유독'이 아니라 아예 다른 버스였다! 다른 버스로 교체돼서 온다고 알람이 오더라니, 플릭스버스의 시그니처 컬러인 연두색은 눈에 띄지도 않고 그냥 하얀 대절버스가 온 것이다. 다행히 서울 시내버스 같은 의자는 아니었지만 가죽으로 씌워진 이 의자가 뭔가 묘하게 불편해서 3시간 정도 향하는 동안 미미한 불편함이 내내 함께하였다. 원래 플릭스버스 차가 아니다 보니 당연히 휴대폰 충전이나 와이파이 등의 기능도 제공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를 선택하는 것이 어느 정도 균질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리라는 기대에서 오는 것일진대 이 유동성 뭘까... 한국도 아니고 차체의 주행과 무관한 고장이 바로바로 고쳐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화장실 고장 뭘까...


이렇게 구구절절 플릭스버스와의 괴로운 추억들을 썼지만, 그래도 나는 다음 여행에도 아마 플릭스버스를 제일 먼저 선택할 것이다. 특히 국경에 인접한 곳들은 더더욱 그러하겠지. 미국에서의 메가버스를 추천하며 친구가 '너 아직 20대니까 괜찮아'라고 했던 것은 30대에게 건강상 괴로운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겠지만, 다행히 아직 디스크 오지 않은 척추자니 이를 써먹어서 살림살이 좀 나아진다면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그 아낀 값으로 저녁에 반주 곁들이고도 펍 하나 더 갈 수 있고, 또 짐 추가 안 하고도 술 사올 수 있으니 말이다. 경쟁사들 다 인수하면서 안좋아졌다는 플릭스버스의 서비스가 최근 새로이 등장한 경쟁사들 덕에 내가 좋게 경험한 바로 균질해지는 업그레이드를 하면 더 좋겠고... 참고로 플릭스버스 페이스북 메시지로 고객상담할 수 있어서 짱 편하다.

정작 플릭스버스 찍은 사진이 없어서 구글에서 검색함..출처 사진 속에
학원 다니는 동안 쏠쏠히 써먹은 영티켓플러스
영티켓플러스로 다닐 수 있는 VRR 권역. 좌측의 우상향 빗금 지역이 네덜란드다. 저녁 7시 이후와 주말에는 동반 1인도 가능하다.
지난주말 영티켓플러스로 남편 동반하여 다녀온 네덜란드서 가장 오래된 도시 네이메헌(Nijmegen)
29살 내 허리를 녹였던 메가버스... 내 자리는 2층 맨앞 사진으로 보이는 기준 맨 오른쪽이었다.
안트베르펜-디종 여정의 모습... 지금 보면 손님 적을 만한 노선.
파리까지 8시간동안 화장실 참아야 하는 줄 알다가 만난 샤를루아에서의 단비같은 휴차 시간.. 갓길의 정류소다. 이거 3개국 운행하는 노선 정류소 마즘.
그냥 같이 넣어보는 뒤셀도르프 중앙역. 여기서 기차 타고는 주로 도르트문트나 쾰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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