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
이 그림은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 그림 중 하나로 판잣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며 지내는 이중섭 자신의 모습을 종이에 수채와 잉크로 그린 그림이다. 간결하고 단순하게 그린 그림이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판잣집 화실'은 화가 이중섭이 가족과 떨어져 그림을 그리며 살았던 집과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산책하듯 떠나는 미술관 나들이' 미술산책 반나절 투어가 있길래 신청했더니 마침 국립현대미술관(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과 월하 아트갤러리(안천용) 전시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술산책 전 국립현대미술관 안에 있는 테라로사 커피숍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사전 도슨트(그림 설명)를 듣고 전시 관람을 하는 순서여서 여유 있고 고급스러웠다.
이중섭 개인의 가족관계와 작품 설명을 듣고 마지막에 '판잣집 화실' 사진을 소개해 주었다. 이건희 컬렉션 전체를 전시하는 행사에 볼 수 있는 그림이라 이번 전시에는 없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그림이라 소개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술에 취해 불콰 해진 이중섭이 두 팔, 두 다리 쭉 뻗고 곰방대 담배 한 대 빨아올리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두 눈 아래 볼 두 덩이가 뻘게진 걸로 봐서 친구들이랑 술 한잔 기분 좋게 마시고 세상 시름 다 잊고 멍 때리는 중이다. 방에는 벌레가 기어 다니고 그림도구, 그리다 만 그림이 방바닥에 뒹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술기운 불콰한 이중섭은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벽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족들과 떨어져 가족을 위해서라면 날마다 밤을 새워 그림을 그려도 행복하기만 한 이중섭. 단칸방에 홀로 누워서도 가족 생각에 행복해하는 화가의 표정이 그림에 담겨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판잣집에서 혼자 사는 이중섭에게 그림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봤다. 그의 인생에서 그림이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가난하고 외롭지만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 바닥에 그리다 만 그림들까지. 화가의 마음은 열정으로 가득해 보인다. 평생을 가족을 만나 함께 살 기대로 살았다고 하는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늘 행복했을 것 같다. 두 아들이 아비의 그림 때문에 싸울까 봐 아들 둘에게 각각 이름을 써서 그림엽서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그림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 수 있었다고 할까.
미술 산책 진행자는 '판잣집 화실' 벽면에 빼곡히 붙은 그림들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고 하면서 자세히 보고 어떤 그림인지 맞춰 보라고 제안한다. 물리적 공간은 판잣집이지만 호가되는 그림값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금액의 그림이 걸려있는 셈이다.
이중섭 그림은 그가 살아 활동하던 시절에 잘 팔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여느 가난한 화가와 마찬가지로 이중섭에게도 '돈벌이로서의 그림 그리는 일'은 녹록지 않은 생계수단이었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을 밥벌이 수단으로 하며 살아가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바로 '판잣집 화실'에 불콰해져 대자로 뻗어 누운 이중섭의 행복한 표정. 그림이 주는 기쁨이 아닐까 싶다. 그리다 만 미완성의 그림들이 있고 벽면에는 그려놓은 그림들이 빼곡히 붙여져 있다.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다 가진 표정의 화가의 행복한 모습.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족을 만날 것이며 배고픔도 잊을 것이다. 돈 걱정은 그림 그리는 동안 사라지고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위로로 바뀔 것이다.
삶이 불안할수록 그림 그리기에 몰두할 것이며 집중하는 동안 세상 시름 싸악 잊힌 듯 사라질 것이다. '밥벌이로서의 일'이 '돈벌이로서의 일'의 개념을 넘어 그 자체로 놀이가 된다면 일은 기쁨이 될 것이다. 삶의 위로가 될 것이며 실패감을 넘어 새로운 창조적인 가능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줄 것이다.
위대한 화가들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물론 '밥벌이로서의 일'이었지만 돈에 한정된 일, 직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삶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돈, 밥벌이로서의 일의 개념에 한정되어 있는 생각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각자 자신 삶의 기쁨
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돈벌이로서의 일을 할 수 있는 연령이 갈수록 짧아지지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날이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삶의 기쁨 없이 죽지 않는 시간을 살아가려면 얼마나 적막하고 지루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로 돌아가 놀 수 있다면. 어른의 마음에서 어린아이가 뛰어놀게 해야 한다. 아이 같은 호기심, 노는 본능, 새로운 놀이,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창조성이 필요하다. 삶의 기쁨은 '돈벌이로서의 일'에서 찾기 어렵다. 평생 돈벌이로서의 일을 마친 후 영혼마저 탈탈 털려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몰라 길을 잃기 십상이다. 잘 노는 사람은 '돈벌이로서의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삶의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