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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Oct 06. 2022

안식처 의미를 담은 집 그림

그림을 그리다

소격동 미술 나들이를 갔다가 월하 미술관을 만났다. 인사동에서 지하철을 내려 지금은 공예 박물관이   풍문여고 옆길을 따라 정독도서관까지 이어진 골목길을 걷다 보면 한옥으로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인다. 월하 미술관은  맞은편 좁은 골목 끝에 있다. 평소 자주 들락거리던 길인데 미술관이 있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카페를 하던  2 건물로  얻어 개관했다는 월하 미술관에  조그마한 마당이 딸려있어 도심에서 이런 곳이 숨어있었다니 감탄하게 된다. 이곳에서 '안천용 화가의 그리움을 담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색감이 강렬해 단번에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안천용 화백은  포항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에서 어릴 때부터 살아온 까닭에 우리나라 말을 잘하지 못한다. 안 화백은 강제징용당한 아버지를 찾아 뱃속에 있는 동생과 자신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렸다. 강제징용 후손으로 이별과 가난과 싸워야 했던 시간들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아픔을 녹여내고 있다.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안 화백이 오방색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향땅 한국의 고유색이었다고 한다. 대담한 원색의 표현, 짙은 향토색 서정에서 흐르는 강인한 생명력이 표출돼 표현주의 화가들을 연상케 하는 짙은 색감이 인상적이다.

그림  여인은 어머니인데 어린 자녀를 앞에 두고, 뱃속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품은  강제징용  남편을 찾아 일본으로 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는 장면을 그렸다. 안천용 화백 기억  어머니는 산처럼 크고, 든든한, 용감하고  품이 너른 여인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여장부 스타일. 일본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동안에 어머니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림의 색상대비는 그림에 대한 집중력을 높임은 물론 강렬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실제 나이 들어 어머니 고향 안동을 다녀가면서 어머니의 고향, 나의 조국이 그리웠다고 했다고 한다. 그림 한편에  자그마한 집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조그만 집은 그가 돌아갈 마음의 안식처이자 어머니를 상징하는 그리움을 담고 있다.  어머니와 , 튤립이 그림에 담긴 내용이다.




안천용 화백은 어머니에게 홀로 자신을 키운 감사의 표시로 자주 꽃을 그려 선물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튤립을 어머니를 위해 그림으로 그려 드렸는데  모두 어머니에 대한 자식으로서 사랑을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튤립 그림 한편에조그마한 집이 그려져 있다. 팔순이 넘은 화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를 그려 그리움을 표현하는 애절함이 느껴진다.. 나이 들어도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그리움의 대상이라 생각하니 뭉클하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은 남보다  그릴  있다. 평소 나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나무를 그릴  신이 나고 쉽게 슥슥 그린다. 나무  그리는 사람이 집이나 건물을 그릴  어려워할 때가 많다. 그림은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대상을 그릴   그릴  있다.  그리기 위해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먼저 그리면 자신감이 생긴다.

나는 집 그림이 좋다. 집을 그릴 때 수월하게 스케치할 수 있고 채색이 편안하다. 나무 그림은 어렵다. 다른 사람 그림을 관찰해서 여러 번 그리지만 아직 나무 그림이 어렵다. 풍경 그릴 때 나무 한 그루 멋지게 그릴 수 있으면 나머지 그리기는 쉽다고들 한다.

집을 그린 화가의 그림은 마음에 확 끌린다. 따라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수월하게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집 그림이 왜 좋을까? 안천용 화백이 그림에서 집은 외로움, 그리움을 담고 있다고 안내하는 큐레이터가 설명한다. 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대체로 집은 물리적 존재감을 넘어 심리적 안정 혹은 안식처, 휴식을 뜻한다고 한다. '돌아갈 집이 있다(메이트 북스)' 화가인 저자 지유라는 9년 동안 자신의 집을 포함, 다양한 '집 그림'과 '집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히 마음을 끄는 곳을 서울 정릉, 속초 아바이 마을, 부산 비석마을 등 우리나라 각지에 있는 오래된 집이라고 한다. 지유라 화가는 낡은 그 집들에서 삶의 생생한 흔적을 느끼며 녹슬고 바랬지만 세월에 변함없이 서 있는 집을 통해 우리의 삶을 온전히 담고 있는 굳건함을 느낀다. 집을 그리다 보면 감춰진 여러 감정들이 뿜어 나오는데 가장 큰 것은 평온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풍경 스케치를 할 때 가게를 그릴 때 슥슥 잘 그려진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이 가게를 했다. 날마다 문을 열고 물건을 밖에 내어놓았다가 문 닫을 때 안으로 들인다. 물건이 꽉 차면 바깥으로 들락거리기 힘들다. 가게를 그리면서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가게 밖에 물건들이 옹기종기 진열되어 있고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선반마다 먼지 앉은 물건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한옥집, 이층 집, 옥상에 걸린 빨래를 걷는 아주머니. 집이 담고 있는 기억, 따스함, 돌아가고 싶은 귀향 욕구가 건드려진다. 집 그림 즐기는 작가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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