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
풍경 스케치를 하면서 나의 글쓰기를 돌아본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고 사랑하기나 한 건가? 생각해 본다. 나에게 글쓰기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썼던 글쓰기는 카프카의 말에 따르면 '목적지와 출구를 정해 놓은 '미로게임' 같았다. 미로 출발선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탕" 출발 신호가 울리는 순간 출발해 출구를 찾아 나올 때까지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기 게임이 나의 글쓰기였다. 목적지를 책 쓰기라는 출구를 정해 놓고 내가 보고 있는 목적지가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들들 볶아댔다. '출구만 찾으면 된다. 빠져나가야 하니 쓸 수밖에 없다. 시작한 일이니 얼른 마쳐야 한다. 자유로워지려면 완성하고 벗어나야 한다. 일단 시작한 일은 멈추면 안 된다'. 계획한 일을 해나가는 시스템 속에 들어가면 미로를 빠져나올 때까지 이렇게 돌아간다. 해서 무슨 일이든 완성을 하려면 자신을 미로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고 믿었다. 일단 미로에 밀어 넣어 가두면 무슨 수를 쓰든 빠져나오게 되어있다.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출구만 열어놓으면 된다. 목적지와 출구가 열려있는 한 빠져나올 수 있다. 헤매다 보면 나름 요령이 생기고 몸의 움직임을 통해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진다. 갇혀있으니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빠져나오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나는 용케도 출구로 탈출할 수 있었다. 미로 탈출 방식이 나의 삶의 방식이었다. 나름 꽤 전투적이고 치열하게 살아남는 방식을 선택해 살아온 셈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 해당될 때 그랬겠지만. 그렇게 원하던 목적지에 늘 도달할 수 있었다.
치열한 삶의 방식 이면에 두려움과 불안, 긴장이 내재해 있었다. 미로에 갇힐까 봐 두려웠고 숨이 막혀했다. 글을 많이 쓴 유명 작가들은 이 미로를 글 감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기 가수 비는 가수 데뷔 시절 소속사 대표에게 박진영에게 스스로 감금되어 지냈다고 TV 토크쇼에서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 받아들이고 감금당한 덕분에 지금의 가수 '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빠져나온 덕분에 스타로 살게 됐다고 고백한다.
변신의 작가 카프카가 작품을 쓰면서 강조한 것은 골목이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골목길을 헤맨다. 끝도 없이 벽을 보면서, 끝이 없는 일, 자기가 마주한 사방의 벽을 보면서 어딘가 구멍이 있는 것은 아닌지 손과 발이 부르트도록 더듬는 일만 계속한다. 이런 일에 자신을 계속 던진다는 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자유를 향한 6번의 시도(북드라망)) 카프카는 목적지와 출구를 정해 놓은 미로와 목적지 없는 혼동을 상징하는 미궁을 구분했다고 한다. 당신은 미로와 미궁 중 어떤 길을 선호하는가? 선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미로와 미궁에 빠지고 죽어라 빠져나와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인생 자체가 목적지와 출구가 정해진 미로와 목적지 없는 혼동 자체인 미궁의 길이 번갈아가며 펼쳐지는 긴 여정이지 않을까 싶다. 카프카는 자신 내면의 그런 미궁을 떠올리며 작품 속 골목길을 묘사했다고 한다. 얼마나 다양한 경로를 찾을 수 있느냐? 상상해 그릴 수 있느냐? 에 슬기로운 미로 생활이 달려있다. 해서 카프카는 이런 말을 사람들에게 던졌다고 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라. 더듬기 전에는 모른다. 질문하기 전에는 더 모른다. 우리는 골목이 이 벽과 저 벽을 더듬으면서 살 길을 모색한다"
사실 고전 문학작품을 성인이 되어서 읽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대학교 고전 도서 목록을 채워 읽기 위해 읽었던 독서가 전부다. 특히 변신을 포함한 카프카의 작품은 난해하기로 소문나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자유를 향한 6번의 시도'라는 책을 빌려보게 됐다. 카프카 작품을 읽고 카프카가 열망했던 자유에 대해 이해하고 읽기 쉽게 해석한 책이다. 아~ 나이 들어 카프카 작품 해설서를 읽고서야 카프카가 뭘 고민하고 사느라 '변신'이라는 책을 썼는지 알 수 있다니. 나이 드는 게 나쁜 것만 아니구나 싶다. 왜 그가 작품에서 손톱에 부르트도록 자기가 마주한 사방의 벽을 보면서 손으로 더듬는 일을 계속해 왔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젊었을 때는" 뭐 그렇게 힘들게 살아? 카프카는 지독히 어두운 사람이야" 판단하고 단정 지었던 것 같다. 나이 먹어 가면서 다시 카프카를 만나니 우리 인생 자체가 목적지와 출구가 없는 미로의 연속이며 시시각각으로 혼동의 장 미궁 속에 갇힌 존재라는 그의 관찰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풍경을 그리는 동안 적어도 끝없는 미로와 미궁 속에 갇혀 헤맨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미로와 미궁 속에 살고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 더 맞다. 내가 발 딛고 서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색이 주는 환한 에너지를 수혈받는다.. 생각과 판단이 사라진 몰입의 시간이 갇혀있다는 생각에서 걸어 나오도록 돕는다. 더는 출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끝도 없는 벽이 있지만 손으로 더듬으며 혹시 있을 구멍을 찾는 일을 잠시 멈출 수 있다. 숨 쉴 수 있으며 쉬어갈 수 있다.
글쓰기도 이런 쉼과 멈출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텐데 그동안 난 출구 찾는 데만 몰두했다. 출구를 찾는 일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누가 그렇게 생각하라고 했냐고? 한동안 내 삶을 장악하고 있는 상식과 제도가 틀렸음을 입증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내 선택이 아니었어. 나도 모르게 주입된 가치관을 내 생각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아왔어'.
카프카는 지금 내 삶을 장악하고 있는 이 상식과 제도가 틀렸음을 입증하는 일 보다 지금 여기에 새로운 우정, 새로운 관계가 실현될 여지가 많음을 깨달으라고 외친다. 지금 여기가 싫다고 싹 다 갈아엎는 재개발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 어쩌다 놓인 지형물을 이용해 다른 관계망, 다른 이동 경로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림 그리기는 나에게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우정을 쌓는 길을 안내한다. 목적지와 출구를 찾아가는 길을 다른 길로 가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후 가고 있는 길이다. 어쩌면 내가 선택한 것이 출구 없는 미궁이라 해도 괜찮다. 처음부터 목적지와 출구를 찾아 떠난 길이 아니다. 미궁 속에 이런 길이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 원하던 길을 걷고 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고 있다. 카프카가 말한 바로 이 자리에 놓인 지형물을 이용해 다른 관계망, 다른 이동 경로를 발견해 가고 있는 셈이다. 발상의 전환, 다르기 보기, 카프카는 자신이 어디에 갇혀있는지 깨닫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 글쓰기와도 새로운 우정을 쌓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새롭게 관계 맺고 있는 글쓰기와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