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작품보다 멋진 공간과 환경을 가진 게티센터
아침 일찍부터 숙소를 나서기 위해 채비를 마쳤다. 가볍게 단백질바와 요거트로 배를 채우니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LA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게티센터는 조금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대신 입장료가 무료다. 고흐의 '아이리스'를 비롯하여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수 있었기에 선택한 장소다. 헬스장에서 열심히 근육을 키웠으니, 마음의 양식도 충분히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LA에서 이동할떄는 주로 Uber나 Lyft를 이용했다. 동 시간대에 두 개의 앱을 같이 켠 후 둘 중 더 저렴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이 날 아침에는 Lyft가 좀 더 저렴했다. 여행 시기에 맞춰 유료 멤버십 1달 무료 체험을 하고 있었기에 프리미엄 요금으로 불렀다. 혹시 미국 여행을 계획중이라면, 다양한 앱들의 1달 무료 체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자. Lyft 등의 이동수단은 물론 DoorDash 등의 배달앱 역시 무료 체험이 가능하다.
게티센터의 입장료는 무료다. 여기에서 예매가 가능하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입장 날짜 및 시간 등은 지정예약을 해두어야 후에 불편함이 없다. 내가 방문했을때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뒷 순번으로 밀리거나 입장 당시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석유 재벌의 이름에서 따온 게티 센터는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 둘로 구분되어 있으며, 게티 센터가 미술관의 역할을 하며 게티 빌라가 박물관의 역할을 한다. 둘 사이는 도보 이동이 어려워 혹시 자차로 이동한다면 둘 모두를 볼 수 있겠으나, 자차 이동이 아니라면 둘 중 한 곳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둘 중 한 곳을 고른다면 게티 센터를 추천한다.
게티센터는 이상하게 건물 안에서 둘러보기 보다는, 건물 밖에서 건물과 풍경을 보고 싶게 만든다. 소장작품이 별로라거나, 동선이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매 시간 변하는 햇빛에 동조하듯 변화하는 건물의 색감과 그림자의 방향, 그 주변의 사람들이 만드는 다양한 풍경 자체에 매료된다. 언덕 위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게티 센터 안에서 다양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들. 그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괜히 바쁘게 모든 작품을 보려고 부화뇌동 하지 말고, 보고 싶은 작품과 작가들을 성지순례하듯 살포시 돌아보고 남는 시간은 바깥을 산책하거나 커피나 한 잔 하자. 야외 카페에서는 간단한 식음료를 판매하며, 커피는 썩 마음에 드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아침의 피로감을 날리기에는 충분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으나, 그 작가들의 유명한 작품까지 가득 차있는 수준은 아니다. 고흐의 '아이리스'가 그나마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므로 꼭 보러 가보자. 이번 여행에서는 뉴욕에서 MoMA 및 MET을 갈 예정이었으므로 사실 게티센터의 소장작품들은 그렇게 깊은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윗 사진에서 마지막 작품의 경우 액자를 포함한 입체적인 구성이 눈에 띄어 담아왔는데, 지금 다시 봐도 놀랍다. 단순히 원근감을 크기로 표현한게 아니라 뜨거운 대기와 먼지에서 느껴지는 시야의 흐림까지 면밀히 표현해내어 사진보다 더 사진같은 느낌을 회화적으로 완성했다고 본다. 이처럼 그림을 감상하다가 '내 취향의 작품'을 찾아내는 즐거움 역시 미술관 투어의 묘미다.
한 편, 게티센터를 전망대처럼 활용해도 좋은듯 하다. 워낙 고지대에 있고, 산타모니카와 멀지 않기에 해안선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할리우드의 그리피스 천문대도 선셋 맛집이긴 하지만, 굳이 노을과 함께 감상할 욕심이 없다면 보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게티센터에서 탁 트인 LA 시내를 바라보는것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제 슬슬 식사를 할 시간인데, 게티 센터가 워낙 동떨어진 위치에 있다 보니 외부의 식당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방문한 당시에는 저렴한 식당이 운영을 하지 않아 결국 Fancy한 분위기의 자칫 비쌀것 같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레스토랑 이름이 레스토랑이다. 어차피 한 곳이라 헤매거나 헷갈릴 일 없이 방문하면 된다. 예약이 필요할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빈 자리가 있어서 바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무엇을 먹을까 굉장히 고민했는데 웨이터가 본인이 먹어본 것 중에 오늘 이건 진짜 꼭 먹어봐야 한다고 본인 믿고 시키라고 해서 농어 요리 하나와, 닭고기가 올라간 파스타를 시켰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격 대비 훌륭한 맛과 양이었다. 모두 'From the Farm'이라고 해서 로컬 식재료를 응용한 요리를 선보이며, 기대하지 않았던 리코타 카바텔리의 재미난 식감과 잘 숙성된 파마산 치즈의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올리브 오일에 촉촉히 적신 농어찜 역시 익었지만 질기지 않은 수준의 절묘한 선을 지키며 아름답게 입 안에서 풀어졌다. 어째서 자신감을 갖고 추천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은 맛이었다. 닭가슴살을 포함한 리코타 카바텔리는 $34, 올리브오일 농어찜은 $34. 미술관 한복판의 근사한 공간에서 제대로 식사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저렴해서 놀랐다. 야외 테라스에서도 식사가 가능한데, 당시 날씨가 좀 쌀쌀하여 포기한게 사뭇 아쉽다. The Restaurant 역시 예약이 가능하므로 방문에 맞춰서 예약해두면 맛있는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다. 메뉴는 계절마다 제철 식재료로 바뀌므로, 봄 여름 가을에는 또 다른 메뉴가 함께할듯 하다. 이것만 명심하자. 게티 센터에서 점심을 먹는다면 여기 아니면 도시락 뿐이다.
식사를 해서 기운을 차린 뒤 다시 몇 개의 전시관을 더 둘러봤다. 그러나 해가 점점 기울어지면서 만드는 아름다운 햇빛과 그림자에 취해버렸고, 결국 우리는 금방 나와 게티 센터 외부와 정원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겨울 LA 여행은 장점과 단점이 혼재한다. 해가 짧다는건 그만큼 활동 가능한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지만, 아름다운 노을을 보다 일찍 만날 기회도 찾아온다. 12월의 미국 여행은 처음이었지만, 혼자였다면 외로웠을 시간을 아내가 함께 채워주니 해가 빨리 저물어도 아쉬운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함께 해가 지는 게티센터를 거닐면서 다양한 빛과 그림자, 풍경과 사람을 관찰했다. 이렇듯 게티센터는 단순히 소장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운 미술관이지만, 건물과 조경 등 공간 전체를 놓고 봤을때는 어마어마한 매력이 살아 숨쉬는 힐링 스팟이다. 진작에 소장작품 다 보고 내려갔을 시간임에도 빛의 변화 속에서 꾸준히 게티센터 자체를 감상했다.
아침의 시원한 빛을 뒤로 하고 점점 노랗게 익어가는 햇빛. 아름다운 만큼 아쉬워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음에,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가기로 했다. 올라올때는 얼마나 높은지 몰라 트램을 탔지만, 내려가는 길에는 충분히 걸어갈 수 있을듯 하여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약 20분 정도가 소요되며, 가벼운 언덕길 산책이므로 어렵지 않게 도보로 내려갈 수 있다. 참고로 게티센터 바로 앞까지는 우버나 리프트 서비스가 불가능 하고, 트램 스테이션 옆에 우버/리프트 등의 서비스 존이 존재하므로 어찌되었건 내려야만 게티센터를 벗어날 수 있다.
아, 게티센터를 벗어날때 가장 중요한 팁을 전하자면 '내려가기 전에 미리 Uber/Lyft를 부를것' 이다. 내려가서 불러야지 하고 호기롭게 내려갔다가 거의 1시간을 넘게 기다려서 간신히 나갈 수 있었다. LA의 퇴근시간 러시아워에 막힌것도 있지만, 대체로 이런 서비스가 '어쩔 수 없이 타야 하는 구간'에는 유독 비싼 요금을 맥이고 경매 방식으로 입찰을 시키는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금 차이가 많이 났다. 가령 LA에서 게티센터로 들어가는건 그냥 가는데, 게티센터에서 밖으로 나갈때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부르는게 값이 되는 셈.
비슷한 거리를 주행하는데 게티센터에서 나올떄는 두 배 넘는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창 밖의 핑크빛 노을은 또 왜 이리 예쁜지. 평소 택시에서 자는 일 없던 아내도 이 날은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달리는 Lyft 안에서 잠이 들었다. 얌전히 손 잡아주며 말 없는 기사와 함께 LA의 교통체증을 즐겼다. 역시 어딜 가도 사람 사는 곳은 똑같구나. 퇴근 시간에 막히는건 어디라도 다르지 않겠지. 이 날은 원불교 사직교당에서 잠시 함께한 적 있던 아는 분을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맛있는 대만 요리주점에서 만나 식사를 대접받아 정말 감사했다.
현지에선 나름 유명한 대만식 요리주점 Little Fatty 이다. 실제로 바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기에 단순히 식사 보다는 식사와 함께 맛있는 술을 마시러 가는 기분으로 들러보면 좋을듯 하다. 다만 일반적인 번화가나 여행객 숙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기에, 차량 이동을 권장한다. 강한 아시안 풍미가 느껴지는 향신료들이 매력적이었으며, 며칠 동안 양식에 시달렸던 우리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식사였다. 우리 부부가 계산하려고 다양한 요리들을 시켰는데, LA에서 만난것 만으로도 넘 반갑고 고맙다는 이유만으로 식사를 대접해주신 지인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한다.
이렇게 스쳐 지나간것 같던 인연 사이에도 반갑고 고마워 할 일들이 이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건 결국 따뜻한 정이라는걸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