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nk VIP 티켓으로 타본 스케이트
여행 전 아내가 뉴욕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인지 물어보니 맨해튼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는 것이었다. 찾아보니 브라이언트 파크나 센트럴 파크 등의 공공용지에서의 스케이트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뉴욕 출장에서 봤던 스케이트장은 록펠러 센터 앞의 The Rink 였다. 이름도 거창하다. '그 링크' 하면 거기가 거긴줄 다 아는걸까. 크리스마스에 신혼여행인데 두려울 것은 없었다. 인당 $113을 지불 하고 VIP 티켓을 쿨하게 예약해놨다.
예매 사이트는 여기다. 기본 티켓과 VIP 티켓 둘로 나누어져 있는데, VIP 티켓은 일반 티켓보다 이용 시간이 더 길고 따뜻한 음료 한 잔이 옵션으로 붙어있다. 두 가지가 모두 장점이라 할 수 있는데, The Rink는 면적이 좁고 사람이 많아 쉴 새 없이 돌고 도는 스케이트 장이다. 시간대비 빠르게 얼음이 녹고 거칠게 변해 거의 1시간에 1번 정도는 얼음 정비 시간을 가진다. 얼음정비는 10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일반 티켓을 구매했다면 속절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시간이다. 운 없으면 이도저도 못하고 시간을 낭비 할 수도 있고. VIP 티켓은 여유롭게 90분 동안 스케이트를 타면서 얼음 정비 시간에는 링크 옆 카페에서 핫초코를 한 잔 마실 수 있으니 여러모로 이득이다. 어차피 일반 티켓도 충분히 비싸다. 기왕 록펠러 센터 앞에서 스케이트 탔다고 말해보려면, VIP 티켓 정도는 써 보는게 여러모로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살면서 본 가장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록펠러 센터 앞에 있었다.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와중에, 맨해튼 한복판에서 스케이트를 타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 입구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을텐데, 입장 시간 5분 정도 전에 입구 앞까지 가서 QR코드를 보여주면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무료 라커가 일부 있지만 제대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라커는 많지 않다. 그나마 하나 간신히 찾아서 신발을 넣고 잠글 수 있었다. 입장시에 스케이트와 함께 동그란 스티커를 하나 주는데, 스티커로 시간을 구분하는듯 했다. VIP 티켓 이용자들은 일반 입장과는 입/퇴장 시간이 조금 다르기에 그나마 여유롭게 스케이트를 신고 벗을 수 있었다. 스케이트 사이즈는 신어보고 크거나 작을 경우 교환이 가능하니 편하게 물어보자.
당연한 얘기겠지만, 크리스마스의 한복판에 있는 느낌이었다. 음. 그러니까. 나홀로 집에를 매년 명절에 보고 자란 내게는 뉴욕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더욱 더 소중한 의미가 있었고, 이걸 그저 시공간적으로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었는데. 록펠러센터 앞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웃고 떠드는 많은 이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고 있으니 진짜로 크리스마스 안에 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 우리 크리스마스에 뉴욕에 있구나.
그리고 규모가 작고 상징성이 큰 스케이트장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다들 한 번은 스케이트를 타보려는 초보자들이 많았다. 당연히 나도 그렇다. 고향이 강원도 홍천이지만, 매년 강이 꽁꽁 얼어도 스케이트 한 번을 안 타봤는데 뉴욕에 와서 스케이트를 타볼 줄은 몰랐다.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게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무엇보다 아내의 버킷리스트를 함께 이룰 수 있어서 더욱 뿌듯하고 즐거웠던 하루.
얼음 정비시간이 있었고, 우리는 입구 반대편 카페에서 핫초코를 주문했다. 티켓을 교환하며 받은 쿠폰을 제시하면 메뉴판에 있는 음료 중 하나를 마실 수 있다. 그리 비싼 음료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케이트를 오래 타면서 음료까지 즐길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러니 저러니 고민해도 스케이트 타는거 자체가 유산소 운동이니까, 살 찔 걱정 없이 따뜻한 핫초코를 마셨다. 가족단위로, 연인단위로 많이 찾는 The RINK에서는 얼음이 정비되는 시간조차도 설레고 따뜻했다.
The RINK의 안과 밖을 나누는 사진 구도가 아닐까. 누구나 여기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 스케이트를 타는 행렬에 방해가 되긴 하지만, 다들 웃고 떠들면서 그러려니 하고 찍는걸 보니 우리도 줄을 서서 찍고 또 찍어드렸다. 미국 분들에게 사진 맡기는게 어쩐지 불안했지만, 역시 Gen Z라 그런가 미국 사람 갬성이 아니라 제대로 인스타 갬성으로 잘 담아주었다. 땡큐.
스케이트를 타고 나오니 바로 옆에 성 패트릭스 대성당이 있었다. 출구로 나와서 바로 오른편에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뉴욕 안에서 꼭 들러봐야 하는 명소 중 하나로, 크리스마스 시즌 답게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우리도 들어가서 초를 봉헌하고 가볍게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생각해보니 미국에서 가톨릭 성당을 들어와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마치 유럽에 있는 대성당에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초를 봉헌하고 가볍게 기도를 드렸다. 지금의 여행 처럼, 춥고 힘들어도 함께 하면 언제나 즐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다짐하며. 좌석 어디든 편하게 앉아서 기도하다가 갈 수도 있었다. 사방에 놓여진 기부자들의 명패와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지금이 언제인지를 알려주는듯 하다.
크리스마스, 뉴욕에 온다면 The RINK에서 스케이트를 한 번 타보는 것은 어떨까. 겨울이 아니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동화같은 시간들이니까. 신혼여행을 미국으로 와서, 당신과 함께라서,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서 정말 행복한 날들이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