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식당과 그렇지 않은 식당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
뉴욕에서는 보다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려고 노력했다. 특히 기대하고 갔던 음식이 세 종류가 있는데, 스테이크와 오이스터바 그리고 할랄 카트다. 스테이크는 워낙 비싸고 기대도 컸던지라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고, 이번 글에서는 오이스터바와 할랄카트 각각 두 가지의 스팟을 다녀온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뉴욕에 가기 전 이미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뉴욕 편을 섭렵하고 온 우리는, 백종원 선생님이 극찬하던 뉴욕의 오이스터바 하나를 점찍어뒀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안에 있는 오이스터바는 그 장소나 접근성, 규모를 봤을때 후회 없는 선택일듯 했고 덕분에 저녁 시간을 투자해서 방문해볼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Grand Central Oyster Bar. 어쩐지 입구부터 설렜다. 형형색색 수놓아진 OYSTER 글씨 하며, 그보다 위에 아치형 입구에 쓰여진 OYSTER BAR RESTAURANT라는 글씨까지. 누가 봐도 오랜 맛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터미널 한복판에 이런 바가 있다는게 반가웠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회에 소주 한 잔 마시고 버스타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바 좌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스푸파 영상에서 봤던 느낌 그대로 바에 앉아 호로록 먹고 나가고 싶었는데 무척 아쉬웠던 부분. 그냥 나갈까 싶었지만, 뒷 쪽에 테이블 형테의 바 좌석도 있던지라 일단 앉아서 주문을 했다. 바 좌석이 아닌 곳에 앉으면 서빙도 늦고 어쩐지 불친절한 느낌이 들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슈터 칵테일 중 블러디 오이스터 슈터라는 것이 있어서 각자 하나씩 시켜봤다. 블러디 메리에 굴이 한 덩이 들어있는 형태로, 술에 안주를 말아놓은 형국이다. 참신한 시도 같으면서도, 미끄덩하게 넘어가는 굴의 식감이 참 오묘하다. 마치 생굴을 처음 먹을때 초장을 듬뿍 발라서는 초장맛으로 삼키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뭐, 핫소스에 클래마토, 보드카 살짝 섞어서 굴을 담궈 놓는 정도로 완성하는듯 하다. 어려운 레시피가 아닌 만큼 딱히 참신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블러디메리와 굴 자체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 괜찮았다.
굴은 블루포인트 2개에 라즈베리 포인트와 스윗 아일랜드 키스라는 품종을 하나씩 시켜봤다. 확실히 알 수 있는건 블루포인트가 그나마 '미국 굴'처럼 먹어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생으로 먹는 굴과 완연히 다른 맛과 향을 느끼려면 블루포인트부터 선점하는 것이 옳다. 나머지 굴들은 대체로 한국 굴이 갖고있는 특유의 비릿한 우유향과 바다내음이 나는 대신, 한국 굴보다 크기는 작아서 여러모로 아쉬웠다. 블루포인트는 특유의 단맛과 굴의 담백하고도 고소한 풍미가 잘 어울려서 생굴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은 도전해봄직한 품종같다. 여기에 블루포인트 토스티드 라거까지. 블루포인트 세트로 가볍게 몸을 달궜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장을 보면서 마시기에는 분위기도 다소 산만했고, 우리 이외의 손님들도 너무 많아서 서버가 우리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저녁 시간이 되면서 손님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그에따라 모든 주문과 요청이 점점 느려지는 상태였달까. 무언가 시켜서 먹고 마시고 하려면 오늘 밤을 다 써도 이 곳에서는 모자라겠다는 생각에 아쉽지만 일어나기로 했다.
뭐, 아쉽지는 않았지만 기대한 것 치고는 특별할 것이 없어서 살짝 실망했다. 팁까지 하면 대충 55$ 정도 낸 셈인데, 우리나라에서 이 돈이면 인당 석화를 10개 넘게 조지고 광어회에 일품 진로 한 병 정도는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역시 가격 생각하면 해외에서 굴을 먹는건 좀 아쉽다.
마침 아내가 뉴욕 출장때 다녀온 오이스터 바가 하나 더 있어서 그 쪽으로 이동했다. 아직 해피아워가 남아있던 시간이라 걸음을 재촉해서 빠르게 이동했고, 덕분에 해피아워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Crave Fish Bar. 맨해튼 안에 두 개의 점포가 있고 우리가 방문한 곳은 2nd Ave에 있는 곳이다. 그리고 당신이 만약 맨해튼에서 오이스터바를 딱 한 곳만 간다면 이 곳을, 내 브런치를 걸고 추천한다.
이번 미국여행 최고의 수확 중 하나인 피클백을 여기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우리의 피클백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면 여기에서 읽어보자) 6$를 내면 피클백에 굴까지 얹어 준다구요? 맨해튼 가격이 맞나 순간 의심했다. 말만 해피 아워가 아니라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굴을 먹은 후 버번을 털어 넣고 상큼한 피클 쥬스로 입을 헹구니 이건 한 잔으로 멈출 수 없는 슈터였다. 오이스터 피클백에 쓰인 위스키가 워낙 부드럽게 잘 넘어가서 바텐더에게 물어보니 Four Roses라는 버번이라며 자신있게 보틀을 보여줬다. 옆에 있던 손님이 Yellow Roses도 맛나다며 추천 받은건 덤. 다시 보니 바텐더 참 잘생겼다.
굴 가격도 그랜드 센트럴보다 30% 정도 전체적으로 저렴했다. 일단 신뢰의 상징 블루포인트와, 그 외 굴들을 섞어서 6종 12피스를 주문했다. 이 시간 동안 음미하면서 먹은 것은 분명하다. 다만 굴 6개를 먹는데 시간이 걸리면 얼마나 걸리겠는가. 블루포인트 외에는 결국 단점이 한 두개씩 존재한다. 먹은 굴 껍질은 뒤집어 두면서 마치 도장깨기 처럼 맛깔나게 먹고 있자니 직원들도 신나서 맛있냐고 계속 물어봤다. 결국 해피아워가 끝나기 전 우리는 두 번째 접시를 블루포인트에 올인해서 주문해버렸다.
우리는 결국 30분 만에 굴 24개와 오이스터 피클백 네 잔, 크림 스프와 몇몇 칵테일을 마셨다. 워낙 맛있게 취해서 영수증도 제대로 담지 못한게 아쉽다. 뭐 아무렴 어떠랴. 아내가 뉴욕에 출장 왔던 기억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고 돌아왔으면 그걸로 족하다. 만약 당신이 뉴욕에서 오이스터바 경험을 한다면, 이 곳의 해피아워 시간에 방문해서 종류별로 모두 맛을 본 후,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굴로 한 접시를 더 먹으면 딱 좋을듯 하다.
그리고 뉴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할랄 카트다. 맨해튼 여기 저기서 팔고 있는 할랄 카트들의 원조격인 The Halal Guys는 마치 우리나라의 무슨 큰맘 할매 순대국 마냥 왠만한 시간이면 늘 영업하고 있는 소울푸드다. 2015년에 뉴욕 여행을 할 때도 선배님 덕에 새벽 세시엔가 가서 길거리에 앉아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원조 카트가 숙소 근처에 있어서 야식으로 포장해와서 먹어 봤다.
일단 할랄 카트 푸드들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양념된 밥 위에 선택한 고기를 얹고 야채와 난 등을 섞어주는 일종의 샐러드 보울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고기는 대체로 양고기와 닭고기가 많다. 섞어서 믹스로 시켜도 상관없다. 옛날에 먹을때는 소스통이 카트 옆에 있어서 자유롭게 뿌려먹곤 했는데, 요즘은 포장 요청하니 낱개 포장된 소스를 잔뜩 줬다. 화이트 소스 하나에 핫소스 하나를 뿌리는게 일반적인 레시피지만, 할랄가이즈 핫소스는 정말 너무너무 맵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서 도전하길 추천한다. 예전에 먹을때 일반 타바스코 생각해서 저걸 접시의 반을 둘렀더니 먹다가 기절할 뻔 했다.
일단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 치고는 상당히 괜찮다는 평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퀄리티도 상당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이 정도 양과 맛에 $10 정도, 그거도 팁도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높이 살만 하다. 그러나 2015년에 마냥 신기해서 접했던 할랄가이즈는, 2022년 좀 더 커서 먹어보니 딱히 맛있다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 동안 맛있는걸 너무 많이 먹어온걸까, 여기가 변한걸까. 실제로 할랄가이즈 이후 맨해튼 내에는 다양한 할랄 카트들이 생겼고, 후발 주자들이 보다 다양한 변화와 퀄리티 향상을 추구하면서 할랄가이즈의 맛이 예전처럼 느껴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들 한다.
전체적으로 고기는 퍼석하고, 밥은 식어있으며, 그나마 야채는 싱싱하다. 소스가 없다면 절대 먹을 수 없는 맛으로, 할랄가이즈의 명성은 어찌 보면 화이트 소스 덕분인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식료품점에서 할랄가이즈 소스만 팔아도 꽤 잘 팔릴듯 한데. 소스까지 음식의 일환으로 보자면 꽤 맛있는 조합임은 분명하지만, 고기나 밥을 따로 놓고 봤을때는 우리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왜냐면 할랄가이즈 보다 더욱 맛있는 카트를 이미 먹어본 후였기 때문이다.
Lil Zeus Food Truck. 이 곳은 인터넷에서 할랄 카트 랭킹을 검색하다가 알게된 곳인데, 역시 숙소 근처라 점찍어둔 상태였다. 소스고 뭐고 다 뿌려줘서 그냥 먹기만 하면 됐고, 우리는 기다릴 것 없이 근처 분수대 옆에 앉아서 겨울 바람 맞아가며 먹기 시작했다. 치킨과 양고기를 섞어 먹었는데 양고기는 별로였지만 치킨은 정말 너무 맛있었다. 일단 할랄가이즈와 릴 제우스의 가장 큰 차이는, 직화로 구운 불향이다. 할랄가이즈의 육류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따뜻한 맛이랄까. 누군가는 '탄 맛'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직접 불에 닿아가며 구운 바베큐 고기의 향이 물씬 났다. 함께 주는 난 역시 그러했고. 거기에서 오는 온도감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단순히 음식이 차갑고 뜨겁고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온도가 아니라, 맛과 풍미에서 전달되는 온기의 차이는 릴 제우스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따뜻한 숙소에서 먹었던 할랄가이즈 보다, 찬바람 맞아가며 분수대에서 먹었던 릴 제우스가 여러모로 마음을 더 녹여주는 훌륭한 할랄 푸드였다.
누구나 이름만 대도 알만한 맛집은, 이름만 대도 알만한 시점에서 위험해진다. 어느 순간 노력을 게을리 할 수도 있고, 자신들을 좋아해주는 단골들이 많아질 수록 변화를 추구하는 것 하나 하나가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기존 맛집'들을 마냥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기존 맛집'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거나 찬양하면서 자신의 입맛을 적응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맛을 믿고 내 입맛을 만족 시켜줄 진짜배기 식당들을 찾아 나가는 것이 진정한 미식의 즐거움 아닐까?
유명한 맛집의 맛을 스탠다드로 삼되, 그러한 맛 중 내가 좋아하는 부분과 좋아하지 않는 부분을 가려 고른 후 좋아하지 않았던 부분마저 채워주는 다른 식당을 찾아본다면 당신의 모든 식사가 즐거울 것이다. 맛집도 맛있었지만, 맛집의 옆집이 더욱 즐거웠던 이번 뉴욕 여행은 역시 그 동안 맛있는 것들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기 잘 했다는 생각을 확고히 해줬다. 살은 언제 빼지.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