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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ug 10. 2021

그때 그 와타나베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독후감

Raptis Rare Books 라는 곳에서 판매하는 <노르웨이의 숲>의 저자 사인본. 가격은 2200달러.  


<노르웨이의 숲>은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소설 중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초현실적인 설정이나 묘사가 없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달이 두 개가 된다거나 우물을 따라 이상한 세계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싶은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하루키 씨의 다른 소설들에 비하면 그래도 '어쩌자는 거야'의 기분이 덜 들 만하다.


현실적인 소설인 만큼 이때 나온 분들의 나이와 지금 뭘 하고 계실지도 나름의 계산이 가능하다.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만나는 건 1968년이다. 대학에 와서 처음 만난 거니까 이때가 대학교 1학년이었겠지. 와타나베 씨가 1950년생쯤 된다는 이야기다. 올해 한국 나이로 72세. 칠순이 넘었다.


나가사와 선배는 와타나베보다 두 학년 위다. 외무성 시험에 합격했으니 외교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와타나베보다 최소 두 살 많으니 74세입니다. 이미 외교관 정년도 끝났겠지. 왠지 하쓰미 씨와의 슬픈 사랑같은 건 잊고 결혼 두 번쯤 하고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미도리 씨는 와타나베보다 한 학년 어리게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칠순이 넘었다.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는 둘의 미래를 어디에도 적어두지 않았다. 하지만 헤어졌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20대 초반의 연애다. 게다가 모든 일이 끝난 소설 첫 장면을 떠올려 보라. 1980년대의 와타나베 씨가 어릴 때 듣던 노래를 우연히 비행기에서 듣고 머리가 아파졌다면 잘 안 됐을 것 같다. 미도리 씨와 결혼해서 아이도 있고 주택대출도 갚아야 하는 삶을 산다면 비틀즈 노래가 나오든 말든...미도리 씨는 생활력도 강하고 성실해 보이니 좋은 삶을 살아 왔을 것 같다. 가끔 '아 그때 와타나베같은 놈 안 만나서 천만 다행이야' 라고 생각할지도.


레이코 씨는 와타나베보다 19세 많다. 1931년생, 올해 91세다. 일본은 평균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다. 2017년 후생노동성 조사기준 일본 여성의 평균수명은 87.26세. 하지만 레이코 씨는 평균적인 분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남다르고 담배도 많이 피웠다. 냉정하게 레이코 씨가 2019년인 지금까지도 살아있을지 아닐지는 모를 일이지만 왠지 잘 살고 계실 것 같다. 레이코 씨가 떠나는 아사히카와는 깨끗한 지역이니까. 일본 남성의 평균수명은 81.09세다. 레이코 씨의 전 남편은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겠다. 레이코 씨가 코비드-19의 광풍 속에서도 돌아가시지 않으면 좋으련만.


돌격대 군은 와타나베와 나이가 비슷하다. 무슨 사정으로 나갔는지는 모르지만 원래 만들던 지도를 내내 만들었을 것 같다. 모두 노인이 된 지금, 등장인물 중 가장 충만한 삶을 살았던 분은 평생 지도 만들기만 해온 돌격대 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와타나베 씨의 삶은 어땠을까. 와타나베 씨는 연극을 전공했고 37세가 된 시점에 함부르크에 도착하는데 독일에는 이미 몇 번이나 와본 적이 있다. 그러는 동안 냉전이 끝났고 일본은 긴 경기침체를 겪었고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동세대의 일본인 작가 중 가장 성공했다. 왠지 와타나베 씨의 삶도 큰 굴곡 없이 잘 흘러갔을 것 같다. 모르지, 이제 은퇴한 나가사와 선배와 다시 어울려 다닐지, 아니면 미도리 씨와 결혼해서 견고하고 소박한 세계를 가꾸어 왔을지.


와타나베 씨를 태우고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하는 보잉 747은 이제 거의 다 퇴역했다. 와타나베 씨가 들은 현악 버전의 '노르웨이안 우드'는 아마 이런 느낌일 것이다. 퍼시 페이스 오케스트라 편곡이다.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은 지도 20년 정도 됐다. 그동안 이 소설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씨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 씨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나도 내가 어릴 때 듣던 묘하게 불온한 노래가 경쾌한 경음악으로 편곡된 걸 듣는다면 아찔할 것 같다. 라디오헤드의 '크립' 소프트재즈 편곡 버전같은 걸 들으면 나 역시 여러 가지가 떠오르겠지.


독서 모임에 냈던 <상실의 시대> 독후감. 오늘 소개할 하루키와 류의 다른 소설은 아래와 같다.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하루키의 장편 실력이 점점 원숙해진다고 생각한다. 노장의 마스터피스. 


55세부터 헬로 라이프,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일본인과는 사뭇 다른, 지금 현실의 일본인을 보여준다. 류의 특기가 무엇이었는지 아주 잘 드러나 있다.


교코, 무라카미 류

이제는 거의 잊혀진 20세기 말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소설. 전반적으로 더 비장하고 더 희망이 있었다. 지금 보면 이런 때도 있었구나...싶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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