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추천 :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나를 바꿀 수 없다. 언제부턴가 이 말이 너무나 잔인한 말처럼 들렸다. 싫었던 것 같다. 나는 나를 바꾸기 싫었다. 사실 바꾸기 싫은 건데 바꿀 수 없다고 말해야 합리화가 되어서 그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프가니스탄 영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관람했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본 영화였다. 아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 때문인 듯 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원해서 편지를 보냈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러나 영화는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극의 서사로 날 초대했다.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로 근무하던 소라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물이다. 미성년자와 결혼한 할아버지를 질책하기도 하고, 하녀를 추행한 시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당당히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세상에서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가부장제적인데다 폭력적이기까지한 주변 남성들은 그녀를 끊임없이 통제하려 한다.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일을 그만두라고 종용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라야는 결국 자신을 죽이려고 협박하는 남편에게 맞서다 사고로 그가 죽자, 사형에 처할 위기에 닥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기력한 감정을 느꼈다. 고통스러웠다. 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 폭력사회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비참할 정도로 제한적인지 느낄 수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라 말했을 땐,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나 역시 그런 사회를 알기에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랐다.
영화는 주인공의 유일한 무기이자 강력한 감정표현으로 '침묵'을 선택했다. 소라야는 법정 최종변론에서 침묵을 지킨다. 자신의 발언권이 묵살될지 알고 있기에, (법정을 지나갔던 수많은 여성들의 발언권을 보았기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을 한다. 그를 도왔던 화가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자신의 변론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내가 입을 여는 행위는 무의미할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입을 꼬매버리면서 이제 더 이상 쓸모 없는 입을 사용하지 않도록 만든다. 침묵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지킨다.
그래도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생각을 꺽지도 않았다.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건 꼭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일상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면 해당된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회를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그렇지만 나를 바꿀 순 없다. 내 삶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바꾸기 싫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이 글의 목적은 하나다. 2일차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인상깊은 영화였지만, 감독의 인지도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을 받아 아쉬운 마음에 썼다. 남은 영화제 기간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왜냐면 감동적인 영화를 발견했을 때 영화팬들은 흥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그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