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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기린 Nov 30. 2018

이상적인 지도자를 그린 영화 <안시성>

추석에 개봉한 영화를 이제서야 리뷰하다니....

 독일 거장 프리츠랑 감독의 <메트로폴리스>에는 광인이 등장한다. 이 광인은 도시민들에게 나쁜 짓을 하고, 결국 시민에 의해 처벌받는다. 흥미로운 건 1920년대 독일 영화에는 이 같은 광인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음지에 살고 있으며, 괴팍한 얼굴을 하고, 지능은 뛰어나나 자신의 능력을 남 괴롭히는데 쓴다. 영화학자는 독일 영화에 등장한 이 광인을 유대인으로 본다. 당시 독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유대인의 편견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광인을 통해 히틀러 시대의 전조를 보았다. 이렇듯 영화는 그 시대의 집단 무의식을 알 수 있는 좋은 재료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 등장한 영화 <안시성>은 상당히 눈여겨볼만한 영화다. 영화 <안시성>은 역사 속 고구려 안시성 전투가 주 내용이다. 이 글에서는 스토리는 잠시 뒤로 하고 영화 주인공인 성주, 양만춘(조인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영화 속 성주는 과할 정로도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도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고, 지략까지 세울 줄 알며 심지어는 성 안에 사는 주민들의 일상 하나하나를 굽어 살핀다. 아무리 먼 고구려 시대를 다룬 영화라지만 양만춘과 그를 믿고 따르는 주민들의 모습은 마치 이 세상엔 없을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양만춘을 이상화한다. 화려한 전투씬은 양만춘의 활약이 중심이고, 주민들이 죽는 슬로모션 장면은 양만춘의 도덕성을 부각한다. 


 나는 그런 양만춘에게서 문재인 정부의 초창기 모습을 보았다. 촛불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문재인 정부는 새 시대를 열겠다며 만기친람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안으로는 민생도 살폈다. 국민청원 시스템을 도입하고 약자가 있는 곳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하곤 했다. 국민은 드디어 원하는 대통령을 얻은 듯 80%대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임기 초 형성된 팬덤은 대통령을 비호하겠다며 언론과 정당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안시성 주민들처럼 위대한 지도자를 얻고 행복하게 지내는 듯했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은 늘 그렇듯 차이가 크다. 사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대통령은 불가능하다.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대통령은 없으며 대통령이 모든 걸 관장할 순 없다. 현재 나타나는 지지율 하락은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미 형성된 이 관계를 어떻게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열망에 부흥하기 위해 국민의 대통령이 되어버렸고, 국민은 자신을 만족시켜주지 않는 대통령에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가? 우리는 양만춘처럼 사실상 불가능한 이상적인 지도자를 아직도 기다리는 건 아닐까. 대통령은 그 열망에 부흥하다 국민 눈치 보기 바빠진 걸지도 모른다. 혹자는 영화 속 인물은 가상이고 현실에는 이런 지도자가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즐거워했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두운 영화관에서 자신의 환상을 확인한다. 우리의 환상 속 지도자의 모습은 양만춘과 닮아 있지 않는가? 현실에 없는 걸 알면서도 내심 누군가 이 절망 속의 나라를 멋지게, 하나부터 열까지 바꿔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알고 있어, 하지만”이라 말하며 환상 속에 빠진 라캉의 도착증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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