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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이 Jun 11. 2024

봄에 나는 일본 정신병원에 있었다.

조울증 일기


눈을 떠보니 컴컴한 병실의 딱딱한 침대 위, 나는 손발이 묶인 채였다. 간호사가 들어왔다. 화장실이 급해진 나는 화장실을 갈 수 없냐고 물으니 간호사가 그건 안된다며 어디선가 둥근 플라스틱 세숫대야를 가져왔다. 너무 수치스러웠지만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나는 그만 눈을 꼭 감고 신생아 이후로 처음으로 침대에 누워 소변을 누었다. 오줌은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히 세숫대야에 안착했다. 한국 병원에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일본 병원에서는 별 일을 다 겪어본다. 대변이 아니어서 다행인 순간이었다.


다시 또 눈을 떠보니 옮겨진 곳은 후지산이 보이는 개인실이었다. 영화 city of star에 나올 것만 같은 황홀한 노을과 이내 새초롬하게 떠 있던 손톱 같았던 초승달. 창문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자리, 문에 비치는 빛과 그림자.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풍경들. 그곳은 병원이라기보다 마치 조금 차가운 호텔 같았다. 그림 같은 이 순간을 사진이나 어떠한 형태로든 남겨두고 싶었다.


이런 병원 생활이라면 며칠이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창밖으로 바람이 부는 거 같은데 어떤 느낌이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있다 나는 2인실로 옮겨졌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옆 침대에 자는 깡마른 할머니는 잘 때 신기하게 남편처럼 코를 골아서 오랜만에 남편이 옆에 자고 있는 듯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병원에서는 다들 나를 '장상'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들키고 말았다. 장 씨라는 성 때문에 나를 중국인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해했고, 나 역시 똑같이 대했다.


곱게 화장하고 단정히 차려입은 아가씨는 점심시간이면 늘 도도하게 고개를 획 하고 돌려 자기 방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었다.


남편은 깡마르고 머리가 긴, 탈모로 보이는 여자를 보고 귀신같다고 무섭다고 했지만 그전에 병원에서 더 심각한 사람을 많이 본 나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왜 모두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지 못해 안달인 걸까.

'무서운 사람 아니야' 툭 하고 건들면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질 것만 같은 사람들 천지다.


숨 막히게 조용한 식당, 한국 병원은 왁자지껄 시끄러웠는데 확실히 한국인과 일본인은 참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결국 다인실까지 왔다. 맞은편 침대를 쓰는 환자는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혼자 웃다가 귀엽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나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반갑게 따라 불렀다.


몇 번이나 손목을 그었는지 밴드를 항상 붙이고 있던 소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운동하는 사람들,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이 생각나는 조제를 닮은 여자. 예쁘장한 얼굴에 힘겹게 휠체어를 끌고 있다. 짧은 머리의 17살 여자 아이는 애교가 많고,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반말로 장난치 듯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침엔 언제나 싸구려 마가린과 함께 뜨뜻미지근한 식빵이 나왔다. 일본 병원 음식은 특히 간이 약하고, 상냥한 재료 본연의 맛이 나서 똥도 세상 상냥한 색이 나왔다.


김치가 사무치게 그립다.


한국 병원은 음식이 맛있고, 사람들이 좋아서 지낼만했는데 한국 병원으로 가고 싶다.


12시가 되자 복도는 여고괴담처럼 타다다다닥 하고 불빛이 하나 둘 꺼져갔다.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깜깜하고 기다란 복도를 걷는데 맞은편에 혼잣말을 하며 걸어오는 할머니가 있었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일본 할머니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쪽도 만만치 않은 한국 미친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뒤덮은 채 고개를 살짝 옆으로 한 상태로 할머니를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똑바로 쳐다보며 걸었다. (참고로 나는 긴 머리에 긴 원피스를 입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할머니는 화들짝 놀래시더니 혼잣말을 멈추고 옆으로 피해 걸어갔다.


힘들게 도착한 화장실 문을 열자 이번엔 변기 위에 쭈그려 앉아 부스스한 머리에 초점 잃은 눈동자로 혼잣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시크하게 문을 닫고 옆 칸을 이용했다. 아마 상대도 꽤나 무서웠을 것이다.


생활 개선 회의에서 일본 할머니들의 싸움, 일본어 공부하길 잘했다.


아침엔 역시 커피지. 싸구려 커피 맛이지만 이것도 감사히 마시고 있다.


시간 부자인 나는 아주 천천히 샤워를 하고 평소엔 잘 바르지도 않는 바디로션도 바르고 꼼꼼히 머리를 말렸다. 그리고 밀린 빨래를 하고 연필을 깎았다.

책 속에 나오는 김환기와 마티스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색연필로 가만히 칠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다.



오늘은 처음으로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목욕 후에 마시는 주스. 한동안 아무도 마시지 않았는지 일본 자판기치고 꽤 차가워서 기분이 좋았다.


누가 봐도 누군가 씹다 뱉은 듯한 아스파라거스. 조리하는 사람 중에 한국인을 싫어하는 일본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하다.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그래도 8시에 하는 재밌는 티비 프로그램을 같이 보곤 했었는데, 여기는 할머니들이 단체로 스모랑 피겨스케이트만 주구장창 진지하게 보고 있으니까 티비도 재미없다.

할머니들은 왜 그렇게 스모와 피겨스케이팅에 열광하는 것일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씨름 경기하는 날이면 티비 앞을 떠날 줄 몰라하셨는데... 

한국이고 일본이고 역시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난 것일까?



형태가 없는 바람을 나는 단지 이따금 들려오는 소리나 나뭇가지의 흔들리는 정도로 가늠할 뿐이었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하염없이 달력만 쳐다보며 남편이 면회 오는 날만 기다렸다. 그리고 남편이 왔다는 간호사의 소식을 들으면 읽던 책도 그리던 그림도 내팽개치고 긴 복도를 강아지처럼 달려갔다.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그림 그리고, 책 보니까 행복해


좋은 습관을 만들어줘서 고마운 병원, 퇴원하고 나서도 매일 하나라도 그려야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일생 동안 이런 차가운 돌덩이 같은 침대에 드러누운 채 천장만 바라보고, 바람 속을 거닐 수도 없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이렇게 나이만 먹고, 조용히 죽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이 서글퍼집니다.



매일 아침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저 살랑이는 봄바람을 가슴 가득 들이마실 수 있었으면...' 하고 상상해 봅니다.



모든 일이 초조함 때문이었다는 게 증명된 거야. 초조함 때문에 그녀는 평점심을 잃었다.


'나 인도 여행 갔을 때 꿈이 돈 많이 벌어서 아이들 학교 지어주고 싶다였거든'

여러 가지 꿈이 있었고, 여러 슬픔이 있었고, 여러 약속이 있었다.

결국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우리 가슴 한 구석에는 메워지지 않은 빈터가 있고, 삶의 공허함에 대한 예감과 두려움이 있다.


소등이 된 밤, 아이팟을 조명 삼아 일기를 쓰고 책을 보았다. 병실은 딱 고시원 크기로 싱글 침대 하나, 케비넷 1, 수납장과 선반이 있는데 선반은 쓱 꺼내 식탁으로도, 책상으로도, 책꽂이로도 쓴다.


간호사가 내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며 아이팟을 건넸다. 이제 내 책상 위엔 몇 가지 읽을거리, 책과 다이어리, 연필, 안경, 아이팟과 스케치북. 


이것으로 충분하다.



'아 나는 이런 것들에 행복을 느끼는 아이구나'라는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두었다가, 그렇게 살면 된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일단 마음이 서자 나에게는 그저 병원 생활의 이로운 점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분은 상쾌하게 가라앉고 나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침착하고 자신 있게 미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체험이 되었거든.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혼자 천천히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실에 모두 모여 멍하니 벽을 응시한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온다. 눈물이 흐른다.


내가 다시 사회에 나가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늙어서 죽음을 맞이할 때 도대체 나에게 뭐가 남아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끔찍한 두려움을 느낀다.


4시와 5시 사이, 창문으로 빛이 쏟아질 때 바닥에 이는 일렁거림이 좋다.


내가 꿈만 꾸고 있을 때 현실을 봐준 남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분명 그날의 일들을 기억해 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지만 부끄러운 딸이 되어버렸다.


없어진 나날보다 있었던 나날이 더 슬프다.



정신병원 할머니의 조언
きっといいことあるよ。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일본 정신병원에서 읽은 책


이성복 산문집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외투

반도덕주의자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밝은 방

한국이 싫어서

차나 한잔

자기만의 방

해변의 카프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검은 고양이

도토리

우리는 사랑일까

자저작용

소란

마티스

인간실격

빌브라이슨의 유럽산책

제발 조용히 좀 해요

행복한 남도 미술 산책

POPEYE, 교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정신병원에서 들은 노래

クラムボン 

何も言わないで

검정치마 

젊은 우리 사랑, 무임승차, 외아들

비틀스

Hey Jude

옥상달빛

보호해줘

YUI

again, Rolling Star


어디도 속할 수 없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쓸쓸함을 포기할 때 예술은 다만 세속의 장식품이 될 뿐이다.

- 이성복 산문집


어떤 문제든 우리의 마음에 아주 강한 영향을 미칠 때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은 절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 생각은 항상 그 자체의 추진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이상한 사건도 그 나름의 교훈을 지니고 있는 법이니까.

-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그는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거라곤 거위 깃털 한 다스, 관청용 백지 한 묶음, 양말 세 켤레, 단추 두세 개, 낡은 외투가 전부였기에 유산이랄 것도 없고 상속자도 없었다. 그가 사라지자 그의 자리는 새로운 직원으로 대체되었고 그의 존재가 마치 세상에 있었던 적이 있기나 했던 듯 세상은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 외투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느린 회복기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없다. 죽음의 날개가 스친 뒤에는, 중요하게 보이던 일도 이미 그렇지 않게 된다. 중요하게 보이지 않던 것, 또는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우리 머릿속에 쌓여 있던 온갖 지식이 분칠처럼 벗어져 곳곳에서 맨살이, 숨어있던 진정한 존재가 드러난다.

-반도덕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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